엄마의 설렘은 그렇게 무르익는다.
엄마에게도 설레던 시절들이 있었다.
풋풋한 여고생 시절엔 이성에 눈을 떠 남자 친구와 맛있는 떡볶이를 나눠 먹으며 즐거워했고, 대학생 시절에는 남몰래 과 선배를 좋아하며 혼자 속앓이를 하며 방구석에서 눈물을 쏟기도 했었다.
사회인이 되어선 추억에 깃들어 있던 인연을 만나 사랑을 꽃피며 손을 맞잡고 도란도란 이야기를 나누는 것만으로도 설렘이 만개하기도 했었다.
그럴 때마다 여인에겐 따스한 바람과 달콤한 냄새와 아름다운 풍경들이 담겼다.
어쩜 그리도 아름다운 것들이 차고 넘치는지.
어쩜 세상은 하루가 멀다 하고 오색빛깔로 빛나는 행복들을 자아내던지.
사랑을 하며 설렘을 안고 지냈던 그 시절에는 모든 게 아름다워 보였다.
짝사랑을 하며 애가 닮든, 좋아하는 연예인이 생겨 울고웃든, 사랑을 하며 세상의 아름다움을 맛봤든. 그 모든 찬란함에 흠뻑 젖어 있던 여인 주위에는 항상 빛이 났다.
그런 설렘들이 있었다. 엄마에게도.
엄마가 돼서는 세상 하나뿐인 사랑이 정이 되고 의리가 되어 가는 과정들을 거치면서 설렘은 편안함으로 변했고 다른 이들의 설렘들이 눈에 들어왔다.
길을 걷다 풋풋한 연인들이 손을 꼬옥 잡고 미소를 짓는 모습, 서로에게 맛있는 음식을 먹여주는 모습, 영화관에선 껌닦지처럼 둘이 붙어 앉아 화면을 응시하는 모습.
내게도 있었던 그런 설렘들을 이제는 바라보는 입장이 되었고, 그때 그 시절에 내 모습도 저랬겠구나. 미소를 한 바가지 듬뿍 담아 온 몸에 쏟았겠구나 싶었다.
설렘으로 빛나던 시간들.
그 시절이 그리워, 상상을 한다.
다시 느낄 수 있을까?
지금 내 옆에는 든든한 내 편인 남자가 있다.
설레던 남자는 서로의 시간들이 옷깃을 스치며 삶에 뿌리 깊게 자리 잡아 나를 지탱해주는 버팀목이 되었다.
설렘이 무르익어 서로에게 튼튼한 뿌리가 되어 힘든 세상을 살아내고 있어 든든하기도 하지만, 풋풋했던 시절의 설렘이 그립다.
그래서 엄마들은 드라마에 빠져들곤 한다.
내가 하지 못할 일들, 느껴보지 못할 감정들을 드라마 속 주인공들이 맛보게 해 주었다.
그럴 때면 미소가 번져 나간다.
선남선녀인 주인공들은 어쩜 저리도 이쁜지, 그들의 사랑은 어쩜 그리도 영롱한지, 너무나도 눈이 부셔 샘이 나기도 하지만, 그들로 인해 내 마음에는 잠들어 있던 설렘이 불쑥 고개를 들었다.
반갑기도 하면서, 안타깝기도 하지만, 그 순간은 내가 그들이 되어 설렘을 느낀다는 것만으로도 가슴이 벅차기도 했다.
아마 먼 훗날에는 자식을 통해 보게 될지도 모른다.
서로의 눈빛만 봐도 꿀이 떨어지는 이를 내 앞에 데려와 소개 시켜주며, 내가 걷던 길을 자식들도 걸어가겠지.
인생이란 아마 이런 걸 지도 모른다.
아무것도 모르는 세상에 나와 설렘과 마주하다, 익숙해지고, 편안해지고, 내 삶에 일부가 되어 버리는 풍경들과 함께 살아내는 걸지도.
나를 포함한 세상 사람들 모두 그렇게 살아가겠지.
나와 너와 우리 모두가 서로를 익숙함으로 받아들이며 한발 한발 정겨운 풍경을 거닐며, 우린 그렇게 살아가고, 엄마의 설렘도 그렇게 무르익는다.
지금까지 걸어왔던 인생의 발자국과 함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