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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낭만백수 채희태 Dec 27. 2019

투쟁에서 일상으로 침투한 민중가요, "전화카드 한 장"

민중가요 이야기 #11

휴대전화가 일반화되기 전까지 가장 대중적인 소통 수단은 공중전화였다. 내가 기억하는 최초의 공중전화 요금은 20원이다. 10원짜리 동전 두 개를 넣으면 3분 동안 통화를 할 수 있었고, 시간이 다 되어 깜박거리면 추가로 동전을 투입해야 했다. 어머니는 시집 간 누나가 시어머니 눈치 때문에 전화를 못 할까 봐 친정에 오면 10원짜리 동전을 잔뜩 들려 보내기도 했었다. 오랫동안 동전을 사용하는 공중전화가 사용되다가 90년대 들어 기술의 발달로 동전이 아닌 전화카드로 통화를 할 수 있는 공중전화가 보급되기 시작했다.

이번에 연재할 민중가요는 ‘조민하’의 “전화카드 한 장”이다.

전화카드와 공중전화

민중가요의 주제가 '투쟁'이라면 대중가요의 주제는 '사랑'이다. 사랑을 하거나 실연을 하고 나면 대중가요의 위대함을 제대로 느낄 수 있다. 적어도 사랑이라는 주제에 관한 한 대중가요의 감수성을 따라가기란 쉽지 않아 보인다. 나는 청춘시절 누군가를 연모하며 이선희의 "알고 싶어요"를 들었고, 헤어졌던 연인과 다시 만나고 나서는 변진섭의 "너에게로 또다시"를 불렀다. 가사를 곱씹어가며 베갯잇을 적시면서도, 대중가요라는 보편성에 기대 비로소 그 깊은 감정에서 헤어 나올 수 있었다.

무엇이든 숙성의 과정을 거치고 나면 부드러워지는 것일까? 중국 무술은 장삼봉의 태극권으로 완성되고, 한국 무술은 춤인지 무술인지 알 수 없는 택견으로 수렴되듯이 적(適)을 향한 직진 일변도였던 민중가요도 언젠가부터 아(我)의 감성을 건드리기 시작했다. 그 배경에는 1992년 군부독재가 막을 내리고 문민정부를 표방한 김영삼 정권이 들어선 이유도 있었다. 김영삼 정권은 군부독재의 적자로 적은 적이되 예전과는 다른 적이었다. 정부와 대척점에 서 있던 학생운동도 변하지 않을 수 없었다. 구국의 강철대오 전대협(전국 대학생 대표자 협의회)은 1993년 생활・학문・투쟁의 공동체 한총련(한국대학 총학생회 연합)으로 거듭났다.

그리고 민중가요도 시대를 반영했다. 투쟁의 현장에서 투쟁을 준비하는 일상으로 그 주제가 확대된 것이다. 그 대표적인 노래 중 하나가 바로 '조민하'의 "전화카드 한 장"이다. 노래, "전화카드 한 장"은 잘 알려진 비하인드 스토리가 있다.  

조민하 님이 꽃다지 음악 감독으로 계실 때였습니다.
대선 후. 꽃다지는 안팎으로 '해체'까지도 생각할 만큼 힘든 시기였다고 합니다.
 
지친 몸과 마음을 끌고 집으로 향하는 지하철 안에서 대학동창을 우연히 만났다고 합니다.
웬만한(?) 사람 모두 '운동권'이던 그 시절에도 '운동'과는 상관없이 사는 듯했던 친구.
그 친구는 조민하 님을 보자마자 말했습니다.
"너, 얼굴이 그게 뭐야. 도대체 얼마나 힘이 드는 거야, 너"
아마도 조민하 님은 별 대꾸도 없이 예의 그 사람 좋은 웃음을 지어 보였겠죠.
"너, 안 되겠다" 하더니 그 친구는 지갑에서 전화카드 한 장을 꺼내서 쥐어주었습니다.
"힘들면, 정말이지 아무 때나, 절대로 망설이지 말고 나한테 전화해라"
그리고는 그렇게 헤어졌구요.
 
그 길로 조민하 님은 지하철을 바꿔 타고 다시 사무실로 갔습니다.
사무실에서 홀로 술을 마시고... 천장을 보고 누워 있는데 눈물이 나오더랍니다.
기타를 잡고, 마음에서 나오는 멜로디를 놓치지 않고 흥얼거렸습니다.
언제라도 힘들고 지쳤을 때 내게 전화를 하라고... (출처 : 호남대 민주동문회)

"아침이슬"의 작곡가 '김민기'가 서슬 퍼런 유신독재 치하에서 민중가요의 기틀을 다지고, '김호철'과 '윤민석'이 신군부에 대응해 민중가요의 전성기를 이끌었다면, "전화카드 한 장"의 '조민하'와 "바위처럼"의 '유인혁', 그리고 민중가요 Rock 그룹, '천지인'을 이끈 '김성민' 등은 반쪽짜리 문민정부인 김영삼 정권 하에서 민중가요의 대중화에 크게 기여했다.

1992년 '노동자 노래단'과 '삶의 노래 예울림'이 통합하여 희망의 노래 '꽃다지'를 결성했고, 1994년엔 통산 4집이자 최초의 합법음반, "금지의 벽을 넘어 완전한 자유를 노래하리라"를 발표하는 등 민중가요는 군부 독재라는 구체화된 적이 사라진 현실 속에서 대중들에게 다가가기 위해 노력했다. "전화카드 한 장"은 바로 꽃다지 최초 합법음반인 4집에 수록된 곡이다.

  

'조민하' 글・곡, "전화카드 한 장"의 악보

가사를 찬찬히 음미해 보자. 만약 "전화카드 한 장"을 꽃다지가 아닌 대중 가수가, 중간에 나오는 '동지'라는 가사를 '친구'로 바꿔 불렀다면 이 노래를 민중가요라고 생각하는 사람이 몇이나 있을까? 심지어 1991년 통일노래 한마당에서 발표되었던 "얼굴 찌푸리지 말아요"는 가사를 일부 바꿔 동요로 불려지고 있다.

"얼굴 찌푸리지 말아요" 가사 비교

대중가요와 민중가요를 구분하는 기준은 창작의 주체일까, 가사의 내용일까, 아니면 시대일까? 민중가요는 이전 글 "the 청춘에 바란다"에서도 밝혔듯, 반독재・민주화 투쟁이라는 시대의 현장 속에서 피어난 하나의 문화현상이다. 마치 바로크 음악이 시대의 변화에 따라 고전주의 음악으로 이동한 것처럼 민중가요도 시대와 상호작용하며 마침내 대중가요의 경계선에 서게 되었다.

그리고 대략 30년이 지난 지금, 우리에게 민중가요는 과연 무엇일까? 민중가요 소환 콘서트 "the 청춘"에서 그 답을 찾았으면 좋겠다.   


자, 이제 선택하시라, 필자의 노래를 들을 것인가, 아니면 꽃다지의 노래를 들을 것인가!

필자가 부른 "전화카드 한 장", 부끄러움은 오직 필자의 몫이다.

https://www.youtube.com/watch?v=bYBuC8pIjNI

그리고, 꽃다지가 부른 "전화카드 한 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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