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멀티 유니버스의 진짜 적이자, 최고의 악은 아직 도착하지 않았다. '조이'의 순수한 악이 형상화된 검은 베이글. 블랙홀처럼 모든 것을 빨아들이는 그곳은 불확정성의 장소이자, 타나토스적 충동 그 자체인 곳이다. 에블린의 '할 수 있음' 밖에 없음으로부터 기인한, 황폐화된 장소.
그러나 그녀의 불충분한 사랑이 전부 자신의 탓만은 아니다. 젊은 시절, 아버지로부터 버려졌던 참혹한 기억. 이민자로서 아무것도 없이, 타국에서 살아남아야 했던 악착같은 세월들. 생존을 위해 계산되는 것만 치중하며 살았던 일상은, 단지 자신의 잘못만은 아니었던 것이다.
과정이야 어찌 되었건 에블린의 '계산할 수 있음'에 머무름은, 멀티버스에 최악의 결과를 가져왔다. 사랑받지 못한 '조이'에 의해 탄생된, 파괴와 죽음의 화신인 '조부 투파키'. 그녀는 새까맣게 타버린 채로, 엄마를 찾고 있다. 결코 자신을 사랑할 수 없는 허기진 존재. 알파 조이는 자신의 공허를 아무렇지도 않게, 타자의 죽음으로 바꾼다. 사랑 없음의 시간의 수직적 유산이자 잔인한 폭력의 흔적. 이는 결국 타자에 대한 수평적 폭력으로 이어지고 만다.
"모든 걸 경험하면서,
내가 보지 못한 것들을 당신이 보고
다른 길도 있다고 납득시켜 줬으면 했어."
2.
조부 투파키의 악함을 이기는 것은, 결코 강함이 아니다. 존재론적 남성성이 아닌, 가장 약함에서 시작된 어떤 낯섦. 억센 힘일 수 없는 새로운 쿵푸는, 더 이상 '할 수 있음'이 아니다. 에블린의 '약지'는 가장 연약함으로부터, 신비한 사건이 시작됨을 가리킨다. 오직 약한 빛에 도착하는, 지극히 높음이자 사랑의 상징. 역설적이게도 멀티 유니버스의 위기를 구해낼 수 없는, 약함 그 자체이기에 그녀는 선택된 것이다.
여태껏 알파 웨이먼드가 다중 우주에서 마주친 수많은 에블린과는 다른. '할 수 있을 수 없음'이자, 불가능 속의 에블린. 그녀의 부족함은 오히려 그에게 전적인 새로움으로 다가온다. 수많은 기술과 능력을 보여주었지만, 결국 조부 투파키에게 살해된 기존의 그녀와 달리, 지금의 에블린은 무능하기에. 멀리서 오는 것을 전적으로 받들며, 사랑할 수 있지 않을까. 존재론적 남성성으로서 에블린에게 부재했던 지점은, 어떤 타자성에게는 무한한 가능성으로 변용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