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낭만백수 채희태 Jan 19. 2020

감옥에서 계급으로 "저 창살에 햇살이"

민중가요 이야기 #19

운명이란 언제나 예측불허, 그리하여 생은 그 의미를 갖는다?


'신일숙'의 "아르미안의 네 딸들"에 나오는 대사다. 이 곡을 민중가요 이야기에서 다루게 된 계기는 필연이 아닌 순전히 우연의 결과다. 원래는 "마른 잎 다시 살아나"를 다룰 예정이었다. 연재 초반 우연하게 마련된 술자리에서 처음 만난 어떤 분께 '민중가요 이야기'를 연재하고 있다고 하니, '안치환'의 "저 창살에 햇살이"를 꼭 다뤄 달라고 부탁했다. 자신은 영화 "기생충"을 보며 이 노래가 떠올랐다고...

칸에서 황금 종려상을 수상하고 아카데미에서 감독상 등 6개 부문에 후보까지 오른 '봉준호' 감독의 “기생충”은 나도 ‘불편하게’ 잘 보았다. 페이스북에 영화 "조커(Joker)"랑 엮어 후기도 쓴 적도 있다.

필자가 페이스북에 올린 영화, “기생충”과 “조커” 간단 후기

"저 창살에 햇살이"는 ‘故김남주’ 시인의 시에 ‘안치환’이 곡을 붙인 노래다. 김남주 시인은 아마도 빵(감방)에서 창살 사이로 스며드는 햇살을 보며 이 시를 썼을 것이다. 양심수였던 김남주 시인이 보았던 저 창살의 햇살을 지금은 돈이 없다는 죄로 지하에 살고 있는 사람들이 보고 있는 것은 아닐까?


어떤 신념을 가지고 있다는 것이 죄가 되던 시대가 있었다. 그래서 1989년부터 민가협(민주화실천가족운동협의회) 주최로 “양심수를 위한 시와 문학의 밤”이라는 행사가 매년 겨울에 열렸다. “양심수를 위한 시와 문학의 밤”은 2000년대 중반까지 이어졌던 것으로 기억하고 있다. 대중가수들이 민중가요를 부르는 것은 흔한 일이 아니지만 대중가수와 민중가수가 한 무대에 서는 것은 예전부터 있었다. 1993년 “양심수를 위한 시와 문학의 밤”에 전인권, 김종서, 인공위성 등이 참여하기 시작했고, 그 이후에 자우림, 윤도현 밴드, 이은미, 크라잉넛 등이 합류했다. 그렇다면 2020년 대한민국에는 양심수가 없을까? 부끄럽게도 시민들의 촛불혁명으로 탄생한 문재인 정부에도 여전히 양심수가 있다. 잠깐 지난 2012년으로 돌아가 보자.


2012년 대선 후보 토론회에서 통진당의 이정희 후보는 대놓고 박근혜 후보를 떨어뜨리기 위해 나왔다고 해서 화제가 되었다. 최초로 공중파에서 일본 장교 출신인 박정희의 본명(?)인 "다카키 마사오"를 또박또박 이야기하는 등 국민들에게 신선한 충격을 주었으나, 토론 도중 대한민국을 "남측 정부"라고 표현해 종북 몰이의 빌미를 제공하기도 하였다.

박근혜는 18대 대선에서 51.6%라는 악마의 지지율로 대통령에 당선되었다. 그리고 이미 촛불 이전에 박근혜 치하 대한민국의 미래를 예견해 자신의 모든 것을 던져 박근혜의 대통령 당선을 저지하려 했던 이정희는 진보와 보수를 포함한 국민 모두로부터 마녀 사냥을 당했다. 박근혜를 지지한 보수는 그렇다 쳐도 이정희를 지지하거나, 그 또랑또랑한 사이다 발언에 열광했던 국민들은 왜 이정희를 마녀로 몰았을까?  정말 이정희 한 명 때문에 대선에 패했을까? 우리 모두는 받아들이기 싫은 현실에 대한 책임을 오롯이 전가할 누군가가 필요했을지 모른다. 우리는 비겁하게도 그 누군가로 가장 선두에서 박근혜와 싸운 이정희를 마녀로 지목했다. 박근혜와 보수 우익뿐만 아니라, 언론도, 그리고 진보 진영마저도...


