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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낭만백수 채희태 Feb 10. 2020

세 가지 색깔 "꽃다지"

민중가요 이야기 #22

지난 연재에서도 한번 언급했었던 것 같다. 민중가요 중엔 제목 뒤에 숫자가 붙는 노래들이 꽤 있다. "지리산", "오월의 노래", "어머니" 등...

제목 뒤에 숫자가 붙는다는 것은 같은 주제의 노래들이 시대에 따라 계속 창작되어 왔다는 의미다. "지리산"이 빨치산의 투쟁을 담은 노래라면, "오월의 노래"는 광주민주화항쟁을 그린 노래다. "어머니"는 굳이 민중가요가 아니더라도 누구나 노래로 만들고 싶은 주제일 것이다. 같은 과 후배 중에 재능이 꽤 뛰어난 녀석이 있는데, 그 후배도 "어머니"란 제목의 민중가요를 작곡했었다. 과 안에서만 불려져서 많은 사람들에게 알려지진 않았지만 꽤 수작이다.

성균관대 국문과 90 임규근 시, 91 강정규 곡의 “어머니”

오늘 내가 소개하려는 노래는 "꽃다지"다. 꽃다지라는 단어는 마치 대한민국의 보수가 자유와 민주주의를 결합해 보수를 상징하는 단어로 선점한 것처럼 언젠가부터 진보진영이 선점한 단어가 되었다. 아마도 그 이유는 1989년 전노협 건설을 위해 전국 순회공연을 했던 노래판굿의 제목이 "꽃다지"였기 때문일 것이다.

국어사전에서 찾아 본 ‘꽃다지’의 뜻

국어사전을 검색해 보았으나 꽃다지라는 단어에 특정한 진영의 표식이 느껴지지는 않는다. 역시... 사실보다 중요한 것은 언제나 사실을 바라보는 관점이다. 지금은 같은 대상이 가지고 있는 본질보다 그것을 어떤 관점으로 보느냐가 더 중요한 시대인 것 같다.

전노협 건설과 연관이 있어서인지 꽃다지라는 단어를 들으면 웬쥐 노동운동과의 연관성이 떠오른다. 최초로 노래 “꽃다지”를 발표한 건 역시 노래공장의 ‘김호철’이다. 노래를 먼저 들어보자.


희망의 노래 ‘꽃다지’가 부른 “꽃다지1”

원래 민중가요는 시간이 갈수록 말랑말랑해지는데 노래 “꽃다지”의 경우는 처음에 발표된 곡이 가장 서정적인 것 같다. 노동운동을 하다 구속된 노동자가 빵의 작업장 언덕길에 핀 꽃다지를 떠올리며 동지들을 그리워하는 마음을 노랫말에 담았다. 노랫말은 “끝내 살리라” 등 노래공장의 노랫말을 주로 써 온 ‘김애영’의 작품이다. 아마 “꽃다지”라는 제목의 노래가 계속 발표된 이유는 “꽃다지 1”이 주는 감성이 워낙 탁월했기 때문일 것이다. “꽃다지 1”은 지금 들어도 정말 마음 깊은 곳을 울린다.

 


“꽃다지 2”는 1991년, 윤민석이 노동자노래단에 들어가서 만든 곡이다. 노랫말은 최준이 썼다. “꽃다지 1”이 다소 감성적이었다면 “꽃다지 2”는 노동자의 강한 힘이 느껴진다.


내 온몸의 핏줄을 주마
붉은  핏줄 너에게  주마
아아 거대하게 넘실거리는
민중연대 전선에서
손에 손 묶을 단결의 핏줄
너에게 주마 (1절)

내 온몸의 기름을 주마
적을 태울 기름을 주마
아아 투쟁으로 끝내 승리할
노동해방 전선에서
굳게 움켜쥘 꽃병의 기름
너에게 주마(2절)

자신의 몸에 있는 핏줄과 기름을 노동자의 단결과 투쟁을 위해 기꺼이 내어 주겠다는 이 노랫말은 지금 들으면 섬뜩하기도 하지만, 이 노래가 발표된 시기가 1991년 분신정국을 부른 노태우 정권의 공안탄압 시기였음을 감안한다면 그만큼 절박했다는 의미로 이해해야 할 것 같다.


