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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낭만백수 채희태 Jan 18. 2020

광주민주화항쟁 40주기와 “오월의 노래”

민중가요 이야기 #17

올해는 광주민주화항쟁 40주기가 되는 해이다. 1979년 10월 26일, 당시 국민학교(난 초등학교도 못 나왔다. ㅠㅠ) 5학년이었던 난, 그날을 똑똑히 기억하고 있다. 고등학생이었던 누나가 “각하께서 돌아가셨어”라며 울면서 집에 들어왔기 때문이다. 아, 놀라운 교육의 효과여~ 제국은 절대 더 강력한 제국에 의해 몰락하지 않는다. 모든(자신이 없다, 대부분?) 제국의 몰락은 내부에서 시작된다. 미국이라는 제국은 언제, 어떻게 멸망할지, 혹시 트럼프의 당선이 그 징후는 아닐지...


10•26 사태 이후 12•12 군사 쿠데타를 일으켜 국가권력을 장악한 신군부는 5월 17일 집권 시나리오에 따라 비상계엄을 전국으로 확대하고 김대중 등 영향력 있는 민주 재야인사를 체포 구금한다. 유신에 항거했던 부마항쟁이 1979년 10월 4일, 당시 여당이었던 공화당이 신민당 대표였던 김영삼을 날치기로 국회의원에서 제명시키면서 촉발된 것처럼 김대중의 체포는 광주시민을 자극했다. 서울은 5•15 서울역 회군으로 기세가 꺾여 있었지만, 혁명의 도시 광주는 "계엄 철폐"와 "김대중 석방"을 외치며 거센 시위를 이어갔고, 신군부의 공수부대까지 투입한 유혈 진압에 광주시민들은 전남도청에 결집해 결사적으로 항전했지만 결국 강제 해산되었다. 


그 시절 난 비교적 평화로운 중, 고등학교 시절을 보냈으며 대학생들이 데모를 하는 것을 젊음의 치기 정도로 여겼던 것 같다. 그 사실을 알았어도 딱히 할 수 있는 게 없었겠지만... 내가 신입생이던 1988년, 소위 운동권 선배들이 후배들을 의식화, 조직화시킬 때 꺼내는 첫 번째 화두가 바로 광주항쟁(일반적으로는 광주 사태로 불렸다. 민주화운동이라는 명칭은 1997년, 광주민주화운동을 국가기념일로 정하면서부터이다.)이었다. 대한민국은 저마다 누려야 할 행복이 언제나 자유로운 곳이고, 원하는 것은 무엇이든 얻을 수 있고, 뜻하는 것은 무엇이건 될 수가 있다고 생각했던 내가 처음 광주항쟁 사진과 비디오를 접햅을 때 충격은 지금도 말로 표현할 수가 없다.


광주민주화항쟁과 관련한 민중가요는 제법 많이 있다. 그중 대표적인 세 곡을 소개한다. 내가 대학에 들어가 가장 먼저 접한 광주항쟁 노래는 "오월의 노래2"이다. "오월의 노래2"는 미셸 폴나레프(Michel Polnareff)의 샹송, "Qui à tué grand maman?(누가 할머니를 죽였는가?)"의 멜로디에 누군가 가사를 붙였다. 

광주학살을 직설적으로 묘사한 "오월의 노래2"


"오월의 노래2"처럼 신군부의 광주학살을 직설적으로 표현한 노래는 없다. 1절에서 광주학살의 내용을 적나라하게 담았다면, 2절은 왜 그렇게까지 해야 했는지 이유를 자조적으로 묻는다.

 

왜 쏘았지? (총!) / 왜 찔렀지? (칼!) / 트럭에 실고 어디 갔지?


3절에선 살아남은 자들에게 투쟁의 당위를 일깨워 주며, 마지막 4절에선 광주학살의 직접적인 원흉인 전두환과 광주학살을 방조한 외세, 특히 미국에 대한 적개심을 가사로 표현했다. 광주민주화항쟁을 통해 민주화 진영은 낭만적 저항이 아닌 과학적 혁명이론의 필요성을 자각하게 되었고, 미국의 제국주의적 본질을 깨닫게 되었다. 이후 1982년 "부산 미문화원 방화사건"을 시작으로 반미운동이 본격적으로 전개된다. 개인적으로 3절과 4절의 위치가 바뀌었다면 어땠을까 싶다.  


https://www.youtube.com/watch?v=ogQRH-fx1nk

오월의 노래2 원곡, '미셸 폴나레프'의 "Qui à tué grand maman?"


두 번째 노래는 “광주출정가”다. 제목에 대한 논란이 있다. ‘출정’은 제국주의 국가가 식민지를 정벌하러 간다는 의미가 강하므로 정의를 지키기 위해 전장으로 나간다는 의미인 ‘출전’이라고 써야 한다는 것이다. 애초에 제목이 그랬다는 것인지, 아니면 그렇게 써야 한다는 것인지는 잘 모르겠지만, 아래 악보에 실린 제목처럼 “광주출정가”로 더 많이 알려져 있다. 따지기 좋아하는 사람 입장에선 "광주출정가"의 ‘출정’을 ‘출전’으로 바꿔야 한다고 핏대 세워 주장하고 싶겠지만, 광주출정가를 정벌의 의미로 부르는 대중들은 아마 없을 것이다. 

