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몰래 갔다 오려고 했어

자식들에게 신세 지고 싶지 않았던 엄마의 마음



일생일대의 선택의 기로에 선 부모님은 아들 딸에게 신세 지고 싶지 않아 무거운 소식을 숨긴 채 육지에 몰래 왔다 가려했다.












3년 전부터 아빠는 술만 마시면 정신을 잃고 쓰러지셔서 구급차를 타신 적이 두 번이나 있다.


통화 너머로 들려오는 아빠의 목소리에서는 걱정보단 덤덤함이 묻어났다.

그때 잠깐 그런 거고 지금은 괜찮다며 술만 조심하면 된다는 이야기에 크게 걱정하지 않았었다.


근데 올해 초에 또 한 번 쓰러지셨고, 이제는 그냥 넘겨서는 안 된다고 엄마와 상의 후 제주대학병원에 검사예약을 잡았다고 했다.


아빠의 말에 따르면 오랜만에 고향에 내려온 언니와 오름에 갔다 오면서 막걸리 한잔을 한 게 화근이었다고 한다.

언니와 헤어지곤 이발관에 가서 머리를 자르는데 정신을 잃었고, 주인장이 아무리 아빠를 부르고 뺨을 때려도 일어나지 못해, 끝내 구급차를 불러 응급실로 실려갔다고 했다.

아빠는 억울하다는 투로


"많이 마신 것도 아냐. 막걸리 딱 한잔만 한 거였어. 소주는 괜찮은데 이상하게 막걸리만 마시면 그런다~ 그래도 이게 세 번째니까 엄마랑 병원 가서 검사하기로 예약 잡아놨어 "


"아빠 진짜 괜찮아? 진짜 큰일 날 뻔했어! 지금 컨디션을 괜찮고?"


"응. 아무렇지도 않아."


"아빠 검사 결과 나오면 나한테 꼭 연락 줘야 해!"


그렇게 신신당부를 했음에도, 역시나 아빠는 연락을 주지 않으셨다.

평소처럼 내가 먼저 연락을 드렸다.


"아빠! 결과가 어때?"


"응~ 괜찮아~ 병원에서 금주하라고 신신당부하더라. 이제는 술 마시면 안 되겠어."


"술만 안 마시면 되는 거래??"


"그렇다고는 하는데, 엄마가 서울 삼성병원에 결과 가지고 가서  조언 들어보자고 하더라고"


"뭐야~! 정해지면 바로 나한테 연락을 주지 그랬어!"


"어제저녁에 엄마랑 대화하고 일정 잡은 거라 안 그래도 연락 주려던 참이다. 4월 첫 주에 올라가니까 알고 있어."


그렇게 통화는 마무리되었다.

엄마도 걱정되어 엄마 퇴근 시간에 맞춰 연락을 드렸다.

자세한 내용은 엄마와 통화하면서 알게 되었다.


"엄마! 아빠 결과 괜찮은 거야?"


"의사들이 의견이 나뉘더라. 

 한 분은 대수롭지 않게 절대 금주에 식단 조절 잘하고 운동하면서 지금처럼 지내면 크게 문제 될 거 같지 않다고 하고, 또 한 분은 위험한 상황이니 빨리 부정맥 수술을 받는 게 좋을 거 같다고 하더라고. 근데 아빠 뇌졸중 수술받았던 부위에도 뭔가 이상 징후가 보인다고 해서 수술받았던 담당 의사한테 가서 상담받고, 간 김에 부정맥도 상담받으려고 병원 예약 잡아놨어. 그래서 4월 초에 2박 3일로 서울에 가려고."



"아이고. 작은 문제가 아니네. 아빠는 이렇게까지 말 안 하던데, 엄마한테 안 물어봤음 모를 뻔했네. 괜찮아야 할 텐데... 올라오면 우리 집에서 자면 되겠네"



"아니 아니 괜찮아! 우리 가면 시어머님이 다른 곳에서 주무시잖아. 우리는 마음 편히 병원 근처에서 하루 묵고, 그다음 날은 막둥이네서 묵을 거야. 삼일째 되는 낮에 너네 집에 잠깐 들러 손주나 좀 보다 갈거니, 크게 신경 쓰지 않아도 돼."


"뭐야! 신경을 안 쓸 수가 있나! 아빠 검사 때문에 오는 건데! 부담 갖지 말고 우리 집에서 자! 시어머니도 그런 거 괜찮다고 평소에도 누누이 이야기하는 분이셔!"


"이래서 내가 몰래 갔다가 오려고 한 거야."


