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르하바, 바흐친처럼

김준산 읽기(9), 미하일 바흐친, 11월 7일 단상

by 김요섭



'대화는 타인과 나를 완성하려는 존재의 공부 과정이다. 그러나 이 커다란 세계는 타인의 얼굴을 잊게(레비나스)하고, 타자의 살을 오해케(바타유) 만든다. 얼굴과 살의 직접성이 사라진 시대에 실실한 대화는 불가능하다' -김준산



담을 수 없는 것


아이들은 호기심 가득한 눈빛으로 답한다.

"메르하바"

티 없는 검은 눈망울이 헛헛한 마음을 달랜다. 그는 뷰파인더로 볼 수 있는 아름다움이 멀지 않다고 느낀다. 망설임 없이 사진기를 든다. 천연덕스런 표정의 아이들은 그가 찾는 흔적을 가지고 있다. 놀라지 않게 슬며시 반셔터를 누른다. 생각지도 못한 곳을 향해 카메라 렌즈가 따라 움직인다. 타버린 지 오래된 재속을 더 이상 뒤질 필요는 없다.


그는 셔터를 누르고 사진을 확인했다. 이상하다. 초점이 나간 것 같다. 조리개 값과 셔터스피드를 달리해 몇 번이고, 다시 찍는다. 아이들의 다채로운 표정과 맑은 눈은 액정을 밝히고 있지만, 무엇인가 빠져있다. 셔터를 누를 때와 달리 그의 표정이 굳었다. 매부리코의 한 아이가 살그머니 다가왔다. '원 달라!, 달라?' 순식간에 휘발된 것은 어디론가 자취를 감췄다.


그는 말없이 다시 걸었다. 셀축의 로컬 마을을 정처 없이 걷는다. 얼마 지나지 않아, 기차소리가 들리기 시작한다. 오래된 철길이 나오고 그가 멈춰 섰다. 이즈미르행 기차가 무심히 지나쳐간다. 그는 올리브 나무가 보이는 나지막한 산 방향으로 다시 걷는다.


마을 입구로 접어들었다. 낡은 벽돌집은 녹물이 내려앉아있다. 잿빛 건물 사이로 속옷 차림의 노부가 보인다. 할아버지는 반가운 표정으로 마당으로 들어오라는 손짓을 한다. 오른손 엄지와 네 손가락을 겹친 채 연신 입으로 가져간다. 생면부지의 낯선 이를 환대하는 노부의 표정에 그는 마음이 복잡해진다. 사진기를 잡은 손을 반쯤 들었다가 내려놓는다. 어찌할지 몰라 웃음을 짓는다. 무엇보다 노부의 마음을 상하게 해서는 안된다.


할아버지를 향해 손을 배위로 둥글게 휘저으며 웃는다. 그는 오른손을 쥐고, 가슴을 두 번 두드렸다가 손을 펼쳐 보였다. 괴레메 언덕에서 길을 잃었을 때, 그를 도와주고 홀연히 사라진 이의 제스처였다. 노부의 표정이 살짝 변했다. 이해한다, 잘 가거라는 얼굴처럼 느껴진다. 그는 다시 한번 가슴을 두 번 두드리며, 고개를 살짝 숙였다. 속옷 차림의 그는 연신 손을 흔들며 대문 밖까지 걸어 나온다. 사랑하는 이를 떠나보내는 아쉬움과 애정이 담긴 듯한 얼굴이다.


그래, 지금이다. 그는 더도 말고 이 순간을, 담을 수만 있다면, 생각한다. 그러나, 이미 지나가 버린 것을 어찌할 수 없다. 그의 사진기는 어깨에 반쯤 걸쳐져 있다. 줄을 고쳐 매려다가, 잠시 망설인다. 아니다, 기다려야 한다.

순간 핸드폰이 울린다. 그의 표정이 굳었다. 받지 않는다. 끊겼다가 다시 몇 번이 울렸다, 받지 않는다. 입을 굳게 다물고, 계속 걸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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