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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라는 시간에 갇히다

자유를 응시하던 눈은 끝내 초점을 잃고 말았다


신랑은 “다녀올게.”라는 말과 함께 현관문을 나섰다.


바깥세상을 향해 한 발 내딛던 그의 모습은 마치 투쟁을 하다 자유를 쟁취한 운동가처럼 양손에 가득 쥐어진 자유가 찬란하게 사방으로 빛을 발하는 듯했다.

찰나의 순간 광채를 보는가 싶더니 문은 덜컥하고 닫혔다.

문 뒤에는 온몸 가득 설움을 등에 짊어진 그녀가 덩그러니 서 있었다. 

퀴퀴한 그녀의 주위에는 음침한 상자가 덩그러니 놓여 있을 뿐이었다.

어디로도 빠져나갈 구멍이라곤 보이지 않는 어둑어둑한 상자 하나가.



그녀는 상상했다.

자유를 거닐 신랑의 가벼운 발걸음을.

그녀도 언젠간 신랑처럼 바깥세상의 자유를 만끽할 날이 올 것을 믿어 의심치 않았지만, 앞에 놓인 차가운 현실은 음침한 상자로 떠밀 뿐이었다. 


하루 종일 아이와 사투를 벌이며 더딘 하루를 뚜벅뚜벅 걸어가는 만큼 체력과 정신은 고갈되어 갔다.

어느새 구세주가 등장해줄 시간이 다가오자, 그녀는 남아 있던 마지막 힘을 쥐어 짜내며 버텨보기로 한다. 

그때 핸드폰이 울린다.


‘말했던 대로 팀원들이랑 한잔하고 들어갈 거 같아.’


문자를 보는 순간 마지막 힘은 부시불식간에 사라져 버렸다.

하루 종일 집안에 갇혀 아이와 실랑이하던 내 신세가 처량했고, 고생하는 아내의 상황을 알아주지 않는 신랑이 야속했다.

고생하는 아내보다 술자리가 더 중요하단 말인가.

만약 내가 신랑이었다면, 혼자 아이 보느라 힘들었을 아내를 위해 핑계를 대고는 집을 향했을 거라 단언한다.

일하는 신랑도 직장 업무로 스트레스에 시달리며 힘들 거라는 건 알지만, 퇴근 후 동료들과 맛있는 안줏거리와 술 한잔하며 여유로움을 즐기는 게 얄미운건 어쩔 수 없었다.

집에서 아내는 아이들에게 시달리느라 고생인데….


한 사람의 희생을 자유와 맞바꾼 신랑.

더 나아가 그녀의 희생이 당연시되는 상황이 기구했다.


한편으론 여유롭게 술을 마실 수 있는 신랑이 부럽기도 했다. 

맛있는 안주와 술은 자유를 들이켜는 것과 같다랄까.

내게 있어 여유로이 술자리를 즐기던 게 언제였던가.

기억도 나지 않을 만큼 많은 시간이 흘러 있었다.


감정은 주체가 안 되었고, 신랑에게 푸념하는 것으로 소심한 반항을 한다.



‘나도 아이들 신경 안 쓰고 일찍 출근하고 늦게 퇴근하고 싶고, 때때로 동료들과 퇴근 후 술 한잔 편히 하고 싶다! 누군 일 안 하고 싶어서 안 하나. 나도 일하고 싶다고!!’



아이로 인해 일을 그만둔 나로서는 억울했다.

엄마라는 시간에 갇힌 여자들은 포기하는 것과 희생하는 일들이 많았다.


직장, 여자, 청춘, 자유, 취미, 돈, 시간…


엄마라는 시간은 그녀를 더욱 옥죄고 머리만 딸그락딸그락 춤을 추게 했다.

숨이 막혀 구멍이라도 뚫어보지만 숨은 쉬어지지 않고 심장은 서서히 울부짖었다.

찬란했던 시간은 조금씩 조금씩 뒷걸음질 쳤고, 자유를 응시하던 눈은 끝내 초점을 잃고 말았다.



안녕…. 안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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