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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낭만백수 채희태 Nov 12. 2019

민중가요의 대학가요제, 통일노래 한마당과 "지리산"

민중가요 이야기 #4

통일노래 한마당은 내가 대학 1학년 때인 1988년부터 시작되었다. 대중(?)들에게 잘 알려져 있는 "진혼곡", "얼굴 찌푸리지 말아요", "함께 가자 우리 이 길을" 등이 모두 통일노래한마당을 통해 발표된 노래들이다. 통일노래한마당은 MBC가 1977년부터 주최해오던 대학가요제가 대학생들의 정서를 반영하지 못하고 상업 가수를 배출해 내는 경연장으로 전락(?)해 가는 한 측면과, 대학생들이 청바지와 통기타로 대변되는 낭만적 저항에서 과학적 혁명 이론을 장착하게 되는 다른 측면이 교차하는 과정에서 등장한다. "나 어떡해(1977)", "밀려오는 파도 소리에(1978)", "내가(1979)", "꿈의 대화(1980)", 그리고 1983년 '에밀레'가 부른 "그대 떠난 빈 들에 서서"까지는 그래도 뭔가 콕 찝어 얘기할 수는 없지만 대중가요와 구분되는 대학가요만의 독특한 정서라는 것이 있었다. 그러나 1994년 "눈물 한방울로 사랑은 시작되고", 1995년 "저 바다에 누워"부터는 대학가요를 대중가요를 분리한다는 것 자체가 별 의미가 없어져 버렸다. 내가 1987년, 천지가 개벽하는지도 모르고 단과 입시학원과 도서관 사이를 전전하며 성공적으로 재수를 마칠 수 있었던 이유 중 하나도 대학생이 되어 대학가요제에 나가고 싶은 꿈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이번에 소개할 노래는 빨치산의 투쟁을 노래한 "지리산"이라는 곡이다. 지리산을 소재로, 또 제목으로 한 노래 중 가장 유명한 노래는 뭐니뭐니 해도 “나는 저 산만 보면 피가 끓는다.”라는 가사로 시작하는 ‘박종화’의 “지리산”이다. 대학 친구 중에 이 노래를 유독 좋아하는 친구가 있었는데, 평소 가래침을 잘 뱉었던 그 친구는 술자리에서 박종화의 지리산을 부르는 중간에 꼭 가래침을 뱉어, 친구들이 넌 피가 아니라 가래가 끓는다며 놀리기도 했었다.

지리산 2? 숫자를 나눈 기준이 모호하다.

‘박종화’는 “바쳐야 한다.”, “투쟁의 한 길로”의 작곡자로도 잘 알려져 있는데, 1989년이었나? 옥중에서 “분노”라는 창작집을 내 윤민석과 김호철이 양분하고 있던 민중가요계에 묵직한 출사표를 던졌다. 윤민석과 김호철이 각각 NL과 PD를 대표하는 거대 정당이라면 박종화는 캐스팅 보트를 쥔 소수 정예 정당쯤 될 것이다. 내 기억이 틀리지 않다면 박종화는 탁월한 작곡 실력과 무관하게 지독한 음치였는데, 당시 같은 과 오해투(오선지 해방 투쟁위원회) 소속의 여某氏 아들, 某기봉이라는 친구가 박종화가 부른 분노를 거의 흡사하게 카피해 나보다 더 인기를 끌었던 기억이 있다. 다음은 “분노”의 앞에 등장하는 ‘아지’다.

붉디나 붉은 가슴으로  오월의 하늘을 보라 백만학도여. 손과 손을 가슴과 가슴을 부여안고
핏빛 금남로를 내달리며 우리 이렇게 맹서하자. 나는  민족해방 투쟁에 빛나는 오월전사의 후예임을 명심하고 학살원흉 처단과  육천만 민중의 절절한 염원인 조국의 평화적 통일을 위해 죽을 수도 물러설 수도 없다는 불요불굴의 투쟁정신과 결사항쟁의 자세로 끝까지 싸울 것이며 조국이 부른다면  의연하게 작은 육신이나마 바치겠노라고 엄숙히 맹서하자.

박종화는 작년에 작곡 30년 기념해 음반을 냈다고 하니 그의 노래가 그리운 사람들은 관심을 가져보는 것도 좋을 것 같다.

박종화 작곡 30년

지리산과 관련된 노래 중 안치환이 만든 "지리산, 너 지리산이여"라는 노래도 있다. 마치 안치환이 지리산을 종주하며 그 정기를 받아 만든 것 같은 장엄함이 돋보이는 노래다. 노래책에 따라 그냥 “지리산”이라는 제목으로 실리기도 해 헷갈리는 경우가 있지만 정식 제목은 “지리산, 너 지리산이여”가 맞다. 이 노래는 91학번 후배들이 떼창으로 자주 불러 알게 되었는데, 독창보다는 남성 떼창으로 불러야 노래의 맛을 제대로 살릴 수 있다.


마지막으로 지금 내가 소개하는 “지리산”은 1989년 통일노래 한마당을 통해 소개되었던 곡이다. 입상을 했는지도 가물가물할 정도로 대중들에게 그리 잘 알려져 있는 노래는 아니다. 민중가요 노래패 중에서도 소수 마니아들만 아는 노래이고, 노래의 스케일은 저음과 고음을 넘나드는 대서사시 "이 산하에"나 "진혼곡"에 영향을 받은 듯하다. 예전에 1989년 통일노래한마당 악보집이 있었는데, 내가 대학을 졸업하며 후배에게 넘긴 후로 아직 가지고 있는지, 아님 어디서 썩고 있는지 확인하지 못하였다. 4옥타브 A까지 쌩목으로 불러야 하는 노래라 한때 록커를 꿈꿨던 내가 가장 애창하는 민중가요이기도 하다. 악보는 구할 길이 없어 가사만 옳긴다.


가네, 가네 얼어붙은 맨발로
어머니 눈물 밟으며 가네
못다 이룬 새 세상 소식 이슬처럼 머금고
피아골 저 능선 너머로 사라져간 형제여
이 땅에 새벽을 위해 죽어서 말하는 자여
그대의 아름다운 넋 눈 위에 피었네
보라 피 맺힌 천황봉 붉은 해가 떠 올때
죽어 쓰러진 형제들 다시 살아오리라


졸업하던 해인 1995년, 과 노래패 ‘꼴굿떼’의 정기공연에 게스트로 초대되어 노래를 불렀었는데, 몇 년 전 후배가 그때 찍은 공연 동영상이 있다며 보내줬다. 혹시 팔팔할 때의 내 못소리가 궁금하신 분들은 잠시 짬을 내 들어주셨으면 한다. (@Back2Analog)

1995년, 내 나이 28? 젊었다. 몸도 목소리도...

P.S 꼴굿떼 92학번 후배 A.J.M(일명 아줌마)로부터 지리산 악보와 통일노래한마당 관련 자료를 구해 덧붙인다.

지리산 악보, 목차에 고려대 '녹두울림'이 불렀다고 나와 있다.
후배 아줌마가 전해 준 통일노래 한마당 악보집
통일염원 45년이 1989년인 것 같다. 당시 서총련 의장이자 전대협 의장이 그 유명한 임종석이었다.
1988년 제1회 서총련 통일노래한마당 악보집
전설이 된 노래, 고려대 김영남이 부른 "진혼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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