철마는 달리고 싶고, 백수는 일하고 있다!

백수의 사회학 #30

by 낭만박사 채희태

얼마 전 장성에 회의가 있어 갔다가 잠깐 짬이 나 기타를 꺼내 들었는데, 그 사진을 페이스북에 올렸더니 한 선배가 댓글을 달아 주셨다.

“이제 그만 놀고 일하실 때가 되지 않았소? ㅎㅎ”


물론 내가 전문적으로 기타를 연주해 돈을 버는 프로는 아니지만 서울의 모구청 길거리예술단에 소속되어 버스킹을 해 소정의 대가를 받을 적도 있다. 한량스러운 필자의 여유가 부러워서 그렇게 댓글을 달았을 수도 있지만, 일을 하라니, 일이라는 게 도대체 뭘까? 기타를 연주하는 일은 일이 아니란 말인가? 과거에는 생존을 위해 일을 했고, 농경 사회에는 생산을 위해 고단한 노동을 했다. 하지만, 지금 우리가 살고 있는 자본주의 시대에는 돈이 생기지 않는 일은 일이 아니라고 보는 편견이 있는 것 같다. 아이를 돌본다고 어디서 돈이 떨어지지는 않는다. 신경통으로 고생하시는 부모님 어깨를 주물러 드린다고 매번 용돈을 주시지는 않는다. 밀린 설거지를 한다고 아내가 그 노동의 가치를 돈으로 환산해 지불하지도 않는다.


자본주의 이전에 일은 천한 아랫것들이나 하는 것이었다. 그 하찮은 노동을 신성한 가치를 부여한 것은 다름 아닌 마르크스였다. 마르크스는 근대 인류에게 두 가지 중요한 ‘관점’을 제시했는데, 바로 ‘노동‘과 ‘계급’이다. 마르크스 이전의 노동은 피지배 계급이나 하는 천한 행위였다. 하지만 마르크스는 그 천한 행동이 바로 역사발전의 원동력이라고 보았다. 노동의 가치는 신성한 것이 되었고, 그러한 인식의 확대는 마르크스의 의도와 무관하게 자본가에게도 득이 되었다. 노동을 신성하다고 여기지 않았다면 어떻게 자본가들이 자신의 이윤 창출을 위해 노동자에게 일방적으로 노동을 강요할 수 있었겠는가! 산업 자본주의가 복잡해질수록 노동 또한 신성하게 ‘분화’되었다.


노동을 이윤 창출의 관점으로만 보면 부동산이나 주식에 투자를 하거나, 그도 아니면 사기를 치는 것이 가장 가치 있는 노동이 된다. 물론 자본주의가 다른 경제체제에 비해 어마어마한 생산력을 만들어 낼 수 있었던 이유는 더 많은 이익을 낼 수 있는 투자의 기회가 보장되었기 때문이다. 노동의 모든 가치는 얼마큼의 이윤을 만들어 낼 수 있느냐로 치환된다. 즉 여전히 우리의 상식 안에는 직장에서 월급을 받거나, 그 결과가 만들어 낸 것이 바로 양극화다.

우리를 괴롭히고 있는 복잡한 고통에서 벗어날 수 있는 가장 중요한 한 가지를 꼽자면 노동의 가치를 우리가 살고 있는 시대에 맞게 바꾸는 것이다. 주어진 기준에 그저 따라가는 것이 아니라 주어진 기준이 나의 행복에 어떤 작용을 하고 있는지를 의심하고 따져 보며 새로운 가치를 합의해 내는 것이다.


인간은 잠을 잘 때도 칼로리를 소비한다고 알려져 있다. 잠을 자면서도 에너지를 소비하며 일을 하고 있는 것이다. 일을 안 하고 멍 때리고 있다고 아무 일도 안 하는 것이 아니다. 오히려 창의적인 생각을 해야 하는 지식 노동이라면 일에서 벗어나는 것이 더 효율적인 경우가 있다. 이건 필자가 일상적으로 하는 경험이다. 처음 책을 내기로 출판사와 구두 계약을 하고 글을 쓰기 위해 앉았다. 필자는 하루 종일 카페에 앉아 한 자도 쓰지 못했다. 마침 술이나 한 잔 하자는 후배들의 꼬임에 못 이기는 척 넘어가기 위해 자리를 떴는데, 머릿속에서 내가 쓰려고 했던 글들의 키워드들이 기가 막힌 문장과 함께 떠오르기 시작했다. 아마 다시 글을 쓰기 위해 자리에 앉았다면 사라졌겠지만...


스티브 잡스가 사용자 인터페이스(GUI)를 모방했다고 알려진 최초의 개인용 컴퓨터 알토(Alto)를 만든 앨런 케이(Alan Kay)는 회사 사무실 구석에 14,000 달러의 샤워기를 설치해 달라고 회사에 요구했는데 그 이유는 그가 대부분의 아이디어를 샤워를 하는 도중에 얻기 때문이었다(물론 회사는 그의 제안을 거절했다). 90년대 문화 대통령으로 시대를 앞서간 노래를 만든 서태지 역시 잠자는 시간에 좋은 멜로디가 많이 떠올라 침대 옆에는 항상 녹음기를 두었다고 한다.

시카고대학의 미하이 칙센트미하이(Mihaly Csikszentmihalyi) 교수는 그의 책 ‘창의성의 즐거움’에서 창의성이 발휘되는 과정을 호기심, 아이디어 잠복기, 깨달음, 여과과정, 완성의 5단계로 설명한다. 과학저술가로 유명한 스티븐 존슨(Steven Johnson) 역시 이 유레카 순간을 만들기 전에 ‘인큐베이터 순간(Incubator period)’은 필수적이라 말한다. 칙센트미하이 교수가 말한 잠복기와 깨달음 단계 사이에는 의식에 의해 정돈되지 않은 아이디어가(잠복기) 스스로 움직이게 되어 뜻하지 않은 결합(깨달음)이 만들어지는 것처럼 보인다. 인식론자들은 이것을 “아이디어들이 의식적인 지시에서 벗어남(예: 샤워, 소파, 잠, 헬스장, 산책, 대화 등)에 따라 임의적으로 결합하면서 아무 상관이 없는 것처럼 보였던 아이디어 간의 연결이 잇따라 일어난다.”고 설명한다. 샤워장이 무의식적인 몰입을 유도하고 이 몰입이 인큐베이터에 있는 아이디어를 깨어나게 하는 것이다.


인간은 누구나 존재하는 그 순간부터 일(노동)을 한다. 갓난아이의 가장 강력한 노동은 부모가 안고 있는 근심을 한방에 날려버리는 재롱이다. 갓난아이의 재롱이 직접적인 이윤을 창출하지 못한다고 해서 그 소중한 노동의 가치를 언제까지 하찮게 여길 것인가? 글쓰기 가이드북의 원조, 『작가수업』을 쓴 도로시아 브랜디는 창작은 무의식을 의식으로 옮기는 행위라고 이야기했다. 즉 우리가 이윤으로 계량할 수 있는 모든 노동의 가치는 그 이면에 계량할 수 없는 무의식이 뒷받침하고 있는 것이다. 그런 면에서 백수의 무의식과 아직 시대의 인정을 받고 있지 못한 의식은 그 자체로 인류가 보유하고 있는 소중한 자산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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