"말이 되는 소리를 해! 작은 일로 서울에 오는 것도 아니고!"


"그러니까.. 몰래 갔다 오고 나서 말하면 서운해할까 봐. 말은 하고 올라가는 건데... 다들 바쁜데 신경 쓰지 않았으면 좋겠어."


엄마의 완강한 고집을 내 힘으론 꺾을 수 없었다.

이 이야기를 신랑에게 했더니, 본인이 직접 통화해보겠다고 했다.


"어머니 접니다! 저희 집에서 묵으세요! 자주 뵈는 것도 아니고, 일 년에 한두 번 보는 게 다잖아요.

그리고 신세를 자주 지시는 것도 아니고, 그걸 어떻게 신세라고 할 수 있나요!

하루 종일 병원 돌아다니시는 날 연차 써서 제 차로 모실게요."


"아냐~ 괜찮아! 우리대로 편하게 쉬엄쉬엄 다닐게. 바쁜데 우리 때문에 연차 쓰지 말고."


"저도 이 핑계로 연차 좀 쓰고 쉬면 좋죠. 아직 연차 하나도 안 썼어요! 대중교통으로 병원 돌아다니시는 시간이나, 차가 좀 막히더라도 제 차로 편하게 다녀오시는 시간이나 그게 그거예요. "


"아이고 참... 미안하잖나."


"괜찮습니다. 이럴 때 사위노릇 하지 언제 합니까! 저도 사위 노릇 하고 싶어요! 그럼 올라오시는 날 저희 집에서 묵으시고, 병원 돌아다니는 날엔 제가 연차 써서 차로 모실게요! 다른 말하지 마시고요!"


"그럼 우리야 고맙지. "


신랑은 전화를 끊으면 의기양양해했다.

딸의 말은 씨알도 먹히지 않건만, 사위의 강경함은 엄마의 완강한 고집을 헤실헤실 녹아내리게 했다.










몸도 가누지 못했던 우리들은 그들의 청춘을 야금야금 먹으며 자랐고, 

사회의 일원이 되자 살기 바빠 부모님의 품에서 점점 멀어져 갔다.


그 사이 부모님은 먼발치서 세월이 묻어난 두 손을 뒷짐 지곤 묵묵히 쳐다보았다.

힘든 일이라도 생기면 언제든 자식에게 달려갈 수 있는 만발의 준비를 한 채.



아이를 낳고서야 부모의 노고가 얼마나 무거웠는지를 알게 되었다.

자리가 사람을 만든다고.

나도 엄마라는 자리에 서 있게 되자, 엄마라는 두 단어의 무거움을 알게 되었다.


너무 늦게 깨달은 게 죄송해서 지금부터라도 사랑을 갚아나가고자 하는 자식과

괜찮다고 손사래를 치시는 부모님.


그 접점 사이의 틈을 비집고 자식들은 완강한 부모의 고집을 꺾으며 효도를 한다.

자식 입장에서는 힘들 때 본인들에게 기대는 게 어때서 그렇게 미안해 하시나 싶기도 하지만,

부모에게 있어서 자식들이 하루하루를 무탈하게 보내주는 게 최고의 효도요. 선물이기에 소중한 보석을 애지중지하시는 마음도 이해는 간다.

그렇기에 어려움이 생기면 보석과도 같은 자식들의 일상에 금이라도 가지 않게끔 스스로 감당하려 하시는 거겠지.


내가 엄마의 상황이었어도 똑같이 행동하긴 했을 것이다.


직장 다니느라 바쁜 사위와 아이 보느라 정신없는 딸, 그리고 함께 사는 시어머니에게 누가 된다면 나라도 신경 쓰지 말라고 했을 테지.

이해는 되지만 멀리 떨어져 있기도 하고, 서로 바빠 자주 연락을 하지도 못하는데 단비처럼 주어진 효도의 기회를 거절하니 섭섭한 건 어쩔 수 없다.


풍파가 몰아치는 세상으로부터 우리를 안전하게 지켜주신 거처럼, 나도 그들을 지켜주는 존재가 되어 점점 작아지시는 부모님 어깨에 짊어진 짐이나마 잠시라도 들어드릴 수 있길.

부모님은 자식의 손길을 못 이기는 척하며 우리들의 어깨에 기대주길.


당신은 충분히 그럴 자격이 있습니다.

우리의 사랑을 미안해하거나, 거절하지 마시길 바라요.


당신들의 사랑으로 우리는 이렇게 무탈하게 살아가고 있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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