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소 시를 별로 좋아하지는 않지만,
불현듯 김수영의 시 "풀"이 떠오른다.
마치 우리가 똥을 싸기 위해 아랫배에
온 힘을 집중하듯,
시인은 우주의 맥락을 단어 하나에 욱여넣기 위해 집중하는 사람들이다.
그렇게 단어를 갈고 또 벼려 탄생한 시에
단 하나의 정답이 있을 리 없다.
김수영이 어떤 의미로 썼든 나는 지금
"풀"을 이렇게 이해하려 한다.
고목이 되고자 하면 거센 바람에
뿌리가 뽑혀나갈 수 있다.
하지만 세상의 모든 낮은 것들과
어깨를 견주는 풀이 되고자 한다면
바람이 지나간 후 다시 일어설 수 있다.
그래서 나는 고개를 삐죽 치켜든 고목이 아닌
그저 풀이 되고자 한다.
차암, 뜬금 없지만...
김수영
풀이 눕는다
비를 몰아오는 동풍에 나부껴
풀은 눕고
드디어 울었다
날이 흐려서 더 울다가
다시 누웠다
풀이 눕는다
바람보다도 더 빨리 눕는다
바람보다도 더 빨리 울고
바람보다 먼저 일어난다
날이 흐리고 풀이 눕는다
발목까지
발밑까지 눕는다
바람보다 늦게 누워도
바람보다 먼저 일어나고
바람보다 늦게 울어도
바람보다 먼저 웃는다
날이 흐리고 풀뿌리가 눕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