그 결과 통합진보당은 강제 해산당하고, 이석기는 내란을 선동했다는 이유로 국가보안법 위반으로 2015년 양심수가 되었다. 남북화해를 위해 많은 노력을 기울이고 있는 문재인 대통령은 자칫 이석기의 석방이 정치적으로 불리하게 작용할지도 모른다고 생각하는지도 모르겠다.


“저 창살에 햇살이 악보”

“저 창살에 햇살이”를 부른 안치환이나 권진원, 그리고 故김광석 등이 민중가수에서 대중가수로 건너간 경우라면 “음반법 사전 심의 철폐” 운동을 통해 민중가수 대열에 합류한 정태춘은 대중가수에서 민중가수로 건너온 경우라고 할 수 있다. 정태춘은 1991년 1월 29일 구성된 '음반 및 비디오에 관한 법률 개악 저지를 위한 대책위원회' 위원장이 되어 사전검열 제도와의 전면전에 돌입한다. 정태춘은 1991년 “아, 대한민국(정수라가 부른 같은 제목의 노래와는 정반대의 노래이다)”과 1993년 옆지기 ‘박은옥’과 함께 “92년 장마, 종로에서”를 불법으로 출시하며 사전 검열에 저항한다. 1993년 정부는 정태춘을 ‘음반 및 비디오물에 관한 법률 위반’으로 고소하고 정태춘은 재판부에 위헌 신청으로 대응한다. 마침내 1996년 헌법재판소의 위헌 결정을 받아내며 대한민국에서 사전 검열은 사라지게 되었다.

1996년 6월, 사전검열 철폐 기념으로 “자유 콘서트”가 열렸다.

대중과 가까워지면 어쩔 수 없이 그 의미는 사라지는 것 같다. 그래서 의미와 가치를 지키기 위해 의도적으로 대중과 선을 긋는 경우도 있다. 무엇이 맞는지는 사실 나도 잘 모른다. 대중가수들이 민중가요를 부르는 이 행위가 훗날 민중가요에게, 또 대중가요에게, 그리고 우리의 미래에 어떤 영향을 미칠지...


일찍이 독일의 역사학자 ‘라인하르트 코젤렉’은 역사를 바라보는 4가지 관점을 이야기했다. 첫 번째는 농경시대의 역사관인 "순환론적 역사관"이다. 두 번째는 중세의 역사관인 "종말론적 역사관"이다. 세 번째는 근대를 관장해 왔던 "선형적 역사관"이다. 현재의 잘못된 정(正)에 반(反)해야 모순을 극복하고 진보된 합(合)으로 나아갈 수 있다는 역사관이다. 진보된 합(合)이 모순이면? 그 정(正)에 반(反)하면 역사는 또 합(合)으로 나아간다. 이렇게 인류의 역사는 쭈욱 선형적으로 발전한다는 역사관이다. 하지만 마지막으로 네 번째 "비선형적 역사관"을 제시하며 세 번째 역사관을 뒤집는다. 인류의 미래는 불확실하며 그 어떤 확신도 할 수 없다는 것이다. 미래는 보이지 않는 지평선 너머에 있다. 지평선 너머에 무엇이 있는지는 진보도 보수도, 대통령도 일반 시민도 가 보기 전에는 알 수가 없다. 만약에 지평선 너머에 다다른다면? 미래는 다시 지평선 너머로 숨을 것이다. 역사는 진보할 수도, 퇴보할 수도 있다. 그러니 확신을 거두고 의심하고 주저해야 한다. 아직은 이해하기도 받아들이기도 어려운 탈근대, 포스트모던의 역사관이다.

그래서 난 민중가요 소환 콘서트 "the 청춘"을 지지하며 쓰고 있는 이 잡문에 대한 확신이 없다. 그러니 혹시라도 30년이 지나 민중가요를 소환하고자 하는 이 어설픈 시도에 대한 반대의 확신이 있다면, 그 확신도 거두어 주시길 간절히 희망한다. 마지막으로 가객(歌客) 안치환의 노래 두 곡을 유튜브 링크로 소개한다.


https://youtu.be/bJ8nkPgFjNM

"저 창살에 햇살이"

https://youtu.be/lOoeKF9-3i8

이한열 열사 추모곡, "마른 잎 다시 살아나"
이전 25화 민중가요의 대학가요제, 통일노래 한마당과 "지리산"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