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리와 무한 읽기(32), 레비나스 강독, 2022년 1월 27일
네모 : 선생님이 책에서 인용하신 종합할 수 없음의 또 다른 예가 있습니다. 태어남과 죽음이 있는 어느 인간의 삶이 다른 누군가에 의해 작성될 수 있습니다. 죽지 않은 사람에 의해서, 당신이 생존자나 역사가라고 부르는 사람에 의해서 쓰일 수 있습니다. 하지만 자기 삶의 여정과, 나중에 역사와 세계의 사건들이 이어지는 연대기 속에 기록될 것들 사이에는 환원할 수 없는 차이가 있음을 모든 사람이 인지합니다. 그렇다면 나의 삶과 역사는 전체성을 형성하지 못합니까?
레비나스 : 실제로 이 두 가지 관점은 절대로 종합할 수 없는 것입니다. 사람들 사이에는 모든 종합이 전제하고 있는 공통의 영역이 없습니다. 객관화된 사회에 대해 말할 수 있게 하는 공통의 요소, 사람과 사물이 닮으려면 필요한 공통의 요소, 사람이 자신을 사물처럼 개별화하려면 거쳐야 하는 공통의 요소는 일차적인 것이 아닙니다.
라이프니치의 표현을 따르면 참된 인간 주체성은 식별 불가능한 것이기에, 결과적으로 주체성은 사람들을 한데 묶는 어떤 유의 개별자로 있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는 주체성의 비밀을 말하면서 이를 언제나 알고 있습니다. 그런데 헤겔은 이 비밀을 조롱했지요. 말하기란 낭만주의적 사유에 좋은 것이라면서...
네모 : 전체성의 사유에는 비밀이 허용되지 않기 때문에 전체주의가 있다는 것입니까?
레비나스 : 전체성에 대한 저의 비판은 사실 우리가 아직도 잊지 못하고 있는 정치적 경험 이후에 나왔습니다.
1.
'주체성은 사람들을 한데 묶는 어떤 유의 개별자로 있는 것이 아닙니다.'
레비나스는 주체성이 전체성을 지향하는 개체로 존재하는 것이 아님을 분명히 하고 있다. 그의 주체는 타자를 지향하는 가능성이기에 지배하는 전체성으로부터 달아난다. 단일성이 성급하게 소유하려 하였으나, 결코 밝힐 수 없었던 '식별 불가능'을 향한다. 동일성이 살해한 '비밀'이자 그곳으로 향하는 '참된 인간 주체성'이고자 할 뿐이다.
이러한 '묶임'에서 빠진 '공통의 영역'은 이미 주체로부터 멀어져 있다. 기관 없는 신체이자, 어떠한 유기적 종합으로 향하지 않는 차이는, 비존재하고 있는 것이다. 그것은 오직 종합될 수 없음으로, 절대적 다름으로의 '비밀'이다. '허용되지 않는 비밀'이 아닌 시원적 신비로서 모든 제약의 너머에 있으며 영원히 달아나는 것이다.
2.
'사람이 자신을 사물처럼 개별화하려면 거쳐야 하는 공통의 요소'는 일차원적 요소이다. 고유성을 상실한 동일성은 브라질리언 왁싱 이후 매끄러운 몸과 같다. 어떤 부정성도 쉽게 긍정화되는 자본적 교환 관계 속에 생존이 자리 잡고 있다. 속도, 효율, 유용성으로 소비되는 상품에 사람도 제외될 수 없다. 중세로 가는 폭주기관차에 기꺼이 연료가 되고자 하는, 일차원적 인간의 매끄러움은 어떠한 애매성도 상실하고 만다.
그러나, 에로스는 애매하다. 복수적 단수로서 애매성을 품은 존재는 개별자로 있지 않다. 그는 해명할 수 없고, 명증 되지도 않는 타자와 함께 있기에 '식별 불가능'하다. 그를 호명하더라도 언제나 남아있는 여분은 알 수 없는 신비이자, 비언어적인 것이다. 비인칭적 비어있음과 함께 있기에 역설적이게도 그의 고유성은 사라지지 않으며, 동시에 에로스는 보존될 수 있다.
3.
다양체이자 폴리포니아적 존재도, 비존재와의 관계는 항상적일 수 없다. 멀어지는 것과의 관계이자, 합일 없는 합일은 단절적으로 지속한다. 자신의 집을 언어로 꾸밀 수밖에 없는 존재가 세밀하지 못하거나 둔탁해질 때, 사랑은 소리 없이 끝난다.
그의 내면성에 기관 없는 신체로 있던 타자성은 즉시 유기체로 환원되어 버리고 만다. 신비는 낯섦을 상실하고, 무한으로의 열림은 순식간에 닫힌다. '일리아(il y a)'가 헤테로토피아적 장소를 상실하고 마는 것이다. 완고한 동일성으로 덮인 주체의 분절은 필연적이며, 결국 에로스는 애매성을 잃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