풀꽃도 꽃이고, 백수도 시민이다!

백수의 사회학 #25

by 낭만박사 채희태

『태백산맥』과 『아리랑』, 그리고 『한강』을 통해 대한민국 근현대사를 대하소설로 재조명한 작가, 조정래는 몇 년 전 『풀꽃도 꽃이다』라는 교육 소설을 발표했다. 대한민국 근현대사를 조망해 온 거장의 눈에도 현재 대한민국의 가장 큰 문제가 선발을 중심으로 한 경쟁 입시 교육이라고 느꼈던 것 같다. 제목이 인상적이다. 장미나 백합, 국화만 꽃이 아니라 들에 흔하게 피는 풀꽃도 꽃이라는 의미다. 하지만 이 당연한 제목이 퍽 낯설다. 고사리나 이끼처럼 꽃이 피지 않는 포자식물도 있지만, 우리가 알고 있는 대부분의 식물은 꽃을 통해 번식을 하고 열매를 맺는다. 하지만 우리는 화려하게 핀 꽃 뒤에 숨어 있는 생명의 의미를 보려고 하지 않는다.

나에게 의미가 없다고 해서 나와 무관하게 존재하고 있는 모든 생명이 의미가 없는 것은 아니다. 백수처럼 풀꽃도 존재 그 자체로 아름다운 꽃들을 더욱 돋보이게 하는 역할을 한다. 거듭 말하지만 이익이 중심이 되는 시대에는 더 많이 가진 자와 덜 가진 자 사이에 수직적 권력관계가 형성된다. 하지만 생존이 중심이 되는 위기의 시기가 되면 수직적 권력관계는 서로 협력하는 수평적 역할 관계로 작동한다. 임진왜란 때 궁을 버리고 도망친 왕이 예뻐서 민초들이 의병을 일으켰겠는가? 하지만 수평적 역할 관계는 평상시에는 권력이라는 구조 안에 숨어 있어 잘 드러나지 않는다.


필자가 서울시교육청에 어쩌다 공무원으로 있을 때 엘리베이터 안에서 청소를 하시는 분들과 자주 마주쳤다. 하루는 만약 저분들이 안 계셨으면 내가 청소도 하며 일을 했겠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우연히 이런 생각을 하자 생각은 다시 꼬리를 물고 이어졌다. 교육청에는 교육 행정을 하는 일반직과 교사 출신으로 시험을 보고 장학사가 된 전문직이 있다. 일반직은 역할에 따라 수없이 다양한 직종으로 분류되며, 전문직을 구성하는 장학사도 초등 교사 출신의 초등 장학사와 중, 고등학교 출신의 중등 장학사가 있다. 그 외에 교육청의 모든 것을 결정하는 교육감이 있고, 교육감의 정책 결정을 보좌하는 정무직 공무원들이 있다. 아무리 군대와 행정이 계급화된 사회라지만 이들 모두가 서로를 권력관계로 인식하기 시작하면 답을 찾기가 어려워진다.

대표적인 예가 일반직과 전문직의 갈등이다. 행정고시를 패스하는 경우가 아니면 보통 9급으로 시작하는 일반직은 대부분 학교에서 공무원 생활을 시작한다. 학교에는 교무실과 행정실이 있다는 것쯤은 잘 알고 있을 것이다. 교무실은 교육 전문직인 교사가, 행정실은 교육 행정직인 일반직이 근무를 한다. 학교가 학생, 그리고 학부모와 일차적 관계를 맺고 있는 교사 중심으로 운영될 것이라는 것은 충분히 미루어 짐작할 수 있다. 학교에서는 미세하게 또는 눈에 보이게 전문직의 사정은 우대되고, 일반직의 사정은 무시될 것이다. 이렇게 일반직은 학교 행정실에서 근무하며 뭐라 표현할 수 없는 박탈감으로 공무원 생활을 시작한다. 일반직 공무원이 승진을 하고 능력을 인정받으면 학교를 지원하는 교육청에서 일할 기회가 주어진다. 교육청에서 일을 하고 있는데 교사 출신의 장학사가 전문직이라는 이름으로 들어온다. 일반적으로 교육청 안에서 전문직 장학사는 학교 현장의 경험을 바탕으로 교육 정책을 생산하며, 일반직 교육공무원은 전문직이 만든 교육 정책이 행정 안에서 실행될 수 있도록 지원을 한다. 여기서 문제가 발생한다. 전문직 중심으로 돌아가는 학교나, 일반직 중심으로 운영되는 교육청이나 일반직과 전문직이 서로를 권력관계로 인식한다는 것이다. 학교에서나 교육청에서나 전문직들은 행정 업무에 시달린다. 행정 업무가 많아서 그럴 수도 있지만 권력관계로 존재하는 일반직과 전문직의 역할이 효율적으로 작동하지 않기 때문이다.


앞에서 잠깐 언급했지만, 농경 이후 시작된 계급 사회는 잉여생산물의 차지가 아닌 잉여생산물이 필요했기 때문에 만들어진 사회구조일 가능성이 적지 않다. 생존을 위한 역할 분담이 이익을 중심으로 전문화되면서 지배와 피지배라는 권력관계로 고착된 것이 소위 계급 사회이다. 군대나 공무원의 계급 체계 또한 효율적인 관료제를 운영하기 위해 시작된 것이지 계급 그 자체가 목적은 아니었을 것이다. 권력관계를 역할 관계로 전환하기 위해 필자가 자주 인용한 것이 바로 빙산의 역할 관계다.


빙산.jpg 빙산은 전체의 17%만이 수면 위로 떠올라 빙산의 일각이 된다


우리 사회를 빙산에 비유하면 구조적으로 17% 빙산은 물 위에 떠올라 소위 빙산의 일각이 된다. 빙산의 나머지 83%는 물속에 잠겨있다. 빙산 아래에서 아무리 경쟁을 해 수면 위로 올라간다고 하더라도 구조적으로는 그저 위치가 뒤바뀔 뿐이다. 빙산에서 수면 아래에 잠긴 부분이 하찮다고 하여 잘라낸다면? 17%의 83%는 다시 수면 아래로 잠길 것이다. 맹목적으로 더 큰 이익과 권력을 쥐기 위해 수면 위에 떠오르기 위해 경쟁할 것이 아니라 저 구조를 어떻게 지켜낼 것인지 역할에 대한 고민이 필요하다. 빙산을 중심으로 한 권력관계는 결국 빙산의 아랫부분을 괴멸시켜 빙산을 가라앉게 만들 뿐이다.

빙산의 맨 아랫부분은 아마 백수들의 자리일지도 모른다. 역할이라는 구조의 관점으로 바라보면 빙산의 일각이나 빙산의 맨 아래나 모두 쓸모가 있다. 1등부터 꼴등을 수직으로 세워 놓으면 우열과 열등의 관계가 되지만, 수평으로 뉘이면 1등은 공부를 잘하는 것이고, 옆에 있는 다른 아이의 다양한 재능을 볼 수 있다. 풀꽃도 꽃인 것처럼 백수도 이 사회를 구성하고 있는 어엿한 시민이다. 권력관계에서 역할 관계로 관점을 전환하면 풀리지 않던 많은 문제들을 풀어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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