1991년 발매된 노동가요모음 4집에 수록된 “꽃다지2”

윤민석의 노래는 정말 가사가 주는 힘이 탁월하다. 비록 본인이 노랫말을 쓰진 않았지만, 곡을 붙이는 과정에서 관여하지 않았을까 싶다. 세 곡을 굳이 비교하자면 노랫말과 곡이 주는 미적 어울림은 단연 “꽃다지 2”가 으뜸이다.

 


아주 오래전에 ‘시나위’ 공연을 보러 간 적이 있다. 시나위의 보컬 김바다는 공연 중간에 다음 부를 노래를 소개하며 세계적이 밴드들이 모두 커버한 곡이라 세계적인 밴드 중 하나인 ‘시나위’도 이 곡을 커버했다며 ‘Beatles’의 “Come Together”를 불렀다. 1990년대 민중가요 작곡가라면 “꽃다지”를 제목으로 하는 노래 하나쯤은 작곡해야 한다는 강박 비슷한 것이 있었을까? “꽃다지 3”은 “바위처럼”을 발표하며 민중가요계에 발랄한 출사표를 던진 ‘유인혁’이 노랫말을 쓰고 곡을 붙였다. 노래를 먼저 들어 보자.


“꽃다지3”을 부른 ‘꽃다지’의 ‘빡향미’

공연에서 “꽃다지 3”을 부른 가수 박향미는 대학 1년 후배다. 학교 다닐 때부터 노래 잘하기로 유명했다. 꽃다지 공연에서 박향미는 짧은 머리에 대한 에피소드를 이렇게 이야기했다. 미장원에 갔더니 남자 미용사가 있었다. 그래서...

“아저씨, 머리 잘라 주세요~”

정신을 차려 보니 아저씨 머리가 되어 있었다고 한다. ㅎㅎ 그래서 미장원에서는 호칭을 조심해야 한다. 아무리 미용사가 아줌마로 보여도 “아줌마, 머리 해 주세요~” 하면 큰일 난다.

개인적으로 박향미는 내가 아는 민중가수들 중에서 바이브레이션 콘트롤이 가장 뛰어난 가수다. 미성 보다는 탁성이라 민중가요에 최적화된 목소리를 가지고 있지만, 대학 땐 미성도 잘 냈던 것으로 기억한다. 안치환도 그랬다는 소릴 들은 적이 있다. 대학 땐 목소리가 허스키하지 않았다고...

“꽃다지 3”의 정서는 “꽃다지 1”과 “꽃다지 2”의 중간 즈음에 위치한다. “꽃다지 1과 2”의 화자가 빵 속이라면, “꽃다지 3”의 화자는 노동운동을 하다 구속되어 출근부에서도 그 이름이 지워진 동지를 그리워한다.


“꽃다지 1, 2, 3”을 들으면 마치 민중가요 전성기를 풍미했던 ‘김호철’, ‘윤민석, ‘유인혁’ 세 작곡가의 진검승부를 보고 있는 것 같은 착각에 빠진다. 김호철이 김호철 답지 않게 서정미 넘치는 “꽃다지 1”을 작곡했다면, 윤민석은 대학생 시절의 감수성을 적절하게 유지하면서도 그 틀을 과감히 벗어나 “꽃다지 2”로 자신의 존재감을 다소 과하게 드러낸다. 그리고 유인혁은 그 중간에서 “꽃다지 3”으로 신예답지 않은 노련함으로 둘 사이의 균형을 잡아주는 듯 보인다. 그냥 필자의 주관적 느낌이 그렇다는 것이다. 아무튼 “꽃다지 1, 2, 3”을 각각 듣고 있으면 다른 “꽃다지”가 기억이 나지 않을 정도로 모두 자신의 노래에 몰입하게 만드는 대단한 힘을 가진 노래들이라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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