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확실성의 공포? 피할 수 없다면 즐기자!

백수의 사회학 #26

by 낭만박사 채희태

많은 사람들이 코로나와 함께 불확실성에 대한 공포를 이야기한다. 아니 너도나도 불확실성을 앞세워 공포 마케팅에 나서고 있다. 일찍이 미국의 호러 소설가로 유명한 ‘하워드 필립스 러브크래프트’는 “인류의 가장 오래된 감정은 공포이며, 가장 강력한 공포는 미지의 것(불확실)에 대한 공포”라고 이야기했다. 그 유명한 『사피엔스』를 통해 이 시대 가장 위대한 통찰자로 떠오른 ‘유발 하라리’도 경향신문에서 기획한 “7인의 석학에게 미래를 묻다”에 8번째 주자로 나와 “확실성은 바닥을 쳤다.”며 불확실한 미래에 대해 우려를 드러냈다.


나 또한 지금까지 불확실성을 들먹이며 기회가 있을 때마다 공포를 팔아 나의 존재감을 부각해 왔던 것 같다. 물론 영향력은 미미하겠지만... 모든 것을 의심해야 한다고 주장하면서도 불확실성이 진짜 공포스러운지에 대해서는 단 한 번도 의심하지 않았다. 그러다가 우연히 브런치에서 “결말을 몰라야만 재미있을 거라는 확신 :우리 인생은”이라는 글을 만났다. 얼마 전 『가장 빛나는 순간은 아직 오지 않았다』라는 책을 출간한 이청안 작가의 글이었다.


사람들은 종종 말한다. 불투명한 미래 때문에 힘들다고. 뭘 해야 될지도 모르겠고, 뭘 잘하는지도 모르겠고, 나도 그랬고, 지금도 그러하고 앞으로도 간혹 곤란하거나 힘들 것이다. 하지만 사람들을 가장 힘들게 하는 것은 미래가 어떻게 될지 모른다는 불확실함 때문이 아니라 ‘꿈이 없다’는 ‘자기 결핍감(지극히 저의 생각)’이나 자신이 가진 잠재력을 가늠하기 어렵다는 그런 느낌 때문이 아닐는지(이청안, https://brunch.co.kr/@baby/57).


뒤통수를 크게 얻어맞았다. 인간이 미래를 알지 못하기는 과거나 지금이나 마찬가지다. 그런데 나는, 우리는, 세계는 왜 그 당연한 불확실성을 무서워할까? 만약 우리가 미래를 뻔히 알고 있다면 삶이 주는 그 쫄깃한 재미를 느낄 수 있을까? 알버트 씨가 윌리엄 아드레이이자 동산 위의 왕자님이라는 사실을 알고 “들장미 소녀, 캔디”를 봤다면 반전이 가지고 있는 재미를 느낄 수 있었을까? 부루스 윌리스가 귀신이라는 걸 알고 있었다면 “식스 센스”의 스릴을 제대로 맛볼 수 있었을까? 사실 미래의 진정한 가치는 그 불확실성에 있다. 그래서 신일숙의 “아르미안에 네 딸들”에 등장하는 유명한 대사가 있다.


미래는 언제나 예측불허, 그리하여 생은 그 의미를 갖는다

그런데 왜 사람들은 왜 너도나도 불확실성을 이용해 공포 마케팅에 나서는 것일까? 이유를 알 것도 같다.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시대가 확실성을 요구하고 있기 때문이다. 한 번은 잠실에 우뚝 서 있는 롯데월드타워를 보며 롯데는 무슨 돈으로 저렇게 높을 빌딩을 지었을까? 하는 걱정 섞인 상상을 했던 적이 있다. 생각해 보니 롯데는 가지고 있는 돈을 탈탈 털어서 롯데월드빌딩을 지은 것이 아니었다. 롯데월드타워는 미래 가치에 대한 금융자본의 투자로 만들어진 건물이었다. 어찌 보면 내 주머니에서 나온 돈이 롯데월드타워를 짓는데 투자되었을 수도 있다. 롯데월드타워를 짓는데 금융자본이 투자를 하려면 미래가 불확실하면 안 된다. 내일 지구가 멸망하지 않는다는, 전쟁이 일어나지 않는다는, 금융자본이 투자한 돈보다 더 많은 수익을 회수할 수 있다는 확신이 있어야 한다.

자본주의는 지구가 멸망한다는 확신만 있으면 그 가능성에 배팅해 돈을 벌 수 있는 경제 체제다. 2008년 미국의 서브 프라임 모기지 사태를 다룬 영화, "빅 쇼트"나 한국의 IMF 외환 위기를 다룬 영화, "국가 부도의 날"은 모두 미래에 발생할 위기에 투자해 돈을 번 금융 투자가들의 이야기다. "국가 부도의 날"에서 유아인은 대한민국이 망한다는 가능성에 투자해 떼돈을 번다. 유발 하라리는 『사피엔스』에서 지금 인류는 지금까지 한 번도 경험하지 못한 평화의 시대에 보내고 있으며, 그 이유가 전쟁이 경제의 불확실성을 증폭시키기 때문이라고 지적했다. 이것이 바로 예측 가능성이 가지고 있는 경제적 가치이다.

과거 박근혜 대통령은, 아니 역대 보수 정권은 늘 북한의 도발을 무기 삼아 국민에게 지지를 호소했다. 이른바 북풍이라고 하는 공포 마케팅이다. 박근혜 대통령은 언론을 통해 북한의 김정은 위원장을 예측할 수 없다고 자주 언급했다.

