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쪽이 더 강해서 다른 한쪽을 삼켜 버리는 이중의 불이 있다. 이 불을 알고 싶은 자는 켜진 불이나 램프와 횃불에서 타오르는 불꽃을 관찰하라. 왜냐하면 이 불꽃은 어떤 부패하기 쉬운 물질과 통합되고 공기와 하나가 되었을 때에만 타오르기 때문이다.
그러나 타오르는 이 불꽃에는 두 개의 불꽃이 있다. 하나는 푸른색 뿌리가 꼭대기까지 올라오면서 빛을 발하고 밝히는 흰색의 불꽃이다. 다른 하나는 나무에, 그리고 그것이 태우는 심지에 연결된 붉은색 불꽃이다. 흰빛은 직접으로 위쪽으로 올라가고 그 아래에는 타오르며 빛을 발할 수 있는 것을 다른 쪽에 처방하는 재료를 버리지 않은 채 붉은빛이 견고하게 남아있다."_비주네르
빛은 불의 초가치화이다. 그것이 초가치화인 것은 그것이 우리가 지금 무의미한 것으로 간주하는 사실들에 의미와 가치를 부여하기 때문이다. 사실 비주네르는 조잡한 불꽃이 흰 불꽃이 되고 흰색이라는 이 지배적인 가치를 정복하기 위해 얼마나 수고하는지 우리로 하여금 느끼게 하고 있다. 이 흰 불꽃은 "다른 쪽 불꽃이 때로는 검게 되었다가 붉은색, 노란색, 남색, 청록, 하늘색이 되는 것과는 달리 변화도 다채로움도 없이 언제나 동일하다."
그리하여 누르스름한 불꽃은 흰 불꽃의 반(反) 가치가 된다. 촛불의 불꽃은 가치와 반가치가 서로 싸우는 폐쇄된 전투장이다. 흰 불꽃이 그것에 자양을 주는 조잡한 것들을 '일소하고 파괴해야'한다.
잘 태우는 것은 높이 타오른다. 의식과 불꽃은 수직성의 동일한 운명을 지니고 있다. 촛불의 단순한 불꽃은 분명히 이 운명을 지시한다. 그것은 "흰색 이외의 다른 색으로는 자신의 희미한 빛을 변화시키지 않은 채 아래에서 자신의 행동을 완수한 후, 저 높은 곳으로 단호하게 올라가서 자기 거처의 본래의 장소로 되돌아가기" 때문이다.
(41~43p)
1.
아니무스의 손은 사정을 두지 않는다. 말종 인간의 목을 베고, 수없이 낮은 것을 찌른다. 날카로운 검기는 '부패하기 쉬운 것'의 말인성을 도륙할 뿐이다. 터질 듯한 심장은 한계까지 나아간다. 핏발이 곤두선 눈은, 그칠 줄 모르고 다음 적을 노려본다. 검게 그을린 자국과 타닥거리는 신음은 그의 자비를 호소할 뿐이다. 모든 것을 태우려는 힘에의 의지는, 수평을 넘어서려는 여전히 수평을 향한 함성이다.
2.
'아니무스'는 잠시 멈춰 섰다. 피를 뒤집어쓴 투구 사이로 거친 숨소리가 들린다. 더 이상 그의 앞에 다채로운 낮음은 보이지 않는다. 칼을 타고 흐르는 핏물이 검붉은 흉터 사이로 뚝뚝 떨어진다. 그는 계속되는 전투로 지칠 대로 지쳤으나, 영혼 속의 영웅은 이제 막 깨어난 듯 여전하다.
그러나, 그의 속에 무엇인가. 갈증을 해소하는 것으로 도저히 해갈되지 않는, 전혀 다른 무엇이 도사리고 있는 듯 느낀다. 정체를 알 수 없는 감정, 그는 단 한 번도 만나보지 못한 상대를 마주했다. 기이한 것은 형체도 없이 침묵한다. 존재는 드러냄 없이 그의 앞에 있을 뿐인데도 그는 압도당할 뿐이다. 철저한 무력함 속 무의미는 느닷없이 습격한다. 감당할 수 없는 그는 세차게 고개를 가로저었다. 격앙된 이는 검은 허공을 향해 칼을 휘두른다. 낯선 감정, 전사에게는 더욱 낯설 뿐이다.
그때였다. 반대편 언덕 너머로 새카만 쥐떼들이 다시 몰려온다. 아니무스보다 먼저, 그의 칼은 기다렸다는 듯 짙은 홍조를 띤다. 보이는 적을 상대하기도 바쁘지 않은가? 골치 아픈 것은 잊고, 단순해지는 것. 그것이 전사의 힘이며, 의지다. 아니무스는 그들의 피를 대지를 위해 바칠 것이다. 그것이 그의 숭고함이며 존재의 의미다. 칼을 쥔 손에 잔뜩 힘이 들어간다. 모호함을 벗어난 영혼은 기다렸다는 듯 다시 붉게 타오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