절망의 나라에서 행복한 백수 되기

백수의 사회학 #20

by 낭만박사 채희태

일본의 젊은 사회학자 ‘후루이치 노리토시’는 『절망의 나라에서 행복한 젊은이들』의 한국어판 서문에서 최근(책은 2011년 일본에서 출간되었지만, 우리나라에 소개된 것은 2014년이니 그즈음일 것이다.) 일본의 20대가 느끼는 생활 만족도가 78.3%까지 상승했으며, 중, 고등학생도 95%가 자신은 행복하다고 대답했다고 밝혔다. 호주에서 살고 있는 필자의 친구는 인종차별이 수면 아래에 존재하기는 하지만 호주는 어린이와 여성을 비롯한 사회적 약자가 살기 좋은 나라라고 이야기한 적이 있다. 그렇다면 가깝고도 먼 나라 일본은 젊은이들의 천국일까? 하지만, 후루이치 노리토시는 일본의 사정이 우리나라와 크게 다르지 않다고 말한다. 다만 같은 현실에 대한 젊은이들의 다른 인식이 행복의 원인이라고 말한다.


고성장을 경험했던 기성세대는 보다 나은 내일을 기대하며 오늘의 고통을 견뎠다. 기성세대는 학창 시절 “10분만 더 공부하면 아내의 얼굴이 바뀌고, 남편의 직업이 바뀐다.”는 교훈을 보며 학교를 다녔다. 서울대 생활과학대 김난도 교수는 『아프니까 청춘이다』에서 청년세대의 고통을 미래의 행복을 위해 감내해야 할 당연한 통과 의례처럼 이야기해 뭇매를 맞았다. 개그맨 유병재는 SNL 코리아의 “인턴 전쟁”이라는 코너에서 “아프면 환자지, 뭐가 청춘이야?”라고 일갈했다.


미래를 담보로 한 교육의 협박은 학교에서 문방구로 이동했다.


미래가 행복하다고 확신할 수 있다면 오늘의 고통은 기꺼이 견뎌낼 수 있다. 내일 수확하는 사과가 더 크고 맛있다면, 그리고 그 사과를 다른 사람이 따 먹지 않는다고 확신할 수만 있다면, 고통스럽지만 당장의 식탐을 억누를 수 있다. 하지만, 내일 사과가 썩을지도 모르고 아껴둔 사과를 다른 사람이 먹을 수도 있다면, 눈에 보이는 사과를 먹는 것이 당장의 행복을 지킬 수 있는 방법이다.


요즘 (일본) 젊은이들이 품고 있는 생각은 바로 가까운 사람들과의 관계 및 작은 행복을 소중하게 여기는 가치관이다. “오늘보다 내일이 더 나아질 것이다.”라는 생각은 하지 않는다. 일본 경제의 회생 따위는 바라지도 않는다. 혁명 역시 원하지 않는다(후루이치 노리토시, 2014: 34).


『우리는 차별에 찬성합니다』라는 도발적인 책으로 한국사회에 파문을 일으킨 젊은 사회학자 ‘오찬호’는 일본의 젊은이들이 행복한 이유는 오히려 절망적인 일본 사회 덕분이라도 비틀어 이야기한다. 즉, 젊은이들이 더 이상 희망적인 미래를 기대하지 않기 때문에, 다시 말해 미래를 포기했기 때문에 비로소 행복할 수 있다는 것이다. 그리고 아직도 절망의 나라에서 행복할 수 있다는 기대를 포기하지 못하고 있는 대한민국의 젊은이들을 동정한다.


인류의 조상인 사피엔스는 약 20만 년 전 지구에 등장해 생존을 위한 달리기를 시작했다. 처음엔 각자 흩어져 달렸지만, 함께 달리는 게 생존율을 높일 수 있다는 걸 깨달은 후로는 함께 무리를 지어 달리기 시작했다. 빨리 달릴 수 있다고 혼자 달려 나가는 사피엔스는 없었다. 덕분에 사피엔스는 생존을 위협하고 있는 많은 불확실성으로부터 벗어나게 되었다. 생존의 문제를 해결한 사피엔스는 조금씩 이익을 위해 달리기 시작했다. 더 빨리 달리기 위해 말을 타고 달리는 사피엔스도 등장했다. 가끔은 뒤처지는 걸 견디지 못하는 사피엔스도 있었는데, 앞 서 달리는 사피엔스를 따라잡기 어렵다고 판단이 되면 아예 달리는 방향을 바꾸기도 했다.

