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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억의 맛이 배달되었습니다

나의 사랑 기름떡!


나의 고향은 제주도다.

나는 대학을 졸업하자마자 상경해서 영상 학원을 다니고 아르바이트를 하며 정신없는 나날을 보냈다.

취직 전에는 학원 과제와 아르바이트를 하느라 바빠서, 취직하고 나서는 일이 많아서 좀처럼 고향에 발을 딛지 않았다.

그런 나를 두고 엄마는 통화할 때마다 나의 끼니를 염려했다.


"잘 챙겨 먹고 다념나? 엄마가 반찬 보내난 잘 챙경 먹으라이! 오징어 젓갈은 오래 둬도 상하지 않으난 부담없이 먹고이!"("잘 챙겨 먹고 다녀? 엄마가 반찬 보내니까 잘 챙겨서 먹어! 오징어 젓갈은 오래 둬도 상하지 않으니까 부담 없이 먹고!")


주기적으로 보내는 엄마의 반찬은 귀찮은 골칫거리였다.

‘보내지 말라니까 왜 또 보낸 거야!? 잘 먹지도 않는데!! 상한 반찬 정리하는 것도 성가시다고!!'





냉장고에는 저번에 보내준 엄마의 반찬이 그대로 남아 있었다.

꽉 찬 냉장고 앞에 서서, 택배 상자에 담긴 새 반찬을 볼 때마다 고역이었다.

집에 와서 반찬 정리하며 냉장고와 실랑이하는 게 너무나도 싫었다. 엄마가 반찬을 보내지 않았다면 일어나지 않았을 일이라 치부하며 입술을 삐죽거렸다. 어쩔 땐 너무 짜증 나서 새 반찬을 뜯자마자 음식물 종량제 봉투에 퍼부었다. 그럼에도 엄마의 반찬은 얼마 후 다시 내게 배달 되었다.


"엄마 그만 보내!! 저번에 보낸 거 다 상해서 버렸다고!!!"

"이번엔 장아찌 묻현! 맛보난 맛난게! 김치에다가 사과도 갈아 넣어시난 새콤하매! 잘 챙경 먹으라이! 김치랑 장아찌는 오래 둬도 상관 어시난 버리지 말고이!!" ("이번엔 장아찌 묻혔어! 맛보니까 맛있어! 김치에다가 사과도 갈아서 넣었더니 새콤해! 잘 챙겨서 먹어! 김치랑 장아찌는 오래 둬도 상관없으니 버리지 말고!")


엄마는 음식을 매번 버리는 딸을 위해 오래 두고 먹을 수 있는 반찬을 껴서 보내기 시작했다.





어느덧 나는 서울남자와 결혼을 했고, 시어머니와 함께 살게 되면서 엄마의 택배는 뚝 끊겼다.

어머니가 알아서 잘 챙겨주실 거라며, 언니와 남동생 자취방에만 반찬을 보냈다.

육아를 하다 보면 문득 엄마표 음식이 그리운 날이 있다.

얼큰한 김치찌개, 달고 짜고 매운 제육볶음, 걸쭉한 제주도식 육개장, 적당히 매운 갈치조림 등등 자주 먹었던 요리에 밥을 쓱쓱 비벼 크게 한 입 먹으면 없던 힘도 생겨날 거 같았다.

그럴 때면 엄마에게 전화를 걸어 음식을 보내달라고 닦달했다.


"엄마가 만든 요리 먹고 싶어! 좀 보내주라"

"어머니가 음식 하시는데 엄마가 반찬 보내면 예의가 아니라! 넌 이제 어머니가 만들어 주신대로 먹어야 되매. 엄마 반찬은 제주 오면 원 없이 먹으라게!" ("어머니가 음식 하시는데 엄마가 반찬 보내면 예의가 아니야! 넌 이제 어머니가 만들어 주신대로 먹어야 되! 엄마 반찬은 제주 오면 원 없이 먹고!)


먹고 싶다고 아우성인 딸의 부탁을 거절하는 엄마에게 서운했다.




둘째를 임신한 어느 날 10년 동안 잊고 있던 기름떡이 머리에서 내내 맴돌았다.

제주에는 명절 때면 기름떡을 만들어 먹는다. 명절 음식 치고는 만드는 방법도 쉽고 간단하다.

