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의 봄맞이
엄마가 되고 난 후 봄이 되면 가장 먼저 생각나는 것이 바뀌었다.
추운 계절을 이겨낸 땅에서는 파릇파릇 초록 빛깔이 선명한 나물들이 고개를 든다.
채집된 봄나물들은 마트든 시장이든 향긋한 냄새를 사방으로 풍겼고, 엄마들의 표정에는 즐거움과 설렘이 스며들었다.
'우리 식구들의 입을 어떤 나물들로 즐겁게 해 줄까.
돌나물에 고춧가루 뿌리고 알싸한 액젓과 달콤한 매실청을 기본 베이스로 양념을 만들어 쓱싹 비벼 상큼하면서도 고소한 맛을 전해줄까.
아니면 달래 나물에 간장과 고춧가루 넣어주고, 다진 마늘, 설탕, 식초, 소금, 깨, 참기름 한 바퀴 둘러 쌉싸름하면서도 달큼하고 새콤하게 무쳐줄까.'
봄 내음 가득한 다채로운 나물로 먹음직스럽게 한 상 차려 식구들에게 봄을 선사하고 싶은 엄마의 마음.
좋은 거 하나라도 더 챙겨주고 싶은 엄마의 마음은 여기서도 뿌리를 내렸다.
무얼 더 줄까. 무얼 더 만들어 줄까. 무얼 더 나눠줄까.
식구들에게 행복을 전해주려는 엄마의 사랑은 어디서나 뿌리를 내렸다.
새 생명으로 가득한 봄과 같이.
어느 날 저녁 퇴근하신 어머니의 양손에는 두 봉지 가득 장을 본 흔적들이 담겨 있었다.
빼꼼히 고개를 내밀어 보는 나를 향해
"우리 며느리 좋아하는 봄나물 이것저것 사 왔지. 이걸로 반찬 만들어 놓으려고"
내가 어떤 나물을 좋아할지 몰라 보이는 대로, 끌리는 대로 사 오셨다는 어머니.
비닐봉지 안에는 냉이, 달래, 두릅, 취나물, 돌나물, 시금치로 가득 차 있었다.
파란 빛깔에 푸릇한 냄새, 싱싱한 나물들을 어머니는 흐뭇한 미소를 지으며 식탁 위에 올려놓으셨다.
아이 보느라 식사를 대충 때우는 며느리를 위해 어머니는 나의 엄마가 되어 나물들을 무치셨다.
그런 어머니를 보며 신랑은 옆에서 구시렁거린다.
“나는 찬밥신세라니까”
“너도 같이 먹으면 되지. 나물은 몸에 좋으니까 많이 먹으라고”
어머니는 말 끝나기가 무섭게 나물들을 헹구고 양념장을 만들어 무치시느라 분주했다.
어느새 싱그러운 봄 냄새를 풍기는 다섯 가지 나물 반찬들이 식탁에 올려졌다.
김이 모락모락 나는 따스한 밥 위에 향긋한 나물을 올려 입안에 넣으니 아삭아삭 거리며 봄의 파릇함이 번져나갔다.
너무 맛있어 젓가락으로 여러 가지 나물반찬을 떠서 입속에 넣느라 바빠졌고, 맞은편에 앉은 신랑도 싱싱한 나물반찬을 먹음직스럽게 입안에 담아 넣었다.
어린 딸도 할머니 앞에서 맛있게 시금치를 짚어서 입안에 넣었다.
그 모습을 지켜보는 어머니의 얼굴에는 행복이 넘쳐났고, 맛있게 먹는 우리들도 행복했다.
사랑으로 만들어진 나물반찬을 먹으며 행복에 흠뻑 젖었던 기억들이 차곡차곡 쌓이다 보니, 나도 어느새 봄이 되면 봄나물을 먼저 생각하게 되었다.
어떤 나물을 식구들에게 먹일까를 먼저 생각하는 엄마의 모습이 이젠 내게서도 보였고, 낯설지가 않다.
요리를 하며 나물을 무치던 엄마의 마음을 이제야 알 수 있었다.
파란 하늘, 바람은 솔솔 불고, 강물은 졸졸 흐르는 넓은 들판에 꽃이 가득 피듯, 사랑이 가득 꽃피는 감정.
요리하는 사람도 행복하고, 먹는 사람도 행복해지는 마법.
봄이 되면 싱그러운 생명을 선물 받듯이, 봄나물은 가족들에게 싱그러운 사랑과 건강을 선물해주었다.
집집마다 엄마의 나물 반찬으로 가족들은 봄의 기운을 충만하며, 봄을 실컷 맛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