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렵다는 선택 노동, 백수가 도와주마!

백수의 사회학 #1

by 낭만박사 채희태

아직 백수 생활에 적응이 덜된 것 같다. 아무리 늦게 잠이 들어도 새벽에 눈이 자동으로 떠진다. 백수가 되기 전에는 일단 눈이 떠지면 다시 잠들지 않기 위해 눈동자에 힘을 빡 주고 누워 있거나, 그도 아니면 몽유병 환자처럼 침대에서 벗어나 집안 여기저기를 돌아다녀야 했다. 다시 잠들면 혹시라도 출근 시간을 놓칠 수 있기 때문이다.

어제는 밤늦게까지 넷플릭스(Netflix)를 뒤적거렸다. 뒤적거렸다는 표현이 딱 맞는다. 볼 게 너무 많다 보니 정작 뭘 봐야 할지 선택하는 것이 가장 어렵다. 정보 과잉의 시대를 살고 있는 현대인을 가장 고통으로 내 몰고 있는 것은 이른바 선택 노동이다. 넷플릭스는 세계 최고의 스트리밍 서비스답게 소비자의 선택 노동을 줄여주기 위해 늘 최선을 다한다. 만약 필자가 어떤 콘텐츠를 끝까지 보고 나면 비슷한 취향의 콘텐츠를 자동으로 추천해 준다. 그리고 지금 가장 많은 사람들이 보고 있는 콘텐츠를 시선 가장 가까운 곳에 랭크시킨다. 넷플릭스는 마치 필자에게 이렇게 이야기하는 것 같다.


“설마, 선택이 어렵다고 서비스를 해지하시는 건 아니겠죠?
이 작품을 보시면 그 마음이 사라질 거예요.”


필자도 잘 알고 있다. 일단 어떤 작품을 선택을 하고 나면 후회할 가능성이 희박하다는 사실을... 그럼에도 불구하고 선택 노동은 늘 나를 괴롭힌다. 넷플릭스뿐만이 아니다. 일주일에 516편이 연재되는 네이버와 다음 웹툰도 마찬가지다. 필자는 주로 네이버 웹툰을 애용하는데, 아무리 표지가 내 취향을 저격해도 하루에 세 개 이상의 웹툰을 보지 않기로 굳게 마음을 먹었다. 잘못하면 쿠키 굽느라 가뜩이나 빈약한 백수의 지갑이 탈탈 털릴 수 있기 때문이다. 아무 생각 없이 미리보기를 위해 쿠키를 굽다가 어느 날 매일 천 원 가까운 거금을 들여 쿠키를 굽고 있는 필자를 발견하게 되었다. 지금은 정신을 차리고, ‘문정후’의 “고수”와 얼마 전에 연재가 끝난, ‘이윤창’의 “좀비 딸”, 그리고, 오래전부터 친분이 있는 ‘애풍’의 “금붕어”를 제외하고 미리보기를 모두 끊어 버렸다. 재미있는지 없는지 딱 간만 보기 위해 웹툰 하나를 선택하는 순간, 후회해도 이미 때는 늦는다. 어쩌면 선택 노동은 정보 과잉의 시대 최소의 시간을 들여 최대의 재미를 이끌기 위한 뇌의 전략적 활동일지도 모른다.

필자가 장담한다. 당신이 아주 독특한 취향을 가지고 있지 않다면 어떤 웹툰을 선택하더라도 시간이 아깝지 않을 것이다.

생각해 보니 필자의 뇌가 기억하고 있는 비슷한 경험이 과거에도 있었다. 마치 지금의 내가 종이 한 장을 사이에 두고 백수와 프리랜서 사이를 넘나들 듯, 백수와 학생 사이를 넘나들던 대학 시절, 비슷한 취향의 작은형에게 추천을 받아 김용의 “영웅문”에 손을 댄 것이다. 1부 사조영웅전 6권, 2부 신조협려 6권, 3부 의천도룡기 6권, 총 18권을 보느라 두 달 가까이를 폐인으로 살았다. 잠도 자지 않고 영웅문을 보느라, 눈은 늘 충혈되어 있었고, 나의 뇌는 곽정이, 양과가, 장무기가 펼치는 무공을 그려내기 위해 풀가동되고 있었다. 무려 두 달이다. 두 달 동안 나는 중국 무협의 세계에서 허우적거리며 일상을 반납했다. 이제 알 것 같다. 필자가 선택 노동에 막연한 두려움을 갖는 이유 중 확실한 하나는 혹여라도 필자가 백수를 넘어 폐인의 신세까지 전락하는 것을 막기 위한 뇌의 배려였던 것이다.


동병상련이라는 말이 있다. 백수 앞에 놓인 선택 노동이 주는 고통과 그 피해는 같은 백수가 아니면 알 수 없다. 필자는 먼저 코로나로 인해 학교가 아닌 집에서 빈둥거리고 있는 시한부 백수인 딸들의 도움을 받기로 했다. 사실 굳이 도움을 청하지 않아도 방에 누워 빈둥거리고 있으면 심심한 딸들이 먼저 제안을 해 온다.


“아빠, 나 아빠랑 같이 보고 싶은 영화 있는데...”
첫째 딸이 먼저 제안을 해 온다.
“뭔데?”
“미드나잇 썬이라는 영환데, 그 영화 보니까 아빠 생각이 나서”


“아빠, 나랑 같이 암살 교실 볼래?”
이번엔 둘째 딸의 제안이다.
“암살 교실? 제목이 별론데?”
“아빠가 교육에 관심이 많잖아. 제목은 좀 엽기적인데 내용은 정말 감동적이야.”


필자와 다른 세대를 살아가고 있는 딸들도 각자 자신들의 취향이 있다. 굳이 아빠와 무언가를 같이 보고 싶다는 건, 그 선택이 아빠인 필자에게도 가치가 있을 거라고 믿기 때문이다. 필자는 딸들과 “미드나잇 썬”을 보며 눈물을 쏟았고, “암살 교실”의 마지막 회에선 콧물까지 쏟고 말았다. 딸들이 대신해 준 선택 노동의 결과 딸들과의 세대 간 거리가 짧아졌음은 두 말 나위도 없다.


오랜만에 나와 그닥 다르지 않은 삶을 누리고 있는 한 후배를 만났다. 밥을 먹고, 차를 마시며 서로의 선택 노동을 최소화시키기 위한 정보를 교환한다.


후배 : “○○○” 보셨어요?
나 : “아직, 안 봤는데? 재밌어?
후배 : “보지 마세요. 쓰레기예요.”
나 : 그럼, 뭐가 재밌어?
후배 : “설국열차” 재밌어요.
나 : 나 그거 영화로 봤는데?
후배 : 그거 영화 아니고, 비슷한 세계관의 미든데, 형이 보면 좋아하실 거예요.
나 : 그으~래? 알았어. 꼭 볼게.


왜 마눌님께서 외식을 할 때마다 무엇을 먹을지 물어보는 그 이유를 이제야 알 것 같다. 선택 노동이 고달프다는 것을 나보다 먼저 깨달았기 때문이다. 밥도 남이 차려주는 밥이 맛이 있듯, 선택도 남이 해 주는 것이 훨씬 품이 덜 든다. 주변에 백수가 있다면 다양한 선택 노동을 하기 전에 도움을 청해 보기 바란다. 그 분야에 있어서는 확실히 백수가 고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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