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층살이 10년째(1)

웃음과 추억이 켜켜이 쌓인 곳

by 금머릿

거실이 넓은 집으로 이사를 온 건, 막내가 세 살 되던 해였다. 원래 살던 아파트 10층은 층간소음으로 인한 스트레스가 이루 말할 수 없이 큰 집이었다. 세상에서 제일 예민한 사람만 우리 집 아래층으로 이사 오는 거 아니냐며 울상 지을 날이 많았다.

그러다 고3 자녀가 있는 가정이 이사를 오게 되고, 그 집 아저씨가 흥건히 술에 취해 우리 집 문을 두드리는 사건이 터졌다. 그때 우리는 오래 품고 있던 고민을 접고, 즉시 이사를 결심했다.

그 시기엔 층간소음으로 인한 갈등이 연일 뉴스에 등장했다. 심지어 생명을 해하는 사건까지 일어나던 때라, 남편과 나의 불안은 더욱 커졌다. 그 무렵 층간소음은 단순한 불편함이 아니라, 사람들의 마음을 시험하는 사회적 긴장이 되어 있었다.

“아이가 셋을 키우는 집이니 양심적으로...”

“세상이 무서워서...”


여러 이유를 말했지만, 사실 가장 큰 이유는 한창 자라나는 아이들에게 ‘안 돼’를 덜 말하기 위해서였다.

아이들이 움직일 때마다 “조용히”를 외치던 우리 부부는 점점 지쳐갔다. “아빠, 그럼 나는 언제 놀 수 있어?” 초등학교 2학년이었던 큰아이가 시무룩하게 묻던 그 날에, 남편은 아이가 안쓰러워 견딜 수가 없었다고 했다. 미안한 마음이 가득했다고 했다.

아이들은 아플 때 움직이지 않는다. 건강한 아이는 몸을 이리저리 움직이며 살아 있음을 뿜어내는 존재다. 그런 아이들에게 ‘뛰지 마, 뒤꿈치 들고 걸어, 앉아서 놀아, 목소리 낮춰, 빨리 자...’와 같은 말을 끝없이 해야 한다는 것. 그것은 부모나 아이에게 거의 지옥이나 마찬가지다.

그런다고 층간소음이 아예 생기지 않는 것도 아니다. 수십만 원짜리 매트를 거실 전체에 깔았지만, 아래층의 예민함은 사라지지 않았다. 작은 생활 소음에도 히스테릭한 반응을 보이게 됐다.


한낮에 도마에서 마늘을 다지느라 칼질을 했더니 전화가 왔다. ‘도대체 무엇을 하길래 이렇게 시끄럽냐’며. 벽걸이 TV를 설치하느라 소음이 발생해도 그 잠깐을 견디지 못하고 어김없이 전화를 걸어왔다.

‘이건 뭐 살지 말라는 건가? 그냥 쥐 죽은 듯 조용히 있으라는 건가?’


온갖 생각으로 머리는 늘 터질 것 같았다. 소통하고 서로 이해하며 살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전화번호를 건넸다. 그런데 이렇게 시시때때로 전화를 걸 줄은 정말 몰랐다. 그제야 ‘무조건 죄송하다며 지고 들어가서는 안 된다’는 누군가의 조언이 왜 나오게 되었는지 이해가 갔다.


결국 우리는 모두가 불행해지는 삶을 끝내기 위해, 더 넓은 평수의 1층으로 이사를 왔다. 아이들의 놀이 공간을 충분히 확보해 주기 위해, 소파를 사지 않았다. 대신 아이들의 책으로 거실 벽면을 채웠다. 그 앞에 커다란 매트 두 장을 깔아, 아이들이 이리저리 뒹굴며 놀 수 있도록 해주었다.

그때부터 집은 아이들의 세상이 되었다.


<2화에서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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