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든 문에서 새로운 출발

니체 읽기, 교양의 나라에 대하여, 9월 5일 단상

by 김요섭


상대주의라는 좀비


상대주의는 깊이를 모른다. 그들은 '반쯤 열린 문'이다. 단 한 번도 활짝 열리거나 굳게 닫은 적이 없다. 매달린 절벽에서 손을 떼 본 적이 없는 그들의 독백은 심연이 없다. 어떤 결단도 없는 얕은 매끄러움을 감추기 위해 '오십 군데에 알록달록하게 색칠을 하고' 교양의 가면을 쓴다.


얇은 덧칠을 덕지덕지 해놓은 그들의 피부는 썩은 양파처럼 곪아있다. '살아있기엔 너무도 죽어있고, 죽어있기엔 너무도 살아있는' 좀비 같은 모습을 깨닫기도 전에 죽음은 너무도 빨리 찾아올 것이다.



모든 문에서 새로운 출발


'그러나 내게는 짊어져야 할 무거운 짐'이 있다. 그는 교양의 나라에서는 받아들여질 수 없기에, '어떠한 도시에도 정주하지 못하고, 모든 문에서 새로 출발'할 수밖에 없었다. 시간만이 나의 동시대인이라고 말한 니체처럼 최고의 과업을 가진 자에게 고향이란 존재하지 않는다.


그들이 감당하지 못할 무거움은 무엇인가. '저 머나먼 바다에 있는 아이들의 나라'이다. 거친 파도와 수천 미터의 깊은 심연을 홀로 감당할 수 있는 자만이 도달할 수 있는 그곳은 아직 발견되지 않았다. 다 밝혀질 수도 없고, 도달할 수 있을지도 모르지만, 지금 여기 돛에 걸려 있는 작은 조각은 멀리서 오는 자를 환대하는 깃발이다.


오직 그를 믿어야만이 그의 선함과 지혜로움을 통찰할 수 있다. -키에르케고르


오직 그를 믿기에 믿을 수 있었다. 가면을 벗을 수 있었고, 심하게 지치지 않고 새롭게 출발할 수 있었다. 그 선함과 지혜로움을 향해 다시 한번 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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