박근혜 정부는 예측 가능했을까?

그 이유는 여러 가지가 있을 수 있다. 하나는 진짜 예측을 못하기 때문일 수 있다. 적대적 관계, 아니 우호적 관계에 있다고 하더라도 주변 국가가 어떻게 움직일지 예측할 수 없다면 외교가 어려워진다. 그런데 북한이 진짜 예측 불가능할까? 많은 북한 전문가, 그중에서도 한반도의 현인이라고 불리는 정세현 전 통일부 장관은 오히려 북한은 예측하기 매우 쉬운 국가라고 이야기한다. 정부가 북한의 행동에 대해 예측할 수 없다고 말하는 것은 사실 정권의 무지와 무능력을 드러내는 것이다.

정권이 북한의 불확실성을 내세우는 또 다른 이유는 국민의 눈과 귀를 외부로 돌려야 하는 특별한 정치적 의도가 있기 때문이다. ‘도요토미 히데요시'가 조선을 침략한 이유도, 소련의 몰락으로 동서냉전이 붕괴되자 미국이 이슬람과 북한을 악의 축으로 몰아붙인 이유도 어쩌면 내부의 단결이 필요하거나, 문제를 숨기기 위해서였는지 모른다. 그래서 18세기 영국의 시인, 새뮤얼 존슨은 "애국은 불한당의 마지막 피난처"라고 비꼬기도 했다.


정리해 보자. 불확실성은 다양한 쓸모를 가지고 있다. 대표적인 것이 바로 경제적 쓸모와 정치적 쓸모이다. 정치와 경제는 동전의 양면처럼 서로 긴밀하게 연결되어 있다. 경제가 파이의 크기와 관계가 있다면 정치는 파이의 분배를 결정한다. 우리는 국가의 GDP(국내총생산) 증가가 나에게 분배되지 않았도, GDP를 위해 기꺼이 개인을 희생을 감수한다. 2019년 대한민국의 GDP는 1조 6천295억 달러로 세계 12위지만, 1인당 GDP는 31,430달러로 세계 27위이다. 즉, GDP가 아무리 늘어도 1인당 GDP가 그대로면 국민들의 삶의 질은 변하지 않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1인당 GDP 27위보다 세계 10위권에 근접한 GDP를 더 자랑스러워한다. 31,430달러는 2020년 7월 31일 환율을 기준으로 한화 3천7백만 원 정도이다. 4인 가족의 가장으로 있는 필자가 1인당 GDP의 혜택을 누리려면 1년에 1억 5천 정도를 벌어야 한다. 통계청에서 발간한 "가계금융 복지 조사" 결과를 보면 2018년 기준 대한민국 가구 소득이 1억을 넘는 비율은 14.8%였다. 필자를 포함하여 85%가 넘는 가구는 대한민국에서 GDP나 1인당 GDP와 무관한 삶을 살아가고 있다.


최근 아파트 값의 폭증으로 문재인 정부의 부동산 정책에 대한 불만이 고조되고 있다. 아니러니 하게도 보수정권은 부동산 경기를 부양하기 위해 각종 규제 완화에 힘쓰지만, 부동산 경기는 침체의 늪에서 허우적거린다. 반면 상대적으로 진보정권은 부동산 가격을 잡기 위해 규제를 강화하지만 부동산 가격이 천정부지로 치솟는다.

역대 정부별 부동산 정책의 기조와 가격 추이

위에 언급한 불확실성과 예측 가능성을 부동산 시장에 대입해 보자. 보수 정권의 경제 정책은 예측이 불가능해 투자가 위축된다. 정권 유지를 위해 북한과 대립 각을 세우니 외국인들도 투자를 꺼린다. 이명박 대통령은 자신의 사익을 위한 경제 정책을 폈고, 박근혜 대통령은 김정은을 예측 불가능하다고 비난했지만, 정작 예측 불가능한 경제 정책으로 투자를 위축시킨 것은 박근혜 본인이다. 중국의 농업경제학자인 '원톄쥔'이 인류가 겪고 있는 식량 위기는 생산 부족의 문제가 아니라 금융 자본에 의해 생성된다고 지적했던 것처럼, 부동산 가격은 부동산 정책이 아니라 정책의 통제가 불가능할 정도로 성장한 시장의 문제이다. 부동산 가격이라는 빈대를 잡는 방법은 의외로 간단하다. 예측 불가능한 경제 정책을 통해 투자를 위축시켜 대한민국 경제라는 초가삼간을 태우면 된다.


불확실성이 모두에게 공포스러울까? 한 개인이나 작은 마을공동체가 당면한 불확실성은 오히려 문제 해결의 가능성으로 작동할 수 있다. 그러니 자본이나 국가가 만든 기준에 부화뇌동해 그 공포에 가담하지 말자. 차라리 가장 긴밀한 관계를 맺고 있는 가족이나 지역 사회 안에 존재하고 있는 다양한 불확실성을 즐기자. 미래가 불확실하다고 서로를 몰아붙이는 것은 개인에게도, 마을에게도, 그리고 그 마을을 지키고 있는 백수에게도 도움이 되지 않는다. 백수가 가지고 있는 불확실성은 아무 생각 없이 세계의 기준으로 작동해 온 마을이 가지고 있는 복이다. 그 불확실성이 아무도 신경 쓰지 않았던 마을의 문제를 해결할 가능성으로 작동할 수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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