제목에 대한 논란이 있다. 정벌을 의미하는 ‘출정’이 아니라 정의를 위해 전장에 나가는 ‘출전’이 원래의 제목이었다고 한다.

언제부터 시작되었는지는 모르지만, 5월이 되면 전국의 대학생들이 투쟁의 성지, 광주를 순례하기 위해 집결했다. 광주학살로 정권을 잡은 노태우의 입장에선 광주학살이 부각되는 것이 싫었을 것이다. 그래서 대학생들의 광주 순례를 원천 봉쇄하며 기를 쓰며 막았다. 1990년이었나? 광주 순례를 갔다가 광주역이 원천 봉쇄되었다는 소식을 듣고 도착 전 기차를 강제로 세우는 불법을 자행하며 광주까지 뛰어갔던 기억이 있다. 공소시효는 만료되었겠지? 광주시내는 가두시위를 하기 최적의 장소였다. 서울시민들은 시위를 하는 학생들을 비난했지만, 광주시민들은 시위를 하는 학생들을 강제로 집으로 끌고 가 밥을 먹였다. 조금만 먹고 다시 나가려고 하면, 제발 많이 먹고 나가 열심히 싸워달라며 고봉으로 푼 밥을 끝까지 다 먹게 했다. 이 글을 쓰는 도중 갑자기 울컥... ㅠㅠ


https://www.youtube.com/watch?v=18bubVb-8P4

유튜브에서 찾은 "광주출정가", 목소리나 편곡의 느낌이... 혹시, 꽃다지?

마지막으로 소개할 노래는 "그날이 오면"을 작곡한 '문승현'의 "오월의 노래1"이다. 번호를 붙인 것이 작곡된 순서인지는 모르겠지만, 대중음악 100대 명반 선정에서 53위를 기록한 '노찾사' 2집에 수록되며 대중들에게 널리 알려졌다. 광주항쟁을 다룬 다른 노래들과 다르게 서정적인 가사와 절제된 멜로디로 구성되어 있다. 감정을 꾹꾹 눌러가며 노래를 부르다가 마지막 부분에서 짧게 터뜨린다. "오월의 노래1"도 '문승현'이 작곡한 "그날이 오면"처럼 라단조의 으뜸음인 '라'로 끝내지 않고, 라단조의 가온음 '도'로 끝을 맺으며 여운을 남긴다. 

'문승현'이 작사・작곡한 "오월의 노래1" 악보

오월의 노래는 1과 2에 이어 3까지 발표되었다. "오월의 노래3"은 김정환 시인이 가사를 쓰고 노래모임 '새벽' 출신 '이현관'이 곡을 썼다. "오월의 노래3"은 앞서 "선언1,2"를 다룰 때 언급했던 노래모임 '새벽'의 공연 실황, "저 평등의 땅에"에 수록되어 있다. "오월의 노래3"에 대한 이야기는 다음으로 미룬다.


https://www.youtube.com/watch?v=oSfGZwauijw

'노찾사' 2집에 수록되어 있는 "오월의 노래1"

'반독재・민주화'를 외쳤던 30년 전 청춘들이 민중가요에 대해 부채의식을 가지고 있다면, 대한민국의 민주주의는 광주시민들에게 가장 큰 빚을 지고 있다고 생각한다. 세월이 지나고, 세상이 빠르게 바뀌며 민중가요와 함께 광주민주화항쟁도 역사의 저편으로 멀어져 가고 있다. 글의 시작에서 언급했듯 올해는 광주민주화항쟁 40주기가 되는 해이다. 그리고 나폴레옹에게 헌정하기 위해 세 번째 교향곡 "영웅"을 작곡했지만, 나폴레옹이 황제의 자리에 오르자 악보의 표지를 찢어버렸던 공화주의자 베토벤이 태어난 지 250년이 되는 해이기도 하다. 내가 군악대에 있을 때 지휘를 맡았던 고참이 진주 시향의 지휘자로 있는데, 내가 연재하고 있는 "민중가요 이야기"를 보고 자신도 광주민주화항쟁 40주기와 베토벤 탄생 250주년을 기념해 '베토벤이 본 한국의 민중가요'라는 주제로 공연을 구상하고 있다고 연락을 해 왔다. 자못 기대가 된다.


강산이 변하는 주기가 대략 10년이었던 시절에는 10년, 그리고 100년이 가지는 의미가 컸다. 하지만 2017년을 기준으로 1년에 약 16ZB(1초로 환산했을 때 영화 28만 편에 해당하는 정보의 양)의 새로운 정보가 생산되고 있는 시대에 우리가 소환하고자 하는 30년 전 민중가요는 어떤 의미가 있을까? 파도에 휩쓸려 갈지도 모르는 모래사장의 한 작은 모래에 의미를 부여하기 위한 이 노력이 하찮아 보이는 것은 그 작은 모래알을 자신의 기억과 결부시켜 거대한 돌덩이로 생각하고 있기 때문은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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