냉이 된장국
고향에 사는 친구가 단체 카톡방에 사진 한 장을 공유했다. 봄볕에 앉아 친정엄마와 냉이 한 바구니를 놓고 다듬는 모습이다. 추위가 완전히 가시지 않은 날씨에 움츠러든 몸과 마음에 고향의 봄을 불어 넣어 주고 싶었나 보다. 아닌 게 아니라 건물과 건물 사이에서 매섭게 몰아치고 있는 바람 탓에 따사로운 햇볕을 받으며 봄나물을 캤을 친구의 봄맞이가 몹시도 부러웠다. 아흔이 넘으신 어머니의 굽은 등은 나물을 다듬는 내내 들썩이셨으리라. 다듬은 냉이를 데쳐서 된장을 살짝 섞어 초고추장에 새콤달콤 무침을 하고, 조갯살을 넉넉히 넣고 두부를 송송 썰어 넣은 된장국을 끓여서 모처럼 집에 다니러 온 막내딸에게 먹일 생각을 하며 얼마나 마음이 조급하셨을까?
어릴 적 초봄에 친구들과 산으로, 들로 냉이를 캐러 다녔다. 들녘 마른풀 사이나 얕은 산속 나무 밑에 떨어진 바스락거리는 낙엽을 헤쳤을 때, 숨어있던 초록빛 냉이를 발견하면 “심 봤다!”를 외치고 싶었다. 그 추운 겨울을 이겨내고 기어코 돋아난 모습이 기특하게 생각되어 어린 마음에도 그것을 귀하게 여기며 캐냈다. 큰 욕심 없이 바구니를 어느 정도 채워서 엄마께 가져갔을 때부터가 진짜다. 해물이 풍부한 곳이라서 바지락을 듬뿍 넣고 냉이된장국을 끓여주시면 온 가족이 입안 가득 이른 봄의 향기를 담을 수 있었다. 그 힘으로 나른해지기 쉬운 봄철, 까칠한 입맛에 활기를 불어넣고 기력을 회복하며 그 해를 산뜻하게 출발할 수 있었다.
냉이는 겨울에서 봄으로 넘어가는 이 시기에 맛과 향, 영양 성분이 가장 극대화돼 인삼보다 더 좋다는 말이 있다. 단백질과 비타민이 풍부하며 피로 회복과 거칠어진 피부와 눈 건강에 도움을 준다고 하니 냉이야말로 제철에 꼭 먹어줘야 하는 음식이다. 특히 냉이와 된장은 궁합이 좋다. 된장과 두부의 주재료인 콩이 냉이에 풍부한 비타민B와 비타민C가 파괴되지 않도록 보호하는 역할을 한다고 한다. 이런 영양학적인 것을 떠나서 나는 봄나물을 좋아한다. 언 땅속에서 숨어 있다가 싹을 틔워낸 그 생명력에 대한 감사함, 칙칙한 빛깔의 세상에 처음으로 초록의 생기를 불어넣어 주는 것에 대한 감사함. 봄나물에서 ‘감사함’을 느낀다.
친구의 사진 덕분에 오늘 저녁 메뉴가 정해졌다. 냉이, 바지락, 두부를 사 와야겠다. 어릴 때 먹던 맛 그대로 냉이된장국으로 봄을 느낄 수 있으리라. 냉이는 깨끗하게 다듬어서 씻어 놓는다. 바지락은 천연 조미료라서 멸치 육수는 생략해도 좋다. 해감한 바지락을 씻어 놓는다. 쌀뜨물에 된장을 적당히 풀어 넣고 끓인다. (된장국은 쌀뜨물로 끓이면 한층 더 구수해지고 감칠맛이 난다) 끓기 시작하면 냉이, 바지락, 두부, 마늘, 파 등을 넣고 한 번 더 끓여서 불을 끈다.
어릴 적 우리 엄마가 그랬던 것처럼 맛있는 냉이된장국으로 가족들에게 입안 가득 이른 봄을 선사하고 싶다. 그 마음을 온전히 느낄 수 있으려면 직접 냉이를 캐 보는 게 중요한데 그것이 좀 아쉽다. 비록 마트에서 구입한 냉이일지라도 향긋함만은 놓칠 수 없다. 봄철 입맛을 돋우는 냉이의 쌉싸름하고 풋풋한 맛까지 최대한 살려 끓여 내야 한다. 거기다 냉이의 효능과 추운 겨울을 이겨낸 생명력, 어릴 때 냉이를 캐던 에피소드까지 곁들인다면 남편에게도 아이들에게도 제철 음식의 보양 효과를 충분히 줄 수 있을 것이다. 오늘따라 그곳의 봄이 무척 그립다. 얼었다 녹고 있을 땅도, 갈색의 세상에서 보일 듯 말 듯 숨바꼭질하고 있을 냉이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