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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낭만백수 채희태 Jun 17. 2021

자존감과 자신감 1

난 자존감이 낮은 편이다  나의 존재 이유를 내가 아닌 남에게서 찾는다. 타인에게 인정받기를 원하며, 끊임없이 남과 나를 비교한다. 그래서 늘 딸들에게 이렇게 물었다.


아빠가 좋아, 엄마가 좋아?


난 자존감이 낮은 이유를 3남 1녀 중 막내로 태어난 태생적 이유와 부모님을 따라 월세방을 전전했던 유아기의 경험에서 찾는다.


어머니는 결혼 후에도 심부름을 시키실 때 다 큰 조카들이 아닌 내 이름을 부르셨다. 마치 집안 심부름을 시키기 위해 나를 낳으신 것처럼… 그걸 깨달은 건 결혼 후 옆지기의 환기가 있었기 때문이다.


어머니는 왜 자기 이름만 불러?


유아기적 기억은 솔직히 잘 나지 않는다. 내가 아닌 어머니의 기억을 소환하자면 주인집 아들(이름이 진욱이였나?)이 자기 집이라고 마당에서 놀지 못하게 하자, 어머니가 방 앞에 마당에 금을 그어놓고 여기는 우리가 돈 내고 빌린 땅이니 여기서 노는 건 뭐라 하지 말라고 하셨다고 한다.


자존감이 낮은 반면, 근거 없는 자신감은 하늘을 찌른다.


자존감이 낮았기 때문일까? 공부는 지지리도 안 했으면서 대학은 가고 싶었다. 큰형, 작은형 모두 비록 재수를 했지만 하늘(SKY) 바로 밑에서 도토리 키 재기를 하고 있는 대학에 들어갔다. 큰형과 작은형이 들어간 대학은 나의 가이드라인이었다. 더 높이 올라가고 싶지도, 또 그보다 낮은 등성이에 있는 대학에 가고 싶지도 않았다. 1987년… 민주화 투쟁이 한창이었지만, 그 의미를 알지 못했던 나는 재수를 하는 1년 내내 죽어라 공부만 했다. 마약보다 더 중독성이 심했던 농구도 끊고… 마약을 해 본 적이 없으니 솔직히 그 중독성의 정도를 비교할 수는 없다. 같이 농구를 했던 친구가 농구가 마약 같다고 해서 든 비유다. 내신 10등급 중 5등급이었던 나는 어렵게 형들이 다니던 대학과 어깨를 마주하고 있는 대학에 뒷문을 닫고 들어갈 수 있었다. 설마 내 뒤에 누가 있으리라고는 상상할 수 없었다. 재수 1년의 경험이 내 자신감의 뿌리라면 뿌리가 되었다. 대학은 고등학교와 달라서 성적이 우월과 열등을 나누는 기준이 되지 않았다. 오히려 공부만 하는 친구들은 묘한 열등감에 시달렸다. 가장 우월한 존재는 화염병을 잘 던지거나, 전경 가장 가까운 곳에서 쇠파이프를 들고 있는 친구였다. 그 친구(선후배 포함)들 중 대부분은 그때 맛보았던 우월감을 잊지 못해 이 시대를 꼰머로 살아가고 있는지도 모른다  


니들이 반독재 민주화 투쟁을 알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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