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수의 사회학 #23
촛불을 들고 거리를 한 번이라도 누벼본 사람이라면 헌법 전문은 아니더라도 제1조 정도는 늘 뇌리에 담고 있을 것이다.
대한민국은 민주공화국이다
대한민국은 민주공화국이다
대한민국의 모든 권력은
국민으로부터 나온다
(무한 반복)
민중가요 작곡가 윤민석이 작곡한 “대한민국 헌법 제1조”라는 노래다. 헌법 제1조 외에도 대한민국 헌법은 사실 우리가 어렸을 때부터 배우고 접했던 다양한 상식과 기억들의 집합소다. 지나치게 상식적이고 당연한 내용들이라 만약 대한민국 헌법을 시험으로 본다면 그 난이도는 운전면허와 막하막하일 것이다. 그런데 늘 함정은 그 누구도 의심하지 않는 당연함 속에 존재한다. 만약 미세먼지가 기승을 부리지 않았다면 우리가 맑고 깨끗한 공기의 소중함을 알 수 있었을까? 헌법도 마찬가지다. 마치 공기처럼 있는 듯, 없는 듯 존재하다가 갑자기 우리들의 뒤통수를 후려친다. 모두 알고 있다시피 헌법에 정한 국민의 4대 의무는 교육(31조), 근로(32조), 납세(38조), 국방(39조)의 의무이다. 필자는 국민의 4대 의무 중에서도 교육과 근로의 의무에 한번 딴지를 걸어보고자 한다. 먼저 교육의 의무에 대해 살펴보자.
제31조 ①모든 국민은 능력에 따라 균등하게 교육을 받을 권리를 가진다.
②모든 국민은 그 보호하는 자녀에게 적어도 초등교육과 법률이 정하는 교육을 받게 할 의무를 진다.
③의무교육은 무상으로 한다.
④교육의 자주성ㆍ전문성ㆍ정치적 중립성 및 대학의 자율성은 법률이 정하는 바에 의하여 보장된다.
⑤국가는 평생교육을 진흥하여야 한다.
⑥학교교육 및 평생교육을 포함한 교육제도와 그 운영, 교육재정 및 교원의 지위에 관한 기본적인 사항은 법률로 정한다.
시작부터 이상하다. 1항에 쓰인 ‘능력에 따라’와 ‘균등’은 서로 이율배반되는 내용이다. 이 내용이 차별을 허용하는 조항인지, 아니면 평등을 지향하는 내용인지 당최 알 수가 없다. 근대교육은 애초에 계급별 사회화에 선발 기능이 탑재되며 시작되었다. 근대교육 이전에는 노예나 평민이 단지 공부를 잘한다고 귀족이 되는 경우는 없었다. 노예는 귀족의 지배로부터 자신의 생명을 지키기 위해 태어날 때부터 노예로서의 삶을 살아갈 수 있도록 교육받는다. 귀족은 보다 세련되게 노예를 지배하기 위해 와인의 맛을 구별한다든지, 포크와 나이프를 사용하는 방법이나 순서 등 생존의 문제와 크게 관계없는 내용을 배움으로써 자신이 노예와는 다르다는 것을 학습한다. 근대교육이 부여한 가장 중요한 가치는 누구든 교육을 통해 지위를 성취할 수 있다는 열린 가능성이었다. 그런데 “능력에 따라 균등하게 교육을 받을 권리”라니 이게 말인가, 막걸리인가?
다음은 4항이다. 대한민국의 헌법은 비인격체인 교육에 자주성을 부여했다. 자주성이란 스스로 일을 처리할 수 있는 능력이나 성질이다. 사회화의 도구였던 교육이 선발 기능으로 인해 계층 상승의 사다리가 되면서, 많은 사람들은 교육을 개천에서 허우적거리고 있는 자신을 용으로 만들어 줄 수 있는 유일한 수단으로 여겼다. 충효를 근간으로 하는 유교사회였던 조선시대에 스승은 임금과 부모와 동격, 아니 그 이상이었다. 임금이나 부모가 할 수 없는 계층 상승을 스승을 통해서는 가능했기 때문이다. 그래서 등장한 말이 바로 ‘군사부일체’다. 정성원은 ‘현대 한국사회의 대다수 학부모들이 자녀의 미래설계와 관련해서 한 번은 생각했을 인생지도는 태교/원정출산 → 탈세 및 자녀상속/위장전입 → 영어유치원/특목고/SKY입학 → 병역면제 → 자기계발 → 신위 등’이라며 한국사회를 총체적으로 과잉 교육화된 사회’(정성원, 2013: 281)라고 비판했다. 한때 대한민국의 가장 중요한 성장 동력이었으나 지금은 학생들을 자살로 내 몰고 있는 대한민국의 교육을 바꾸기 위해선 가장 먼저 교육으로부터 자주권을 빼앗아야 한다.
