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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요섭 Jan 12. 2023

이미지 안의 온전한 현존

「나를 만지지 마라」 몸의 들림에 관한 에세이, 장 뤽 낭시 읽기(22)



1.

 '동일화' 없는 '분리'는 만짐이 시작되는 '순간' 사라진다. 소유할 수 없는 '내어줌' 속에 있는 '현존의 접촉'. '나를 붙들지 마라'는 비로소, 전혀 다른 의미가 된다. '장면 전체를 허물어 버리는' 무정한 떠남 속에도 여전히 뻗어있는 손. '애무'는 어떠한 '전유'도 없는 만짐이다. '실종'을 만지며, '떠남' 안에 머무는 어떤 '접착'. 제발 나를 '제대로' 만져달라는 간청은 오직 '나타나지 않는 나타남'을 향해있을 뿐이다. 서로를 알아보지 못하는 멀어짐 속에 머무르는 어떤 '어루만짐'.


2.

 '내어줌'뒤에 자아는 스스로를 '결락'시키며, 희생시킨다. '재현을 회피'하는 기이한 '어둠'. 모든 '광채'로부터 배제된 그에게 낯선 손은 다가온다. 못자국으로 구멍이 숭숭 뚫린 손바닥. 고통을 통과한 어루만짐은 텅 빈 몸을 부드럽게 감싸 안는다. 무엇보다 강렬한 광휘로 뒤덮이는 '부재로서 실종'. 비로소 '이미지 안의 온전한 현존'은 진정한 의미로 '재현'된다. 오직 '부활의 진리' 속에 머무르는 모든 '지각' 위에 뛰어난 이름. 진리의 신현은 떠남을 붙잡는 '연기(延期)된 '봄'이다.


(87~90p) 에필로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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