찹쌀가루에 뜨거운 물과 소금을 조금 넣고 오밀조밀 반죽한다. 밀가루가 깔린 큰 쟁반에 옮긴 후 눌어붙지 않게 반죽 앞 뒤로 밀가루를 뿌려준다. 큼지막한 밀대로 골고루 쫙쫙 밀어대며 반죽을 얇게 펴준다. 넓게 펴진 반죽에 별 모양 틀로 찍어준 뒤 기름이 자작한 프라이팬에 지져준다. 지글지글 경쾌한 소리를 내며 하얗던 반죽이 갈색빛을 돌며 노릇하게 튀겨지면 건져서 앞 뒤로 흰 설탕을 버무려 준다. 완성이다!

겉은 바삭하고 속은 쫄깃한 기름떡은 입안에 들어가자마자 혀를 황홀하게 만든다.





다른 음식들은 제주에 내려가면 종종 먹었지만 기름떡은 명절 음식이라서 명절 때가 아니면 먹을 수가 없었다.

취직 준비할 때나 취직하고 나서는 바쁘다는 핑계로, 결혼을 하고 나서는 시댁에 가야 한다는 이유로 명절 때 내려가지 않은 나의 불찰도 있다.

취직 전에는 편하지만은 않은 명절을 피하고만 싶었다. 안달복달하는 친적들 사이에 있는 건 피곤하기만 했으니까. 적적하더라도 자취집에서 원 없이 자고, 뒹굴거리는 게 오히려 편했다. 그때의 난 가족 구성원으로서 최소한의 의무마저도 지키는 게 귀찮고 성가셨다. 정 가고 싶으면 비성수기 때 혼자 조용히 갔다 오는 게 좋았다.





결혼하고 아이까지 생긴 지금은 마음먹지 않고는 제주에 내려가는 게 쉽지 않은 일이 되었다.

명절에 내려가려면 시댁 일정도 맞추어야 했다. 또한, 어린아이와 한 시간 동안 옴짝달싹 못하는 비행기 안에서 실랑이하는 것도 쉬운 일이 아니었다. 더군다나 제주도 붐이 일어나면서 명절 때 제주로 여행 가는 사람들이 많아 비행기표는 가격이 치솟았다.

원하는 시간대로 가게 되면 성인 한 명당 왕복 티켓값이 대략 16만 원, 성인 둘이니 32만 원. 적지 않은 돈이다.

그걸 알기에 엄마는 굳이 돈 들여 명절 때 내려오지 말고 비성수기 때 오거나, 아님 엄마가 올라오겠다고 했다. 엄마가 1년에 한두 번 상경하게 되면서 고향에 가는 것은 고작해야 1년에 한 번 갈까 말까 한 일이 되었다.









그러던 어느 날 엄마가 통화하다 말했다.

“설 지내고 기름떡이랑 고기 산적 남아신디 보내주카?” ("설 지내고 기름떡이랑 고기 산적 남았는데 보내주까?)


눈에서 섬광이 지나가듯 번쩍거렸다.


“우와!! 엄마 보내줘! 안 그래도 기름떡 너무 먹고 싶어 했잖아! 고기산적도 먹고 싶었는데!! 보내줘!!!”

기름떡을 노래 부르던 딸을 잊지 않았던 엄마. 전화를 끊고 택배 오기를 기다렸다. 엄마가 보내 준 택배를 애타게 기다리게 될 줄이야.




"띵동!"

늦은 오후가 되었을 때 택배 기사가 아이스박스를 들고 인터폰 너머에 서 있었다. 엄마는 딸이 빨리 받아 볼 수 있도록 우체국 문이 열리자마자 달려가 돈을 들여 당일배송으로 보내주었던 것이다.

들뜬 마음으로 헐레벌떡 문을 열고 택배 아저씨가 건네주는 아이스박스를 건네받았다.

"수고하세요~"


경쾌한 목소리가 절로 나왔다. 부리나케 부엌으로 달려갔다. 생각보다 아이스박스가 크고 무겁다.

'이상하네.. 기름떡이랑 고기산적만 들었을 텐데...'

어디 잘못되기라도 하면 큰일 날 것처럼 테이프는 박스 주위를 몇 바퀴나 에워싸고 있었다.

