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울감을 느낄 때
아기의 정서적 건강을 위해 우선은 엄마의 몸과 마음이 건강해야 한다. 그래야 한다는 것을 나는 너무 늦게 알았다. 내가 울면, 내가 불안해하면, 아이 역시 행복할 수 없다는 것을 나는 그때 몰랐다.
누구도 얘기해 주지 않았던 이야기였다. 아니, 어쩌면 누군가 이야기해 주었더라도 귀담아듣지 않았던 이야기일지도 모른다. 아기를 키우는 엄마가 가져야 할 마음의 자세 따위에 관심 가질 생각조차 하지 않았던 나였으니까.
출산의 과정이 평탄하지 않아서 고생을 했다. 하지만 그야말로 ‘고생 끝 행복 시작’인 줄 알았다. 그저 사랑의 결실인 아기의 귀여움을 만끽하면 되는 줄 알았다.
소꿉놀이하듯이 젖을 먹이고, 인형 놀이하듯이 목욕을 시키고, 옷을 갈아입히고, 자장가를 부르며 잠을 재우고, 황금 변을 누면 웃으면서 기저귀를 갈아주면 되는 줄만 알았다.(‘변이 황금색인 걸 보니 장이 아주 튼튼하구나’라는 어릴 때 보았던 유산균 광고처럼)
그만큼 나는 준비되지 못한 엄마였다. 나를 제외한 세상은 너무 멀쩡해 보였다. 나를 제외한 다른 엄마들은 너무 완벽해 보였다. 사랑하는 아기에게 완벽한 엄마가 되어 주지 못한다는 자책이 또 다른 칼날이 되어 나 자신을 무수히 찔러댔다.
“이왕 갈 천국이라면 지금 가도 괜찮지 않을까?”
그 말이 남편에게는 극도로 위험하게 들렸던 모양이다. 한숨을 내쉬며 출근하는 대신, 남편은 즉시 친정 언니에게 연락했고, 나와 아기를 400킬로가 떨어진 친정 언니네로 직접 데려다 놓았다.
그곳에서 다행히 나는 가라앉은 마음을 원래의 자리로 돌이킬 수 있었다. 정성이 가득 담긴 언니의 음식들이 내 몸을 건강하게 해주었고, 조카들을 돌보는 모습을 보면서 아기를 제대로 돌보는 법에 대해 배울 수 있었다.
나의 몸과 마음이 건강해지자, 그제야 아기의 웃는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아기는 늘 나를 보며 웃었다. 형편없이 서툴고, 못난 생각으로 아빠를 힘들게 했던 보잘것없는 엄마에게 아기가 말하는 것 같았다.
“그래도 난 엄마가 좋아.”
내가 교회에서 10년 넘게 섬기고 있는 교육부서는 4세 이하의 아이와 엄마가 함께하는 공동체이다. 그곳에서 육아에 지쳐, 아기를 보면서도 쓴웃음밖에 짓지 않는 어린 엄마들을 만날 때면 나는 얼른 손을 내밀고 싶다.
꼭 20여 년 전의 나를 보는 것 같아서 안타까운 마음이 든다. ‘이렇게 살아서 무엇 하나’하고 넋두리하는 어린 엄마들에게 난 늘 아기의 웃음에 집중하게 한다.
“아이구, 예뻐라. 엄마가 많이 웃어주는구나. 웃는 모습이 어쩜 이렇게 예쁘니?”
그러면 씁쓸한 웃음이 한결 밝아지는 것을 볼 수 있다.
“00 엄마는 나에 비해 정말 의연하다. 어쩜 이렇게 야무져?”
나의 서툴렀던 경험은 그들에게 위로가 되고 용기가 되는 것 같다. 나의 진심을 알아봐 주는 엄마들은 다행히 바닥을 딛고 잘 일어서는 것 같다.
이만큼 자란 우리 집 세 아이를 보면서 조금이나마 신뢰를 해주는 것 같다. 완전한 공감은 불가능하겠지만, 그 마음을 들여다봐 주는 것만으로도 우리는 함께 일어설 힘을 경험할 수 있는 것이다.
큰아이를 양육하며 내가 겪었던 마음의 무너짐이 ‘우울증’이라는 말로 설명될 수 있다는 것을 최근에 알았다. 우울은 어디에나, 누구에게나, 언제나 우리 주변에 있을 수 있다.
자가진단이 가능하면 좋겠지만, 주변에서 알아채 주는 것도 중요하다. 적극적으로 도움을 요청해야 하고, 가능한 한 많은 사람이 관심을 기울여주어야 한다.
그렇게 극복한 경험을 간직하고 있다면, 훗날 갑자기 다가온 어느 우울을 조금은 의연하게 마주할 수 있지 않을까.
아기의 웃음이 눈에 보이기 시작할 때, 엄마는 회복된다. 그러니 우리 누군가에게 웃어주는 존재가 되면 어떨까?
나 혼자의 웃음이 당장 누군가를 일으켜 세울 수는 없겠지만, 우리의 작은 웃음 하나하나가 모여 단단한 돌을 이룰 수 있다면. 그 돌이 한없이 가라앉는 누군가의 딛고 일어설 바닥이 될 수만 있다면.
어우러져야만 살아갈 수 있는 인간으로서 그만큼 의미 있는 일이 또 어디 있을까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