며칠 전, 남편이 SNS에서 우연히 영화 한 편을 발견했다. 남편은 먼저 나에게 그 영화의 예고편을 보여주었다. 북한군으로 분한 등장인물이 노래하는 장면이 유독 인상 깊었다. ‘광야를 지나며’... 눈시울은 허락도 없이 이미 붉어지고 난리였다. 꼭 봐야지. 그 마음만이 온 가슴을 채웠다.
요즘 우리 집 아이들은 부모가 권하는 것은 무엇이든 거부부터 하고 본다. 그런 아이들에게 이 영화를 같이 보자고 권유했다. 역시나 싫다는 아이들에게 끝나고 맛있는 저녁을 먹고 오자는 말로 꼬드겼다. 알뜰하지만 실력 없는 엄마의 밥을 방학 내내 질리도록 먹은 아이들은 의외로 그 꼬드김에 쉽게 넘어왔다. 좋아해야 할지, 씁쓸해야 할지 모를 감정을 안고 극장으로 향했다.
아이들은 제목이 뭔지 묻지 않았다. 무슨 내용인지도 묻지 않았다. 지난번 함께 보았던 영화(아바타)에 대한 기억이 좋지 않아서였는지, 별다른 기대가 없어 보였다. 남편과 나는 둘만의 들뜬 마음을 그저 누렸다. 그리고 아마도 같은 마음으로 우리는 기도했을 것이다. 이 영화가, 이 시간이, 아이들에게도 선한 흔적으로 남기를.
영화를 보는 내내 남편과 나는 눈물을 훔쳐야 했다. 특히, 등장인물들이 가짜 부흥회를 위해 노래 연습을 할 때마다 휴지를 적셔야 했다. 예고편을 보며 어느 정도 예상한 스토리였음에도 우리는 왜 울음을 참지 못한 걸까? 금지된 노래로 가짜를 연기하다 진짜가 되어 버린 그들의 어리둥절함이 감동으로 몰려왔기 때문일 것이다.
영화가 끝나고 식당으로 가는 동안, 크게 감명을 받았는지 중학생 딸아이의 말이 좀처럼 그치지 않았다. 외식에 꼬드겨 나온 아이라고 하기에는 놀라운 모습이었다. 메뉴판보다 영화에 관심이 더 많았다. 자신이 놓친 대사, 이해되지 않았던 장면, 인물의 선택에 대한 질문들이 쏟아졌다. 이래저래 답변해 주다 보니, 나 역시 영화를 다시 되짚을 수 있어 좋았다.
집으로 돌아온 뒤에도 딸아이는 영화 OST를 찾아 들었다. 등장인물들이 직접 부른 노래가 꽤 감명 깊었다고 했다. 그리고 문득 이런 말을 했다.
“‘기적’이라는 말이 잊히지 않아. 나는 엄마 뱃속에서부터 신앙적 환경에서 자랐잖아. 그런데 살다가 갑자기 신앙을 가진 이들의 믿음이 도무지 이해되지 않았어. 그런데 오늘 영화에서 그 과정을 본 것 같아. 원래 신앙이 있었던 것도 아니고, 믿는 사람들을 잡아들이던 사람들이 결국 같은 믿음을 갖게 되는 걸 기적이라고 표현한 것이 너무 좋았어.”
아이의 감상을 들으며, 나는 또 다른 감동에 젖어 들었다. 과연 그 안에 담긴 의미를 아이가 다 이해할 수 있을지 의문이었다. 하지만 아이는 의미를 찾아내고, 곱씹고 정리하는 과정을 지나, 끝내 언어로 뱉어내었다. 내가 기대한 것 이상으로.
딸아이의 열정적인 반응과 달리 고등학생 아들은 초지일관 입을 다물고 있었다. 최근에 자신이 어딘가에 갇힌 채 자유롭지 못한 환경에서 강요받고 살고 있다며, 답답해하던 아이였다. 나름 유익하다 생각되는 이야기를 많이 들려주었지만, 아이의 미간은 좀처럼 펴지지 않곤 했다. 그랬던 아이가 영화 내내 골똘히 화면을 바라보고, 이따금 고개를 끄덕였다. 말이 없다고 해서 아무것도 일어나지 않은 건 아니라는 걸, 그 표정으로 알 수 있었다.
‘신의 악단’. 아이들은 영화를 보면서 비로소 제목을 알게 되었다. 남편과 나처럼 눈물 바람까진 아니었지만, 아이들 역시 각자의 방식으로 감동을 받았다. 또 영화 보러 가고 싶다는 말로, 오늘 함께한 시간이 얼마나 좋았는지를 고스란히 드러냈다. 우리 부부의 바람은 이미 이루어진 셈이었다.
영화를 관람하고 감상을 나누는 자리에서 감명을 받은 나는 ‘끝내 무엇으로 남고 싶은가’라는 질문 앞에 서게 되었다. 등장인물들에 비해 쉽게 가진 것이 많은 나는 어떤 존재가 되어야 하는 걸까?
소유한 것을 소중히 여기는 사람으로 남고 싶다. 신앙이든 자유든, 아무에게나 주어지는 하찮은 것이 아니니 말이다. 새로운 것에 현혹될 때도 많겠지만, 이미 내 안에 들어있는 것이 얼마나 값진 것인지 알아보는 사람으로 남고 싶다. 값진 것이 무엇인지 알았으니, 끝내 감사를 끌어안는 사람으로 남고 싶다.
고유한 가치관이 흔들리는 세대, 가치를 쉽게 버리는 세대 속에서 그저 그러고 싶다. 다수의 편에 서지 못하더라도, 어쩌면 손가락질받는 쪽에 서게 되더라도, 나는 끝내, 그런 사람으로 남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