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줄, 한과, 산자
얼마 전 고향에 있는 부모님 산소에 다녀왔다. 날은 쌀쌀했지만, 가을걷이가 끝난 논과 밭에는 새 떼의 재잘거림으로 생동감이 넘쳐흘렀다. 흔히 듣던 새소리에 섞여 가늘고 청아한 소리가 '휙'하고 홀리듯 들리기도 했다. 그럴 땐 바쁜 걸음을 멈춰서서 주인공을 찾으려 두리번거렸다. 하지만 그런 희귀한 새는 어찌나 민첩한지 꼬리조차 보여주지 않고 도망가 버린다. 길가에 옹기종기 모여 있는 돌멩이, 이름 없는 들풀들, 하얀 비닐이 덮인 황토색 밭에서 뾰족뾰족 싹을 틔우고 있는 마늘밭을 보는 것만으로 무해력이 상승했다. 그저 반갑고 정겨웠다. 고향은 내게 그런 곳이다. 성묘를 마치고 근처의 큰아버님댁에 인사드리러 갔더니, 오랜만이라며 다들 반겨주셨다. 돌아오는 길에 큰집 새언니가 생강 한과를 한아름 차 안에 넣어 주셨다. 어릴 때부터 한과를 그다지 좋아하지 않았지만, 부모님 생각도 나고 싸주신 정성도 있어서 감사히 받아 들었다. 하나를 조심스럽게 입에 베어 물었을 때
"바사사삭".
베어 문 한과에서 하얗고 고운 가루가 느리게 날린다. 손을 받치고 더 조심스럽게 "바사사삭" 정말 맛있다. 식감에 반해서 연거푸 2개를 더 먹고 말았다. 찹쌀가루로 반죽을 해서 잘 말려 튀긴 후 조청을 발라 튀밥을 묻혀낸 과줄(한과 또는 산자의 다른 말)은 씹는 맛이 일품이다. 첫맛은 조심스럽게 바사삭 부서지는데 바로 입안에서 생강 조청의 은은한 향이 퍼지면서 튀밥과 함께 녹아버린다. 입맛은 세월이 흐르면서 변한다.
과줄은 주로 명절 전에 만들어서 제례 상에 올린다. 큰 명절엔 과줄 말고도 맛있는 게 차고 넘친다. 그렇다 보니 내게 과줄은 우선순위에서 한 참 멀었다. 그런 생각이 굳어져서 지금껏 과줄을 즐겨하지 않았다. 부모님이 살아계실 땐 흔하디흔했던 과줄이 일부러 찾지 않으면 먹을 수 없게 되면서 추억의 음식이 된 것이다. 고급스럽게 바스러지는 식감과 생강 향, 그리 달게 느껴지지 않는 조청의 어우러짐에 과줄을 인제야 받아들이게 된 것이다. 그리고 옛 기억을 더듬어 과줄 만들기에 대한 생각을 정리해 봤다.
어릴 때 설날이 다가오면 엄마는 다양한 음식을 계획하셨다, 그중에서도 과줄은 제례에 빼놓을 수 없는 음식이었다. 정성이 들어가는 음식 중에서도 과줄은 그 과정이 굉장히 복잡하다. 과줄의 핵심은 몸통 만들기다. 이는 과줄의 맛을 좌우한다. 깨끗하게 씻은 찹쌀은 7~15일까지 발효시킨다. 발효된 찹쌀은 곱게 빻는다. 여기에 콩물을 넣어 약주를 섞어 찜솥에 쪄낸다. 다 쪄지면 절구에 넣어 꽈리가 일 정도로 잘 빻아 준다. 비닐을 깔고 붙지 않게 밀가루를 골고루 뿌려준다. 그 위에 반죽을 적당한 두께와 크기로 썰어 잘 말려준다. 뒤집어 주며 골고루 말린다. 바짝 마른 몸통은 기름에 들어가면 몇 배로 커진다. 이때 중요한 것은 수저로 누르며 튀겨주는 것. 그렇지 않으면 풍선처럼 부풀어 버린다. 몸통에 조청을 골고루 바르면 빽빽하게 튀밥을 묻힐 수 있게 된다.
