함께 걷고, 써 내려가고, 바라봅니다.
사람마다 계절을 누리는 방법이 다르다. ‘누린다’는 말이 가장 잘 어울리는 계절은 뭐니뭐니해도 봄이 아닐까 싶다. 움츠리게 했던 찬 기운이 물러가고, 비로소 마음 편히 어깨를 펼 수 있는 기온, 게다가 갖가지 색으로 피어나는 꽃들과 팔랑이는 나비, 앙상하던 가지에 돋는 새순과 연둣빛 들풀들까지. 봄은 누리지 않으면 손해일 만큼, 누릴 것투성이다.
며칠 전, 지인들과 봄의 길을 걸었다. 오전엔 마음을 들여다보고 가정을 돌보는 방법에 대해 서너 시간 공부한 뒤였다. 각자의 집으로 흩어져야 할 시간이 되었을 때, 우리 중 하나가 말했다.
“날씨 너무 좋아요. 봄이 진짜 왔나 봐요.”
그 한 마디에 모두의 얼굴에 환한 웃음꽃이 폈다. 그냥 집으로 돌아가기에는 너무 아까운 날씨였다. 나는 모두의 마음을 대변하듯 제안했다.
“우리 좀 걸을까요?”
‘좋아요’라는 대답이 우후죽순 이어졌다. 마치 그 말을 해주기를 기다렸다는 듯이. 특별한 벚꽃 명소는 아니었다. 그저 교회 건물 주변, 공원으로 이어지는 동네 길일 뿐이었다. 그러나 길가에 세워진 나무는 잎사귀보다 먼저 피어난 하얀 꽃으로 우리가 함께 걷는 길을 한껏 장식해 주고 있었다.
온기를 품은 바람이 여러 차례 불어왔다. 우리의 머리칼을 사뿐히 들었다 놓기를 반복하던 바람은 칭얼대는 아기에게 솔솔 불어와 자장가를 불러주었다. 따사로운 햇살과 어딘가에서 날아온 꽃내음이 우리의 재잘대는 소리와 어우러져, 잊을 수 없는 또 하나의 봄 추억을 만들어 주었다.
나의 ‘봄을 누리는 작업’은 온라인에서도 이어졌다. 4월 한 달, ‘봄, 한 달 폭싹 쓰겠수다’라는 글쓰기 모임이 열렸다. 서울, 경기도, 충청도, 경상도 등 대한민국 곳곳에 있는 이들과 미국, 인도네시아 등 타국에 거주한 이들까지 모두 서른 명 정도가 온라인상에서 모였다. 애초에 스무 명을 모집했음에도 불구하고, 열 명이 웃도는 사람들이 합류하게 된 걸 보면, 4월의 봄을 글로써 나누고 싶은 이들이 많다는 것을 잘 알 수 있었다.
2주째 이어지고 있는 글의 주제는, 계절에 관한 게 많았다. ‘지난겨울의 나를 소개합니다/봄이라는 계절이 문득 떠오르게 만든 사람은 누구인가요?/봄을 맞이하는 나만의 방식이 있나요?’ 이와 같은 주제에 따라 작성된 글들은, 서른 가지나 되는 봄을 나에게 선물해 주었다.
때로는 행복해서 함께 미소 지었고, 때로는 아픈 사연 때문에 함께 눈물을 흘리기도 했다. 누군가의 상처에 함께 분노하기도 했고, 침울한 누군가에게 일으키는 응원이 줄을 잇기도 했다. 봄의 온기를 닮은 글 나눔은 다양한 봄을 누리기에 정말 좋은 방식이었다.
나는 혼자서도 봄을 누릴 줄 안다. 특히 2022년 4월 이후로, 벚꽃을 오랫동안 바라보는 습관이 생겼다. 4월이면 언제 어디서나 볼 수 있는 그 흔한 꽃이 뭐가 그리 예쁘다고 난리인지, 호들갑스러운 사람들을 이해하지 못하던 때도 있었다.
하지만 그해, 나는 처음으로 벚꽃을 볼 수 없는 경험을 했다. 가족 모두가 코로나에 걸려 격리된 한 주간, 꽃은 피어났고, 다시 꽃이 질 무렵에야 우리는 밖으로 나올 수 있었다. 그해의 벚꽃은 사진으로만 보았다. 먼저 격리 해제된 딸아이가 학교에서 찍어 보내준 사진 한 장. 그 사진이 아니었다면, 그해 벚꽃은 내 기억 속에조차 존재하지 않았을 것이다.
그 뒤로 나는 벚꽃이 피면, 그것을 눈에 담고, 가슴에 새기듯 한없이 바라보곤 한다. 1년 뒤 다시 볼 수 있는 꽃이라지만, 그 1년 뒤의 일이야 장담할 수 없다는 생각에 최선을 다해서 바라본다. 그러고 있노라면, 봄이 더욱 친근하게 느껴진다. 마음 깊은 곳에 있는 근심마저 별일 아닌 듯 가벼워지기도 한다.
누군가와 함께 걷는 봄, 글로 나누는 봄, 홀로 가만히 가슴에 담는 봄. 그렇게 나는, 오늘도 나만의 방식으로 봄을 누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