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권의 책이 아닌, 오랜만에 내 편을 들어주는 친구를 만난 것 같았다. 읽는 내내 귀퉁이를 접었는데(필사할 부분이 있으면 꼭 접는다) 책이 오각형이 될 지경이다... 필사할 문장들이 너무 많다. 필사라도 하여 나의 문장으로 스미면 좋으련만.'
1박 2일을 책과 함께한 후, 생성된 '한나'님의 브런치. 작가님의 텍스트에서 애정 어린 손길로 책장을 넘긴 흔적을 발견할 수 있었습니다. 그녀에 의해 채집된 여러 문장은, 사유의 정원안으로 깊이 들어간, 재현될 수 없는 기억이겠지요. 텍스트로나마 작가님과 공명할 수 있어서 행복했습니다. 그럼 몇 구절만 소개해 볼까요?
1.
'중첩될 수 없는 단일한 겹은 사랑의 부재와 곧바로 연결됩니다. 아름다움은 결코 소유되지 않으며, 접촉의 순간만 생성되는 사건임을 잊으면 곤란하죠. 오직 타자와 겹친 틈에 잠시 머무는 사랑의 느닷없음을 긍정할 수 있어야 합니다. 이는 아름다움의 비밀을 환대하는 일이기도 하죠.'
『아름다움이 너를 구원할 때』를 쓰면서 가장 중요하게 생각한 단어 중 하나가 바로 '중첩'입니다. 하나로만 환원될 수 없는 어떤 상태. 하나이나 여러 개로 동시에 존재하는 '복수적 단수'. 기이한 욕망과도 같은 그것은 비로소 아름다움, 사랑과 맞닿는 형식일 수 있죠. 그 비밀에 관한 문장을 '한나'님도 채집해 주셨네요.
2.
'바깥에서 도착한 이상한 영감을 받드는 일은 낯선 손님을 환대하는 일이기도 합니다. 작가는 그 실체를 정확히 파악할 수 없음에도 자기에게 도착한 낯선 계시를 받듭니다. 이는 의무가 아니라 자신의 내밀한 욕망과 맞닿는 일이기 때문이죠. 창작자는 결코 자신의 언어로만 작업할 수 없습니다. 이미 이해된 자신의 언어는 결코 새로울 수 없고 낯섦을 생성할 수도 없죠. 바깥에서 도착한 영감과 섞갈리는 일 말고는 아름다움을 생성하는 일은 불가능할 수밖에 없습니다.'
'한나'님이 채집한 문장을 읽으며, 실은 낯선 느낌을 받았습니다. 이상한 감정은 '내가 쓴 것이나, 내가 쓴 것이 아닌 것 같은 감각'이라고 할까요. 아마도 바깥에서 온 '영감'과 강렬히 섞갈린 기억 때문은 아닐까요.
책을 쓰기 전, 프랑스 철학을 오랜 시간 읽고 강독해왔는데요. 난해한 미학 언어들이지만 분명 저에게 육화 된 부분이 있을겁니다. 그러나 이해된 것을 넘어서는, 도저히 이해될 수 없는 지점도 분명히 있기에. 아마도 이 텍스트는 그곳에 대한 몰이해가 안으로 스민흔적이랄까. 그 기이한 중첩 어딘가에서 책이 써진 것같다는 생각을 해봅니다. 만약 그렇지 않다면, 한번 읽으면 다 이해되어 버리고 말기에, 다시 읽고 싶은 욕망이 들지 않겠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