다음은 근로의 의무에 대한 딴지다.
제32조 ①모든 국민은 근로의 권리를 가진다. 국가는 사회적ㆍ경제적 방법으로 근로자의 고용의 증진과 적정임금의 보장에 노력하여야 하며, 법률이 정하는 바에 의하여 최저임금제를 시행하여야 한다.
②모든 국민은 근로의 의무를 진다. 국가는 근로의 의무의 내용과 조건을 민주주의원칙에 따라 법률로 정한다.
③근로조건의 기준은 인간의 존엄성을 보장하도록 법률로 정한다.
④여자의 근로는 특별한 보호를 받으며, 고용ㆍ임금 및 근로조건에 있어서 부당한 차별을 받지 아니한다.
⑤연소자의 근로는 특별한 보호를 받는다.
⑥국가유공자ㆍ상이군경 및 전몰군경의 유가족은 법률이 정하는 바에 의하여 우선적으로 근로의 기회를 부여받는다.
헌법 제32조에는 우리가 얼마나 당연하게 헌법을 어기며 살고 있는지 잘 드러나 있다. 대한민국의 여성이 근로를 하는데 특별한 보호를 받고 있으며, 고용ㆍ임금 및 근로조건에 있어서 부당한 차별을 받지 아니하고 있는가? 뿐만 아니다. 대한민국 국민은 근로의 의무를 다하기 위해 세계 그 어느 나라의 국민보다 더 열심히, 더 많은 시간을 준비하고 노력하고 있지만 근로의 기회를 얻기란 하늘에 별따기만큼 어렵다. 의무를 다하려면 치열한 경쟁에서 승리해 일자리를 쟁취해야 한다. 만약 국가가 지금처럼 근로의 의무를 헌법으로 계속 명기하려면 방법은 두 가지다. 기업이 할 수 없다면, 국가가 완전고용을 하든지, 아니면 비록 이 시대가 원하는 부가가치를 창출해 내지 못하더라도 국민이 하고 있는 모든 행위를 근로로 인정해 그에 상응하는 대가를 지불하는 것이다. 어쩌면 코로나로 인해 수면 위로 떠오르기 시작한 기본소득에 대한 논의가 바로 이 근로의 의무와 연관이 있는지도 모르겠다.
지금 우리가 준수하고 있는 헌법은 1987년 6・10 민주화 항쟁을 통해 대통령 직선제를 주요 골자로 개헌되었다. 그리고 30년이 넘게 흘렀다. 그동안 구구절절하게 말로 다 할 수 없는 변화가 있었다. IMF 외환 위기를 넘겼으며, 헌정 사상 최초로 수평적 정권 교체도 이루었다. 인터넷이 대한민국 방방곡곡을 넘어 모든 개인에게 연결되었으며, 인공지능이 인간의 노동을 빠르게 대체해 가고 있다. 촛불 혁명과 함께 직접 민주주의의 요구다 최고조에 다다르고 있다. 이 모든 변화를 한마디로 퉁치자면 불확실성이 매일매일 최대치를 갱신하며 인류가 더 짖은 안갯속으로 들어가고 있다고 할 수 있다. 그리고 인류는 언제 끝날지 알 수 없는 코로나의 터널을 지나는 중이다.
오래된 규칙은 산산조각 나고, 새로운 규칙은 아직 쓰이지 않았습니다. 결과적으로 코비드19 이후의 세상은 어떠할 것인지 예측하기란 불가능해졌습니다. 확실성은 이제 바닥을 쳤어요. 선택의 자유는 최고치에 다달았습니다. (유발 하라리)
미래의 예측이 어느 정도 가능하다면 가장 뛰어난 지도자에게 판단을 위임할 수 있다. 그러나 그 누구도 미래를 예측할 수 없다면 그 판단의 권한을 모두에게 주어야 한다. 그 모두 중에 아무리 하찮은 백수가 있다고 하더라도...
지난 2017년 장미 대선을 앞두고 여와 야는 모두 자치분권을 포함한 개헌에 동의했다. 여야의 정쟁으로 한 차례 시기를 놓쳤고, 앞으로 어떻게 될지는 모루지만, 모쪼록 개헌과 함께 국민의 4대 의무도 시대에 맞게 개정이 되었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