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노부부의 싱그러운 옥탑방 텃밭


부천으로 이사 오고 첫 번째 여름이었다. 에어컨을 켜기 위해 거실의 커다란 창문을 닫으려다 건너편 옥상으로 시선이 갔다. 옥상엔 푸릇한 작물이 한 가지도 아닌 수십 종이 자라고 있었다. 우와. 저게 몇 가지야! 그 후로 종종 창문을 여닫을 때마다 건너편 텃밭을 보게 되었다. 얼마나 자랐나. 또 무얼 키우나. 내 텃밭도 아닌데 괜히 관심이 갔다.


날이 갈수록 작물들은 무럭무럭 자랐다. 텃밭의 주인이 궁금했다. 어느 날이었다. 몸집이 제법 있는 할머니가 집게핀으로 올림머리를 하고선 작물에 물을 주고 있었다. 또 어느 날은 180cm은 족히 됨직하고 하얀 런닝 셔츠 사이로 갈비뼈가 유난히 도드라진 할아버지가 텃밭 시설물을 보수하고 있었다. 얼마나 부지런하신지 간혹 새벽부터 톱질을 하거나 망치질을 하실 때는 자다 깨기도 한다는 건 비밀이지만.


오늘도 창문을 열다 노부부의 텃밭을 본다. 한 달 사이에 작물들이 많이 자랐다. 갈색 벽돌로 지어진 옥탑방. 그 앞엔 집 넓이만한 마당이 있고, 기다란 빨랫줄이 사선으로 마당의 허공을 가로지른다. 그 아래에는 수십 종의 온갖 작물과 화분이 빽빽하게 공간을 채운다. 마당 바닥에는 초록 우레탄이 칠해져 있고, 옥탑방 위 옥상에도 초록 우렌탄이 칠해져 있다. 수많은 작물도 초록. 노부부의 집은 초록으로 채워져 있었다. 골목에서 들리는 소음과는 동떨어진 세계 같다. 평온하면서도 느긋한 초록 나라. 숲속에 있듯 나까지 마음이 차분해진다.


텃밭의 나이는 몇 살일까? 내가 이사 오기 훨씬 훨씬 전부터 노부부와 같이 세월을 보냈을 텐데. 그들의 마당엔 할머니 할아버지가 보낸 시간이 고스란히 스며들어 있을 것이다. 무료할 수 있는 하루하루를 작물과 호흡하며 내는 그들. 밤이 가고 아침이 다가오면 어제보다 작물들은 자라고, 노부부의 행복도 한껏 자랄 테지.


불과 2년밖에 되진 않았지만 노부부의 텃밭을 보며 봄, 여름, 가을, 겨울을 더욱 가까이서 만나게 되었다. 칼바람이 볼을 얼얼하게 때리는 겨울을 지나, 따스한 볕이 드는 봄이 오면 누구보다 부지런하게 소박한 농사를 준비하는 할머니, 할아버지의 모습이 이젠 정겹다. 노인들의 얼굴에는 모진 삶을 살아온 흔적이 배어 있지만, 텃밭을 가꾸는 지금의 몸짓과 손짓에는 보람과 즐거움이 엿보인다. 굳센 작물들처럼 할아버지 할머니도 어디 아프지 마시고 굳세셨으면 좋겠다.


텃밭을 보며 생각했다. 작았던 생명이 누군가의 정성 어린 손길을 통과해 무럭무럭 자란다는 걸. 씨앗도, 자식도 마찬가지라는 걸. 텃밭은 점점 그들을 닮아간다.













매거진의 이전글 추억의 맛이 배달되었습니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