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로의 안과 바깥
레비나스 읽기(6), 타인 자와 타자, 9월 23일 단상
그 여자의 미로
핏방울이 드문드문 그의 발걸음 사이로 떨어진다. 왼쪽 갈비뼈 아래를 손으로 눌렀다. 은빛 비늘이 울컥하고 붉은 것을 토해낸다. 그는 짧은 신음을 내뱉었다. 자상이 생각보다 깊지만 지체할 시간이 없다. 냄새를 맡고 검은 개들이 쫓아올 것이다. 미궁 속 어디로 가더라도 피 냄새는 지워지지 않는다. 결국 그는 쫓기듯 미노타우로스에게 도착하고 말 것이다. 차라리 양지바른 이곳에서 조용히 기다리고 싶다는 생각도 든다. 잠시 차가운 돌에 기대앉았던 그는, 짙은 핏자국을 남기고 다시 일어섰다.
타는 듯한 갈증과 통증은 계속해서 그를 교란한다. 더 이상 몇 걸음도 내딛지 못할 것 같을 때, 자작나무 사이로 계곡이 보인다. 그는 마지막 힘을 짜낸다. 투명할 정도로 맑은 곳으로 서둘러 몸을 내밀었다. 코를 박고 물을 들이켜려던 순간, 자신의 속도를 이기지 못하고 빠지고 말았다. 빙하가 녹은 물은 헤엄칠 틈도 주지 않았다. 그는 부지불식간에 기절했다.
'상기에 의해 주어지는 나의 과거가 현재의 변양으로서 나의 생생한 현재를 초월해 있는 것과 마찬가지로, 나를 통해서 간접적으로 제시된 타아의 존재는 나 자신의 존재를 초월해 있다.' - 후설
그 남자의 꿈
그녀는 잠에서 깼다. 식은땀으로 베개는 흥건하게 젖어 있다. 일주일 전과 같은 꿈이다. 불면의 밤, 잠시 다녀가는 옅은 잠. 여자는 어김없이 쫓기고 있다. 넷플릭스 드라마의 연장일 뿐이라며, 헛것처럼 치부하기에 꿈은 생경하면서 규칙적이다. 누구일까? 7일이 되면 어김없이 찾아오는 그는 피를 흘리고 있다. 왜 쫓기는지도 알 수 없고, 계속 미로 속을 헤맬 뿐이다.
그녀는 물을 한 컵 마시고 머리맡에 둔 '시간과 타자'를 열었다. 레비나스의 문장이 눈에 띄었다. '동일자를 규정하는 것인 한, 타인 자는 엄밀한 의미에서 타자가 아니다. 경계선을 공유하는 것이라면 타인 자는 시스템의 내부에 있는 것이며, 여전히 동일자이다.'
우리의 무의식
"이제 정신이 좀 드는가?"
곰 가죽 털의 짙은 향에 자신의 땀냄새가 섞여 시큼한 체취가 올라왔다.
"피를 너무 많이 흘렸네, 이름 모를 기사여" 노인은 말했다.
눈을 뜬 그는 자신의 오른팔 사이로 빼꼼 고개를 내밀고 있는 여자와 시선을 마주쳤다. 뱀처럼 그의 몸을 감고 있는 육체의 온기를 느낄 수 있었다. 그녀는 가죽 털 사이로 미끄러지듯 전라의 몸을 드러냈다. 곧이어 천천히 몸을 일으키고는 숄을 걸친 채 무심하게 밖으로 나갔다.
"이건 혹시 꿈입니까?"
그는 여인의 뒷모습을 쳐다보다 물었다.
"자네는 바깥으로 나가길 원하나?"
노인이 퉁명스레 대답했다.
"여기는 어디죠? 바깥에는 무엇이 있습니까?
그는 상처 난 갈비뼈를 더듬다가 자상이 완전히 나은 것을 알고, 믿기지 않는 표정으로 말했다.
"여기는 따뜻한 환대가 있는 곳이에요. 어딜 가고 싶으신가요?"
노인의 얼굴은 어느새 여자의 얼굴로 변해있었다. 그녀는 몸을 배배 꼬고, 갈라진 혀를 내밀었다.
"바깥에는 황량한 사막만이 너를 기다릴 것이다"
여자는 갑자기 남자의 얼굴을 한 뱀으로 변한 채 말했다. 곧 자신을 향해 날카로운 덧니를 드러내며, 순식간에 그의 목을 향해 달려들었다.
그는 잠에서 깼다. 그녀도 꿈에서 깼다. 노인과 뱀은 사라졌다. 누가 먼저 깨어났는지 알 수 없다. 낯선 것은 안전하게 향유되고 사라질 뿐이다. 현실이 더욱 비현실적으로 느껴졌다. 남자는 이해할 수 없는 표정으로 여자를 쳐다보았다. 그녀는 무감하게 고개를 돌린 후 머리맡에 펼쳐진 레비나스의 책을 덮었다.
창밖으로 첫눈이 내리고 있다.
그녀는 물끄러미 바깥을 바라보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