난 완성된 과줄보다 과줄의 재료가 되는 몸통, 튀밥, 조청을 따로따로 먹는 걸 좋아했다. 찹쌀과 콩가루로 만든 몸통은 튀기다가 부러지거나 못생겼다 싶으면 과자처럼 먹을 수 있었다. 과자가 흔하지 않았던 그 시절엔 딱 맞춤 간식이었다. 튀밥은 또 어떤가? 명절 무렵엔 뻥튀기 아저씨가 이 동네 저동네 돌아다니며 찾아가는 서비스를 마다치 않으셨다. 엄마들은 과줄을 위해서 하얀 쌀 몇 되를 기본으로 모처럼 만난 뻥튀기 아저씨가 눈코 뜰 새 없이 바쁠 정도로 옥수수, 콩, 말린 떡국떡 등 다양한 뻥튀기 거리를 맡겼다. 그건 한동안 우리들의 으뜸 간식이 돼 주었다. 조청은 신기한 음식이다. 가마솥에 식혜 물을 붓고 장작을 땐다. 하루 이틀 동안 은근히 끓여주면 식혜 물은 자연스럽게 졸여진다. 이때 우리에게 귀한 기회가 찾아온다. 식혜 물이 졸여질 때 물의 맨 위층은 농도가 더 짙다. 그때 엄마는 수저로 가마솥 가장자리를 한 바퀴 긁어내신다. 숟가락에 농도 짙은 조청이 붙어 금세 공기와 만나 굳어버린다. 어느새 수저에 단단한 조청엿이 생겼다. 그 시절 엿은 최고로 달콤한 간식이었다.
각각 준비한 몸통, 조청, 튀밥으로 완성품을 만들 차례다. 엄마는 예쁘게 튀겨진 몸통에 가마솥에서 만든 조청을 골고루 묻힌다. 튀밥이 담긴 바구니에 사뿐히 넣어준다. 아버지는 손목 스냅을 이용해 바구니를 가볍게 흔들어 준다. 언니는 박스에 깨끗한 비닐을 깔고 예쁘게 담는다. 오빠들은 아버지의 공정을 거든다. 나는 바구니에 튀밥이 부족하다 싶으면 튀밥을 채워 드렸다. 만들기는 분업이 잘 돼야 빨리 끝낼 수 있다. 그 양이 어마어마해서 처음엔 재밌게 만들다가도 금세 싫증이 난다. 그러기 전에 끝내야 모두가 기분 좋게 끝까지 참여할 수 있다.
과줄은 만드는데 최소 25일이 걸린다고 한다. 그만큼 만들기 번거롭고 정성이 필요하다. 과줄을 오랜만에 먹어보며 그 과정을 더듬어봤다. 그때는 깊게 생각하지 못했다. 엄마의 정성이 얼마나 대단한 것인지. 하나의 완성품을 위해 많은 날을 애쓰셨던 모습이 떠오른다. 과줄 몸통을 말리느라 장작을 때고 가장 뜨끈한 방을 그것들에게 내어줬다. 조청을 만들며 새벽에 몇 번씩 깨서 불을 조절하셨던 부모님이 눈에 선하다. 바삭하고 반듯한 몸통을 튀기기 위해 뜨거운 기름 속에 숟가락을 반복적으로 넣으며 기름이 튈까? 곁에 오지 못하게 하시면서 얼마나 조심스러워하셨는지…. 그 귀한 과줄을 귀한 줄 모르며 지금껏 살았다.
과줄, 하나의 완성품을 만들기 위해 크게 세 가지 과정을 거친다. 그 세 과정은 하나하나가 복잡하다. 몸통을 만들고 조청을 만들며 튀밥을 튀긴다. 그 시절엔 어느 한 과정도 생략하기 힘들었다. 그걸 다 거쳐야 하나의 완성품을 만들 수 있다. 그제야 비로소 제례 상에 올릴 수 있는 것. 과줄은 지극한 정성의 결정체다. 과줄이 만들어지는 과정을 생각해 보고 음식에 대한 맛의 깊이를 새롭게 깨닫게 됐다. 조용하게 부서지는 소리와 바삭한 식감에 반하기도 했지만, 속 깊이 들여다보면 정성스러운 음식에 대해 감사함이 크다. 귀한 음식을 귀한 것으로 볼 수 있는 눈을 새롭게 뜨게 됐다. 이번 설엔 고향에서 만든 생강 한과를 준비해 가족들에게도 ‘바사사삭’ 소리와 함께 실처럼 내리는 조청의 결정을 보여주며 입안에서 눈처럼 녹는 맛을 느끼게 해주고 싶다. 물론 그 과정의 정성스러움에 대해서도 이야기해 주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