모든 사피엔스가 방향 바꿔 달리기에 성공한 것은 아니지만 만약 성공하게 된다면 방향을 바꾼 사피엔스는 맨 앞을 차지할 수 있었다. 이제는 자신을 따라오는 사피엔스에 대한 처리가 고민이 되었다. 적당히 달리자니 뒤따라 오는 사피엔스에게 앞을 내어줄 것 같고, 너무 빨리 달리자니 자신처럼 방향을 바꾸거나 아예 따라오지 못하는 사피엔스가 생길 수도 있기 때문이었다. 맨 앞에 있는 사피엔스는 자신의 뒤를 따라 달리고 있는 사피엔스에게 방향에 대한 확신을 심어줄 필요가 있었다. 가끔은 적당한 떡고물을 떨어뜨리는 것이 효과적일 때도 있었다.

이제 선두를 따라잡기 위해서는 말보다 더 빨리 달릴 수 있는 무언가가 필요했다. 자전거가, 자동차가, 그리고 하늘을 나는 비행기가 만들어졌다. 생존을 위해 달릴 때는 안전한 곳이 나타나면 그나마 잠시 쉴 수도 있었다. 하지만 이익을 위한 달리기는 중간에 쉬는 것이 불가능했다. 목표가 생존이 아니라 이익이기 때문이었다. 생존을 위한 달리기의 기준은 삶과 죽음이었지만, 이익을 위한 달리기는 다른 사피엔스보다 더 빨리 달려야 하기 때문이었다. 어느새 사피엔스의 달리기에서 생존이라는 목표는 완벽하게 사라졌고, 오직 경쟁이라는 수단만 남게 되었다.

생존을 위한 달리기에서 가장 중요한 건 선두와 후미의 간극이었다. 선두와 후미가 서로의 시야에 들어와야 생존을 위한 달리기의 의미가 있었다. 하지만 이익을 위해 달리는 사피엔스는 굳이 자신의 뒤통수를 뒤따라 오는 사피엔스에게 보여줄 필요가 없었다. 단지 자신을 따라오게 하는 것만이 중요했다. 후미에서 달리는 사피엔스의 시야에서 선두의 뒤통수가 사라진지는 꽤 오래되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달리기를 멈출 수 없는 이유는 단지 선두가 남긴 발자취가 사라질지도 모른다는 불안감 때문이었다. 후미에는 다양한 사피엔스가 난무했다. 맨 앞에 달리는 사피엔스의 그 멋들어진 뒤통수를 본 사피엔스도 있었고, 가끔은 같이 선두에서 달리다 뒤처진 사피엔스도 있었다. 맹목적으로 선두가 남긴 발자취를 쫓는 사피엔스도 있었고, 보이지도 않는 선두의 뒤통수를 쫓느니 주변에 펼쳐진 풍경으로 눈을 돌리는 사피엔스도 하나 둘 생겨나기 시작했다. 선두가 지나간 자리에는 이익을 위한 달리기에 필요하지 않은 찌꺼기들이 버려져 있었다. 만약 사피엔스가 이익이라는 생존과 무관한 경쟁에서 벗어날 수만 있다면 다른 종류의 행복을 누리는데 충분한 질과 넉넉한 양의 찌꺼기였다.


성공과 행복을 위해서는 IQ(지능지수)보다 EQ(감성지수)가 더 중요하다는 주장으로 사회적 반향을 일으켰던 심리학자 대니얼 골먼(Daniel Goleman)은 최근 미래사회에는 IQ도 EQ도 아닌 SQ(사회지능)가 더 중요하다는 새로운 화두를 제시했다. 지능이 뛰어난 사피엔스가 인류를 이끌던 시대는 지났다. 뒤따라 오기를 주저하고 있는 사피엔스에게 자신을 따라오라며 감성으로 호소하는 것도 이제 한계에 봉착했다. 사회지능을 발휘하기 위해선 무작정 앞만 보고 달려서는 안 된다. 불확실한 미래를 향한 질주를 멈추고 주변을 살펴야 한다.


필자는 어공으로 있었던 시절 새내기 공무원들에게 윗사람이 지시한 100%의 일을 하고 나면 칭찬이 아니라 200%의 일이 돌아오니 적당히 70%만 하라고 조언했다. 그리고 남는 30%의 시간에는 옆을 보거나 뒤를 살피라고... 우리는 각자에게 주어진 역할에 충실하면 할수록 더욱더 불행에 빠지는 묘한 시대에 살고 있다. 필자는 시민과 함께 일을 하려니 일이 진행이 안된다고 한탄을 하는 친한 주무관에게 이렇게 얘기했다.


종인아, 너무 열심히 하지 마~
네가 열심히 할수록 시민과 간극만 더 벌어져!

행복은 불확실한 미래가 아니라 현실 속 어딘가에 있다. 현실 속에서 행복을 찾을 수 있다면 절망의 나라에서도 행복한 백수로 살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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