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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가 아니면 몰랐을 분주한 일상들

엄마의 하루는 숨 쉴 틈도 없이 똑딱 흘렀다

 

엄마가 되고 나서의 하루는 바빴다.


하루가 시작되기 바쁘게 신랑의 출근 준비에 아이의 등원 준비로 분주했다.

등원 전쟁이라는 말에 걸맞게 한시도 방심할 수 없이 준비해줘야, 아이를 제시간에 데려 다 줄 수 있는 스릴 넘치는 시간제한 게임!

아슬아슬 아이를 데려 다 주고 나서 집에 오면 만신창이가 된 전쟁터를 치우기 시작한다.

그렇게 엄마의 하루는 시작되었다.


엄마의 일은 설거지, 빨래, 청소, 장보기, 반찬 만들기는 기본 중에 기본이며, 가족 행사 챙기기, 아이들 예방접종 체크하기, 부족한 생필품 확인하고 장만하기 등 부차적인 일도 허다했다.

하루 동안 쌓여 있는 미션들을 하나하나 해결하다 보면 분 단위에서 초 단위로 움직여야 할 때도 있었다.

그럴 때마다 엄마는 주특기인 ‘동시에 하기’를 꺼내 든다.


이 기술을 연마하기 위해 얼마나 많은 시간 피와 땀을 흘렀냐고 물으신다면, 주어진 시간은 촉박한데 해내야 하는 일들은 많으니 엄마가 된 시간이 쌓여갈수록 죽으나 사나 습득할 수밖에 없었다.

나도 처음엔 이 기술을 쓰지 못했다.


첫째가 아기였을 때는 한 눈 판 사이 큰일이라도 생길까 봐 노심초사하며 하나의 집안 살림만 하는 정도였다.

아이가 클수록 요구사항이 많아지다 보니, 엄마는 슈퍼우먼이 되어 집안 살림을 하면서도 아이의 요구사항을 해결하기 시작했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아이를 케어하는 일은 아이의 짜증과 투정 부림을 감당해야 하는 고난도 중에 초 고난도의 감정노동으로서 밀린 집안 살림에 쓰이는 에너지를 한참 능가했다.

수도 없이 변하는 아이의 감정에 엄마는 기가 빨리기 일수였고, 그럴 때마다 ‘대체 내가 여기서 뭐 하는 건가.’싶어 침울했다.


그럼에도 엄마는 아이와 살림을 동시에 해결하는 특화된 고급 인력이 되어갔다.

과연 세상 어디에 대가도 받지 않은 채 무한 노동을 베푸는 존재가 어디 있단 말인가.












결혼하기 전 친구네 집에 놀러 갔던 기억이 떠오른다.

세 살이었던 아이 때문에 밖에서 만나기 힘들까 봐 친구네 집으로 놀러 갔었다.

서로 살기 바빠 오랜만에 만난 친구의 얼굴은 피곤에 절여 있었다.

내가 집에 머무는 동안 친구는 아이 낮잠시간을 제외하곤 쉼 없이 움직이며 아이를 케어했다.

나가는 걸 그렇게도 좋아하던 친구였는데 집에 갇혀서 지내니 하루하루가 쳐진다고 했다.

친구의 얼굴에는 그동안의 맘고생이 물밀 듯 내게도 전해졌다.

아이가 어서 커서 자유롭게 밖에 나가고 싶다는 친구의 소망이 어찌나 안쓰럽던지.


내가 할 수 있는 일이라고는 집에 머무는 동안이나마 아이와 놀아주며 친구에게 쉬는 시간을 내어주는 것이라 생각하며 아이와 친해지려 노력했다.

처음엔 아이가 낯을 가리더니 시간이 지날수록 나를 따라주었다. 친구에게 도움을 줄 수 있어 다행이라 생각했다.


그러나 친구는 쉬지 못했다.

아이를 케어하고, 간식을 주고, 살림을 하고, 장난감 정리를 하면서도 내게 커피를 내왔다.


“왜 그렇게 바쁜 거야. 내가 아이랑 놀 때 좀 쉬어.”


“지금 안 하면 나중에 더 바빠.”


그땐 그 말이 이해가 되지 않았다.

아이와 놀다 보니 친구가 보이지 않았다. 어느 정도 집안일이 정리되었는지 피곤에 찌든 채 마루 바닥에 흐느적 쓰러져 모자란 잠을 자고 있었다.

그걸 본 아이도 엄마와 같이 자겠다고 옆으로 갔고, 친구는 눈을 비비며 일어나 아이 낮잠을 재우고 자기도 마저 자겠다며 누웠다.

편하게 자라고 자리를 비켜주었지만, 20분도 안돼서 아이는 엄마를 깨우고 있었다.

비몽사몽 무거운 몸을 이고 다시 일어나는 친구.

그리고는 다시 일상의 쳇바퀴에 올라타며 아이와 놀기 시작했다.


그땐 몰랐다.

피곤에 찌든 친구의 감정이 어땠을지.

그때의 친구처럼 나도 아이의 엄마가 되었고, 친구의 모습 그대로 생활하고 있다.

엄마에게 주어진 일과를 수행하기엔 시간은 야박했다.

늘 상 잠은 모자라고, 쌓여 있는 집안 일과 아이를 케어하기도 바빴다.

어쩔 땐 밥 먹을 시간도 없어서 건너뛰기도 하고, 국에 밥을 말아서 씹지도 못한 채 삼키기도 했다.

엄마의 자리는 24시간 동안 퇴근도 없이 분주히 흘러갔고, 순간순간의 시간은 더디더라도, 하루의 시간은 빠르게 흘러갔다.


엄마가 아니면 알 수 없었을 상황과 감정들.

그때의 친구의 감정이 어땠을지 이제야 알 수 있었다.

엄마의 하루는 시계 초침이 숨 쉴 틈도 없이 똑딱 흘렀다.

다음 날도. 그다음 날도. 그다음 날도... 그렇게 열두 달 쉼 없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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