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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낭만백수 채희태 Apr 11. 2021

박사과정, 첫 발표를 돌아보며

슬기로운 박사과정 #2

# 박사과정 첫 발표를 마치고 인천으로 돌아와 3월 9일에 쓰기 시작한 글입니다.


두 번째 수업을 마치고 집으로 돌아왔다.

내가 첫 수업인 오리엔테이션에서 호기롭게 첫 발표를 맡았던 이유는 두 가지다.

첫 번째, 첫 발표를 누가 해 보겠냐는 교수님의 질문으로 인해 발생한 정적을 깨기 위해서였다. 난 침묵을 잘 못 견딘다. 심지어 모든 침묵은 나의 탓이라는 자격지심마저 있을 정도다. 그래서 박사과정이라는 음식의 간도 보지 않고 덥석 맛을 봐 버렸다. 내가 미쳤지... ㅠㅠ

두 번째, 약간의 오만이 있었던 것 같다. 난 석사과정을 매우 우수한 성적으로 졸업했다. 논문도 나름 성공적이었다 자평한다. 그래서 박사과정 발표를 다소 우습게 생각했었던 것 같다.


내가 호기를 부린 결과는 무참했다. 수업이 끝난 후 같이 수업을 들었던 분들로부터 위로를 받을 정도로...

하지만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것에는 부정성 이면에 긍정성이, 긍정성 이면에 부정성이 존재하고 있고, 그 양가성을 보자는 것이 내가 주장하고 있는 양시론이다. 하룻강아지 석사가 박사과정이라는 범에게 맞선 결과 제법 상처는 입었지만, 상처의 대가로 나름의 교훈도 얻을 수 있었다.


1. 요약이 아니라 주장

내가 맡은 발표는 논문을 발제하는 것이었다. 나름 석사 때보다  심혈을 기울여 논문을 읽고 요약했다. 그리고 중간중간 나의 생각도 곁들여 발표했다. 발제 시간을 20분이었는데, 발표를 마치고 나니 30분이 지났다고 했다. 나의 발제는  마디로 내용 없이 장황했다. 발표 전에 나보다 먼저 박사과정에 입문한 다른 선배들의 발제문을 슬쩍 들여다 보기는 했는데, 선배들의 발제문 마지막에는 참고문헌이 적혀 있었다.


2. 말이 아니라 글

발표가 끝나고 "박사는 말이 아니라 글, 화려한 수사가 아닌 근거가 확실한 주장을 해야 한다."는 교수님의 조언을 들었다. 나는 어공으로 있으면서 갈고닦은 능력으로 논문을 개조식으로 발췌했고, 그 사이사이를 장황한 말로 메웠다. 말은 글보다 간편하다. 하지만 그 간편함은 주장의 논리적 전개에 독이 된다. 한 번은 내가 했던 말(강의?)의 녹화본을 다시 본 적이 있다. 말하는 내내 논리의 비약은 말할 것도 없고, 주어와 술어가 따로 노는 경우가 허다했다.


3. 주제에 천착하라!

학부 때는 국문학을, 그리고 사회학으로 석사를 마친 나는 한 가지 주제에 집중하기보단 메뚜기처럼 여기저기를 뛰어다녔다. 내가 지금까지 그렇게 살아왔던 이유 중 하나는 용기가 없었기 때문이었다. 초등학교 때 꿈은 로봇을 만드는 과학자가 되어 형들과 함께 세계를 정복하는 것이었다. 적어도 지금 삼형제의 그 결의에 가장 다가가 있는 사람은 프로그래머로 일하고 있는 작은형이다. 중학교 때는 미대에 가고 싶었다. 학원에 보내 줄 돈이 없다는 부모님의 말에 나는 쉽게 순응했다. 고등학교 때는 음악을 하고 싶었지만, 그때는 지금처럼 대중음악을 가르치는 대학이 없었다. 난 내가 가고자 하는 길이 막혀 있으면 용기를 내어 길을 내기보단 샛길로 돌아 다른 길을 찾아왔던 것 같다. 그러나 박사 과정은 그렇게 해서 지나갈 수 있는 길이 아닌 것 같았다. 목숨까지 걸 필요는 없겠지만, 더 이상 피하지 않고 돌파를 해야 하는 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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