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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의 자식들은 어디에 있나요

나는 부천에 산다.

우리 동네는 상가와 식당들이 주거지역과 뒤섞여 있어 복잡하다.

사람이 다닐만한 골목이면 차들은 주차되어 있고, 인도라는 게 분리되어 있지 않아 차가 지나가기라도 하면 옆으로 비켜서서 걸음을 멈추어야 한다.

사람도 승용차도 트럭도 오토바이도 모두 분주하게 다니는 길은 위험하다.



그런 길 사이로 체격이 왜소한 할아버지 할머니들은 구부정한 허리로 폐지를 줍는다.

동네 한 바퀴를 돌거나, 마트에 잠깐 다녀오는 길에도 폐지 줍는 어르신 두어 분은 꼭 보게 된다.

어르신들이 많이 사는 동네라 폐지 줍는 분들도 많은 걸까.








부천으로 이사 온 1년 반 동안 유독 자주 마주치는 할아버지 할머니들이 계시다.

인자한 인상을 갖고 계신 키가 훤칠한 할아버지, 머리에 항상 큰 리본을 달고 다니는 할머니, 우리 엄마와 연배가 비슷해 보이는 머리가 뽀글뽀글한 할머니, 대형 마트 옆에서 하루 종일 자리를 잡고 버려지는 상자들을 정리하며 탑처럼 쌓아 올리는 할머니.

특히  대형마트에서 박스를 정리하는 할머니는 장을 보러 갈 때마다 그 자리에 항상 있으셨기에, 처음엔 마트에서 고용한 분인지 알았다.

그러나 머지않아 마트의 배려임을 알게 되었다.



그러던 어느 날 그 할아버지를 보게 되었다.

대형 마트에서 상자를 쌓아 올리던 할머니 대신 할아버지 한 분이 박스들을 정리하고 계셨다.

반년 이상 보아오던 할머니가 보이지 않아 걱정됐다.

무슨 일이라도 생기신건가.






그 날 이후로 매일 그 할아버지를 보게 되었다.

첫째를 등원시킬 때면 항상 같은 편의점 앞 간이 테이블에서 손수레를 옆에 세워둔 채 축구공만 한 라디오를 자기 앞에 틀어놓고 라면을 드시고 계셨다.

태양이 머리 위에서 이글거릴 때는 대형마트에서 버려진 상자들을 정리하셨다.

바람이 솔솔 불 때면 동네 할아버지들과 마트 옆 언저리에 도란도란 모여 앉아 담배 한 대씩을 물어 피며 담소를 나누기도 했다.

첫째가 하원 할 때쯤엔 동네 회사에서 버려진 상자들을 주차장 구석에서 정리하며 손수레에 실으셨다.

해가 뉘엿뉘엿 저물어 갈 때쯤엔 그늘이 진 회사 담벼락에 기대앉아 라디오를 크게 틀어놓고 간식을 드시기도 했다.

땅바닥에 털썩 앉아 있는 할아버지의 얼굴에는 고단함이 엿보였고, 앞에 놓인 라디오에서는 유쾌한 DJ의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할아버지에게 라디오는 둘도 없는 친구 같았다.

일할 때, 밥 먹을 때, 피곤할 때, 적적할 때, 해가 뜨고, 그림자가 발바닥에 달라붙어 늘어질 때까지 라디오는 틀어졌다.

문득, 라디오를 들으며 일하는 분들이 생각났다.

버스나 택시를 운전하는 기사분들, 시장에서 장사하시는 분들, 복작거리는 사람들 사이로 우두커니 위치한 노점 주인들.

들에게 라디오는 친구이며, DJ들은 외로움을 달래주는 벗과 같을 것이다.

할아버지에게도 라디오는 하루를 버틸 수 있도록 옆에서 묵묵히 응원해주는 친구였다.

라디오라도 할아버지 옆을 지키고 있어서 다행이라 생각했다.



할아버지는 처음에 이 일을 시작하실 때 얼마나 마음고생을 하셨을까.

비좁은 골목, 차들은 비켜달라고 경적을 울리고, 여기저기에 버려진 폐지들을 찾으러 종일 다니셨을 모습을 생각하니 마음에 멍이 들며 아파왔다.

시간이 흐를수록 할아버지에게는 노련함이 생겼을 것이다.

그래서 매일 그 시간, 그 장소에서 자기가 적응해온 하루를 보내고 계신 걸 테지.




할아버지는 항상 같은 시간, 같은 장소에서 하루를 보내고 계셨다




어쩌다 할아버지가 안 보이는 날에는 신경이 쓰이고 걱정도 됐다.

요즘같이 더위가 기승을 부리는 날이면 용기를 내어 시원한 음료라도 한잔 사드리고 싶었다.

나의 관심이 할아버지에게는 무례한 동정으로 비칠까 봐 주저했다.

솔직히 말하면 드린 후에 마주칠때 어색하게 흐르는 관계의 불편함이 싫어 나설 수가 없었고, 그저 먼발치서 지켜보는 방관자가 편했다.

난 나를 먼저 생각하는 개인주의자였다.



피가 섞이지 않은 나도 할아버지를 볼 때면 염려되는데, 대체 자식들은 아버지가 고된 일을 하고 있는지 알고나 있는 걸까.

일사병에 걸릴 만큼 햇볕이 내리쬐는 여름이고, 찬바람이 씽씽 부는 겨울이고, 어김없이 허리를 굽혀 박스를 모으고, 접고, 실어 나르는 일을 자식들은 왜 말리지 않는 걸까.



당신의 자식들은 어디에 있나요.

대체 어떤 사연을 짊어지고 계신 건가요.

처연한 사연이 할아버지 어깨를 짓누르고 있는 거 같아서.

슬픔의 무게를 외롭게 이고 계신 거 같아서.

내 마음은 울퉁불퉁한 바닥에 떨어져 깨지는 거 같았다.




오늘도 어김없이 폐지를 주우며 하루를 보내는 할아버지.

뒤창이 너덜너덜한 운동화를 신고 가는 그의 뒤로 붉은 노을은 흘러내리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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