들뜬 마음으로 테이프와 실랑이를 했다. 장장 5년? 5년이 뭐냐?! 7년이던가?! 정확히 기억도 안 난다! 오랜 시간 고대하고 고대하던 기름떡을 오늘 드디어 먹는 건가 싶어 흥분한 마음이 좀처럼 가라앉질 않았다.





택배 상자를 열어보니 레드향에 한라봉에 잡채에 고기산적, 참기름, 로션과 수건까지……. 둘째 딸 살림에 보탬이 되라고 생필품까지 보낸 엄마.

약 460km 떨어져 있는 제주에서 날아온 택배에는 엄마의 마음이 꽉꽉 담겨 있었다.

연이어 내 눈은 한 곳에 멈췄다. 동공이 흔들렸다

그토록 그립고 그립던 내 사랑 기름떡이 비닐봉지에 돌돌 말린 채 구석에 놓여 있었다.

그리워하던 음식을 마주 하는 건 티비는 사랑을 싣고에서 애틋하게 그립던 이를 만나는 느낌과 같았다.

입꼬리는 올라가서 내려올 생각을 하지 않는데 눈에선 눈물이 글썽거렸다. 기름떡은 여섯 개씩 일곱 봉다리에 담겨 있었다.

봉다리 하나를 꺼냈다. 들뜬 마음을 진정시키며 프라이팬에 기름을 두르고 약불에 살살 지진 후 앞뒤로 설탕을 버무려 한 입 먹는데, 바로 추억의 그 맛이었다.



어린 시절의 내가 된 듯 추억들이 새록새록 묻어났다.

명절에 기름떡을 만든다는 소리에 놀다 말고 부엌으로 달려가 엄마 옆에 쪼그려 앉아 구경했었다. 호기심 어린아이는 찹쌀 반죽을 손가락으로 꾹꾹 찔러보다가 반죽을 조금 떼내어 눈사람도 만들고, 똥도 만들며 배시시 웃었다. 반죽들을 프라이팬에 지지려 하면 어른들은 나에게 위험하다며 멀찌감히 물러나 앉으라고 말했다. 설렘을 가득 안은 반죽들은 기름 위에서 작은 기포들을 내뿜으며 지글거렸다. 소리만 들어도 군침이 돌았다.

노릇하게 튀겨진 기름떡을 하나 짚어 올리면 맛있는 연기가 났다. 앞뒤로 설탕을 버무려 내게 건네주면 호호 불어가며 조심스레 한 입 먹고 함박웃음을 지었다.

설날에는 떡국은 안 먹더라도 기름떡만은 반드시 먹었던 나.

잊고 있던 어린 시절의 그 맛과 추억이 돋아났다.






엄마가 덤으로 보내준 돼지고기 산적이랑 소고기 산적도 지져서 따끈한 밥에 배추김치 올려 한입 먹는데, 기가 막히다! 밥도둑이 따로 없다. 어릴 적에도 고기산적만 있으면 밥 한 그릇을 뚝딱했는데, 지금도 밥 솥에 남아 있는 밥을 싹싹 긁어먹었다. 흥분한 식탐은 고기산적을 순식간에 동나게 해 버렸다.


기름떡만은 사수하려 도로 포장한 뒤 냉동실 한 켠에 자리를 만들어 넣었다. 그 후로 냉장고를 볼 때마다 제주가 내 옆에 있는 듯했고, 어린 시절의 내가 머무르고 있는 거 같았다.

반년이 지난 지금도 냉동실 구석엔 어릴 적 추억과 고향의 아련함이 도망가지 않고 여전히 머무르고 있다. 흐뭇한 미소가 절로 나온다. 냉동실 문을 열어본다. 아직 세 봉다리가 남아 있다. 안도감이 든다. 추억들이 빨리 사라지지 않도록 아끼고 또 아껴먹어야지라고 생각하며 냉동실 문을 닫았다.



어디선가 나를 부르는 소리가 들리는 듯하다.

"현주야~ 기름떡 먹으라!! 식기 전에 먹어야 되매! 어서 오라게~"

("현주야! 기름떡 먹어! 식기 전에 먹어야 돼! 어서 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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