군다(Gunda, 2020), 빅토르 코사코프스키 감독
타인 자가 아닌, 타자
나는 당신의 먹거리가 아니다.
우리는 너희의 식용(食用) 일 수 없다.
탄생의 기쁨과 짧은 인연,
끔찍한 이별 후 잔인한 도축.
그들은 매일 죽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알지 못한다.
그들의 무지(無知)는 지적 태만일 수 없다.
계산하지 못함이, 사랑하지 못함일 리 없으며,
끝 간 데 없는 환대는, 지독한 미련함이기에.
사랑의 부재
현대인은 사랑하지 못한다. 계산하며, 파악하고, 비교할 뿐이다. 효율과 유능, 신속 정확함의 속도전. 그들만의 눈먼 경쟁 속, 멀리서 온 손님은 장소를 찾지 못한다. '기다림, 애태움, 끝 간 데 없음'의 언어는 형해화되고 말았다.
우리는 보지 못한다. 가장 가까이에 있지만 그들을 볼 수 없다. 단지 식재료로써, 수단화된 파편적 형태만 볼뿐이다. 가장 효율적인 육가공 날짜를 계산하는 인간은 도저히 알 수 없다. 잔인한 무관심은 결코 사랑에 다가서지 못한다.
영화는 그곳을 향한다. 결코 알 수 없었던 진실을. 그들은 무지(無知)하기에 사랑한다. 파악할 수 없기에 계속 어루만지며, 비교할 수 없기에 계속 다가가간다. 그들은 미련함으로 사랑하며, 어리석음으로 서로를 돌본다. 느리게 애터 지는 순간에도, 타자를 타자인 채로 환대할 뿐이다. 작은 농장의 다채로운 가족의 일상은 환원될 수 없는 아름다움으로 당신을 찾아간다.
비어있음의 있음
영화의 마지막 장면, 어미 돼지는 자식들이 있던 장소를 계속 헛돈다. 트랙터가 실어가 버린, 어린 자식들의 남아있는 체취를 맡으며, 계속 주변을 맴돌 뿐이다. 코에 거품을 문 채, 옅은 비명 같은 울음소리를 반복하며. 그녀의 부풀어 오른 배는 들숨과 날숨 사이, 터질듯한 슬픔을 어찌하지 못하고 흐느낀다.
카메라는 헛간의 검은 구멍을 비춘다. 거친 숨을 헐떡이며 자식을 찾고 있는 그녀의 숨소리만이 영화관을 채운다. 그곳은 첫 장면과는 달리 아무것도 남지 않았다. 그러나 없다고 말할 수도 없다. 비어있음의 있음. 끝 간 데 없는 애도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랑인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