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월 30일 단상
'직선은 인간의 선이고, 곡선은 신의 선이다' -가우디
오래된 도서관은 신축 아파트에 둘러싸여 있다. 거대한 도미노처럼 주변을 압도하는 직선은 안과 밖을 명확히 구분 짓는다. 고층 건물은 하늘로 쭉 뻗은 시원함보다 고압적인 모습으로 주변을 내려다본다. 딱히 울타리가 있는 것은 아니나, 프라이버시를 위한 각 동의 배치는 타인의 접근을 막고 있었다.
아파트의 그림자는 낡은 건물을 길게 조준했다가 풀고, 다시 겨냥한다. 중앙의 원형 돔에서 양팔이 뻗어 나온 도서관의 모습은 날개가 부러진 새처럼 창백한 얼굴이다. 사냥꾼에게 잡힌 알바트로스가 뒤뚱거리며 날개를 펄럭이는 것처럼 우스꽝스럽다. 좁은 공간을 지키는 것마저 위태로워 보인다.
도서관의 형태
긴 그림자에서 인호는 나왔다. 도서관 정문으로 들어선 그는 뛰다시피 걸었다. '자리가 있을까, 이미 늦었으니 디지털 자료실에서 인강을 들어야 하나?' 짧은 순간에 여러 번 마음이 바뀐다. 혹시나 하며 키오스크를 확인했다. 문 앞에 자리 딱 하나 남은 것을 확인하고 자신도 놀란 듯 눈을 껌뻑였다. '뭐 어때, 합격만 하면 된 거지!' 그는 터치스크린으로 59번 자리를 찍었다.
열람실로 내려가는 지하의 벽은 시멘트 자국이 부조처럼 곳곳에 튀어나와 있다. 사람 키보다 높은 곳은 검은 서리가 내린 것처럼 때가 눌러앉았다. 흰 페인트는 누렇게 변했고, 듬성듬성 뜯겨 있다. 여자 열람실에서 고개를 숙이고 올라오는 할머니를 비켜서서 잠시 멈춰 섰다. 경사진 계단 천장과 벽 사이에 누런 녹물이 흘러내린 것을 보았다. '난 장례식장 같은 이곳을 벗어날 거야.' 그는 무의식적으로 내뱉었다. 할머니가 무슨 소리를 들었는지 갸우뚱거리며 그를 쳐다본다.
지하 1층으로 내려가자 보존서고를 앞에 두고 좌우로 나눠진 통로가 보인다. 오른쪽 문을 열고 들어간다. 남자 열람실은 검푸른 패딩, 무채색의 후드티, 등산복 차림의 이들로 빼곡했다. 토익, 행정학, 부동산학 개론, 민법, 펼쳐 놓은 책은 각자 다르지만, 그들이 여기 있는 이유는 다르지 않다. 이곳에 있으나 이곳에 있지 않기 위함이라는 것.
왜라고 묻지 않고 매일 그곳으로 향한다. 아침 일찍 집을 나서는 것이, 그들의 욕망인지도 확실치 않으나 전혀 중요하지 않다. 영문을 모르고 시험공부를 했고, 떨어지고, 나타나기를 반복했다. 자신의 욕망이라 생각한 것에 소비되고, 불나방처럼 사라져 갔다. 6인용 칸막이에 앉은 이들은 12개의 다리를 내놓고 있으나 이상하게도 땅을 딛고 있지 않았다. 둥근 나이테의 덮개만이 그들의 무의미를 숨겨주고 있을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