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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진무구한 그로테스크, 꿈꿀 권리

「촛불의 미학」가스통 바슐라르 읽기(8)

by 김요섭



Ⅲ.

세계에 대한 몽상가는 자신의 희미한 등불로부터 하늘의 거대한 별들까지 얼마나 손쉽게 이동하는가! 독서하는 동안 그런 확장에 사로잡힐 때 우리는 열광할 수 있다. 그러나 우리의 열광을 더 이상 체계화할 수는 없다. 우리의 모든 탐구에서 우리는 이미지의 분출만을 붙잡을 것이다.


특별한 이미지가 우주적인 가치를 지닐 때, 그것은 현기증 나는 사유의 역할을 수행한다. 이러한 이미지ㅡ사유, 이러한 사유ㅡ이미지는 맥락이 필요치 않다. 견자(見者)가 보는 불꽃은 말로 표명하라고 촉구하는 유령 같은 현실이다.


몽상에 단 하나의 모순만 있어도 친근한 현상들에 대한 판단의 진부함으로부터 몽상가를 해방시키고 자연을 뒤흔드는 데 충분하다. 그래서 주베르의 <팡세>를 읽는 독자 역시 상상하는 데 즐거움을 느낀다. 그는 이 축축한 불꽃, 그 불타는 액체가 높은 곳을 향해, 하늘을 향해 수직적인 냇물처럼 흘러가는 것을 본다.


하나의 이미지ㅡ사유ㅡ문장은 표현의 쾌거이다. 그 속에서 말은 사유를 넘어선다. 그리고 말하는 몽상 자체가 글을 쓰는 몽상에 의해 초월된다. 사람들은 이와 같은 '축축한 불'에 대한 몽상을 감히 말할 수 없을 것이다. 그러나 사람들은 그것을 글로 쓴다. 불꽃은 작가가 되고 싶게 만드는 유혹이다.


환상과 진실이 결합된 톤은 단순한 독자인 우리에게 진지하게 꿈꿀 권리 부여해 준다. 마치 그러한 몽상 속에서 우리의 정신이 냉철하게 작용하고 있는 것처럼 말이다. 주베르가 우리를 이끌어가는 진지한 몽상 속에는 세계의 현상 하나가 표현되고 따라서 지배된다. 이 현상은 그것의 현실을 넘어선 어떤 피안에서 표현된다. 그것은 자신의 현실을 인간적 현실로 바꾼다.

(35~37p)




1.

축축한 불꽃은 순진무구한 그로테스크이다. 하늘을 향해 흐르는 수직적 냇물은 가장 기이한 것과 순수한 것의 결합이다. 몽상은 '현실을 넘어선 피안'에서 표현되는, '꿈꿀 권리'인 것이다. 그것은 초재적 장소를 향한 발원(發願)이자, 은밀한 힘의 흐름이다. 유한성의 물리(物理)로는 도저히 납득할 수 없는 기괴한 현상.


'축축한 현실'은 또 다른 나 자신이다. 느닷없이 목구멍으로 터져 나오는 존재의 외침. 본래적 실존으로서 나는, 그런 존재였기에. 무의식의 심연에서 분출되는 축축한 것을 향해 손을 뻗는다. 만져지지도 않고, 기화되지도 않으며, 어떤 과학법칙도 초월한 채. 그것은 무한한 우주를 향해 끝없이 상승할 뿐이다. 존재자 속의 비의식으로 일리아. 그 유별난 흔적은 오랫동안 억눌린 비존재의 고독한 함성이며, 동시에 전존재의 가능성이다.



2.

'이미지ㅡ사유ㅡ문장'은 사유를 넘어선다. 갑작스럽게 등장한 기괴함은 진지하게 사유되기 어려우며, 언어화하는 것도 불가능에 가깝다. 오직 순진무구한 그로테스크. 가장 낯설며 전혀 다른 셋의 이어질 수 없는 연결. 그것은 지상을 넘어선 초월이자, 동시에 인간적인 너무도 인간적인 '현실'이다.


우리의 아이러니이자 진실은 단지 피안을 향한 동경 어딘가, 혹은 현실의 비루한 인정 속에 있지 않다. 선악의 저편 어딘가, 피안 속에서 표현되는 현실. 축축한 불꽃은 구체적 비실재이며, 극단적 세밀화이다. 계속할 수 없지만 계속하는 차가운 열정이자 매혹. 작가의 굳은 살이 박힌 손가락. 그것은 느닷없이 찾아온 손님을 맞이하는 유일무이한 방법이며, 꿈꿀 권리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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