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린이집으로 향하는 할아버지와 할머니들


우리 집은 첫째가 다니는 어린이집에서 도보로 10분 거리다. 등원할 때나 하원 할 때나 아이 손을 잡고 휘적휘적 걸으며 도착지를 향한다. 아이는 기분에 따라 킥보드를 타거나, 유모차를 타기도 한다. 짧은 거리지만 첫째와 쫑알쫑알 대화를 하기에도, 2절까지 이어지는 아이의 투정을 듣기에도 부족함이 없다.


같은 시간, 같은 길을 따라 어린이집을 향할 때면 마주치는 부모들은 비슷하다. 같은 반 아는 엄마라면 해맑게 웃으며 인사를 건네지만, 같은 반임에도 정식으로 인사를 나눈 적이 없거나, 다른 반 엄마이면 어색하게 시선을 피하게 된다. 얼굴은 자주 보지만 인연이 없으니 눈이 마주치면 불편하다. 마치 훔쳐보다 들킨 기분이랄까.


불편한 게 싫다면 딱 5분만 서둘러 집을 나서면 멋쩍은 마주침을 피할 수도 있건만 일찍 준비해도 아이와 실랑이하다 보면 그 시간. 늦게 준비할 때는 지각만은 면하려 아등바등거리다 보면 또 그 시간이다. 어쨌든 매일 9시 20분에서 9시 30분 내외로 어린이집을 향하는 사람들을 보게 되는 셈이다. 그중에는 손주 손을 잡고 어린이집을 향하는 할머니, 할아버지도 계시다.

그들은 자식이 출근한 뒤 홀로 손주를 책임지며 어린이집으로 향하리라.


비가 내리던 날 어린이집을 향하는 할아버지를 마주친 적이 있다. 한 손엔 손주를 안고, 손주와 그의 목 사이에 우산을 끼운 채 엉거주춤 걷고 있었다. 손주를 굳이 왜 안으실까. 힘드실 텐데. 그의 어깨를 보고 있자니 내 어깨가 뻐근해졌다.


햇볕이 쨍쨍하던 아침, 손주 뒤를 열심히 따라가는 할머니를 마주친 적도 있다. 할머니는 킥보드를 타고 쌩쌩 달리는 손주에게 위험하니 천천히 가라고 소리치고 있었다. 걷는 것도 아니고 뛰는 것도 아닌 종종 종종 뒤따라가는 할머니. 날쌘 손주를 따라다니시느라 버거우시겠다 생각했다.


어느 날 어린이집 앞에서 왜소한 몸체에 통통한 손주를 업고 분주하게 걸어오는 할머니를 보았다. 할머니의 이마와 콧등에는 송골송골 땀이 맺혀 있었다. 날도 더운데 염려되어 괜찮으시냐고 물었다. 할머니는 걱정말라며 손사래를 치시면서도 아침에 손주와 한바탕 한 이야기를 시시콜콜 말씀하셨다.


딸네 집이랑 가까워 등 하원은 본인이 하고 있단다. 딸네가 맞벌이하기에 도울 수밖에 없다고. 8시에 딸과 사위는 나가고 할머니가 집으로 들어가 손주를 깨우고, 씻기고, 밥을 먹이고, 등원 준비를 하신단다. 오늘은 손주가 더 자고 싶다고 투정 부리다가 어린이집에도 안 가겠다고 땅바닥에 데굴데굴 구르며 떼를 부렸다. 어떻게든 등원은 시켜야 하기에 어르고 달래다 할머니가 업고 가주마하다 이 상황이 되었다고.


그 사이 손주는 할머니 등에서 내려서는 손을 흔들며 어린이집으로 들어갔다. 잘 들어가는지 손주의 뒷모습을 하염없이 바라보던 할머니는 흔들던 손을 내리셨다. 할머니 표정이 느슨해졌다. 나에게도 인사를 건네며 할머니는 뚜벅뚜벅 걸으며 내게서 멀어졌다.


그러다 궁금했다. 할머니 할아버지들은 어떤 마음으로 손주의 등 하원을 함께할까. 심지어 일을 다니는 할머니도 계시던데. 그러고 보면 요즘 흔한 광경이기도 하다. 어린이집 앞에서 할머니, 할아버지 손을 잡고 오는 아이들을 심심치 않게 보게 되니까. 오죽했으면 할마(할머니+엄마), 할빠(할아버지+아빠)라는 신조어까지 생겼을까. 요즘 맞벌이 안 하는 부부를 찾기도 힘들다. 맞벌이하는 가정이 많아진 만큼 황혼육아를 하시는 조부모들도 많아졌으리라.


나이 들어 다시 시작된 육아. 본인의 삶을 이제 즐겨볼까 하는 시점에서 손주를 돌보게 되는 그들. 하루 종일 돌보지 않고 그저 어린이집에 바래다주는 것일지라도 본인의 시간과 스케줄을 내어주고 조정해야 하는 일. 그들의 일상에 적잖이 영향을 주는 육아에 또다시 발을 들여놓는 것이 과연 할머니 할아버지에겐 기쁨이었을까. 망설여지진 않았을까.


할머니 할아버지들은 오늘도 손주의 손을 잡고 어린이집을 향한다.

할머니 손엔 아이의 가방이 들여 있고, 다른 손에 손주의 손을 잡고 있다. 분주히 걸어가는 구부정한 뒷모습을 보며 생각했다.


그들의 도움이 어느 순간 자식들에게 당연한 것으로 여겨지지 않길.

그들은 아직도 누구네 엄마 누구네 아빠로서 백 년을 다해 자식이라는 꽃 한 송이를 피우기 위해 오늘도 정성을 다한다는 걸 잊지 말아 주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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