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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낭만백수 채희태 Aug 29. 2023

재난 같은 현실을 그린 현실 같은 재난 영화

<콘크리트 유토피아>를 보고…

*주의 : 본 글에는 의도치 않은 스포일러가 있을 수 있습니다.


간만에 흔들림 없는 흥행을 이어가고 있는 한국 영화, <콘크리트 유토피아>를 보고 왔다. 영화를 보는 내내 여러 생각들이 겹쳐졌다. 같이 영화를 보고 나온 딸은 내용이 철학적인 것 같다고 평했다. <콘크리트 유토피아>는 지진으로 인해 단 하나의 아파트만 남게 된다는 허구를 바탕으로 한 재난 영화지만, 고딩 딸의 눈에도 그 허구가 상징하는 재난 같은 현실의 모습이 느껴졌나 보다.


1. 재난 같은 현실을 그린 현실 같은 재난 영화

지금까지 내가 본 재난 영화들은 대부분 실재 있었던 사건을 재구성하거나, 예측 가능한 인간의 실수나 통제 불가능한 인간의 탐욕이 재난으로 이어질 수 있다는 경고를 담은 영화들이었다. <타이타닉>, <국가 부도의 날>이 전자의 경우라면, <판도라>, <돈 룩 업>, <부산행> 등은 후자의 경우라고 할 수 있다. 그리고 재난 영화에는 크든 작든 재난의 원인이 등장한다. 하지만 <콘크리트 유토피아>는 재난 영화의 전통적인 문법들을 가볍게 무시한다. 대표적으로 재난의 원인에 대한 별다른 설명 없이 바로 영화가 시작되며, 영화 그 어디에도 재난의 원인에 대해 언급하는 장면이 나오지 않는다. 덕분에 난 재난의 결과인 현실에 더 몰입하며 영화를 감상할 수 있었다.


아파트 공화국, 대한민국에 살고 있는 우리들은 영화를 보자마자 쉽게 눈치챘을 것이다. 이름과는 어울리지 않게 황궁 아파트는 세대와 세대가 복도로 이어진 구식 아파트라는 사실을... <콘크리트 유토피아>에는 황궁 아파트 주민들을 포함해 대략 세 부류의 사람들이 등장한다. 주민 대표로 영화를 이끌어 가는 영탁(이병헌)이 그런 낡고 오래된 아파트에라도 살아보는 게 소원인 부류라면, 비록 지금은 살기 위해 황궁 아파트를 기웃거리지만 최고급 아파트였던 드림팰리스에 살고 있던 주민들은 평소 황궁 아파트에 살고 있는 주민들을 멸시하거나 혐오해 왔을 것이다. 그리고 두 부류 사이에서 우월감과 열등감이라는 묘한 감정을 안고 살아왔던 황궁 아파트 주민들은 살기 위해 황궁 아파트를 찾은 외부인에게 배타적인 태도를 취하는 것으로 그 복잡, 미묘한 감정을 해소한다.


황궁 아파트는 세대와 세대가 복도로 이어져 있는 오래된 아파트다

<콘크리트 유토피아>를 연출한 엄태화 감독은 현실 같은 재난 영화라는 몰입감을 유지하기 위해 영화 곳곳에 다양한 장치들을 배치한다. 재난을 헤쳐갈 대표를 선출하는 자리에서 자가가 아닌 전세민에게도 후보 자격을 주어야 하는지를 묻는 주민의 모습을 통해 우리가 여전히 과거와는 다른 기준의 계급 사회에 살고 있음을 주지시키며, 아파트는 주민의 것, 주민만이 살 수 있다로 시작하는 "황궁 아파트 주민수칙"을 통해 차단기와 비밀번호로 외부인을 배척하는 현실 속 아파트의 모습이 영화 속 재난 상황과 별 다를 바 없음을 보여준다. <콘크리트 유토피아>를 보며 어쩌면 존 로크가 17세기 중세 귀족들로부터 자신의 재산을 지키기 위해 발명한 소위 "소유권(Property)"이라는 개념이 중세와는 전혀 다른 생산관계와 계급 구조에서 살고 있는 현대 자본주의의 핵심 모순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콘크리트 유토피아>의 주제는 이 주민수칙에 잘 드러나 있다.

2. 감독이 말하고 싶은 진정한 유토피아는?

영화 초기 관객들은 홀로 남은 황궁 아파트가 영화 제목인 콘크리트 속 유토피아라고 생각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매일 아파트 밖 폐허에서 목숨을 걸고 생필품을 구해와야 하고, 언제 더 큰 힘을 가진 외부인에게 자신의 보금자리를 빼앗길지 모르는 불안감 속에서 살아야 하는 황궁 아파트가 진정한 유토피아라고 할 수 있을까? 결국 외부인들의 침탈로 주민들은 황궁 아파트에서 쫓겨나게 되고, 박보영은 부상을 당한 남편 박서준을 이끌고 폐허를 헤매다 그 잔해 속에서 살고 있는 다른 주민들에 의해 구조된다.


정확히 가로로 누워 버린 아파트… 처음엔 정상적인 아파트 거실처럼 보이지만 서서히 카메라 앵글을 90도로 돌리자 비정상적으로 누워있는 아파트의 모습이 펼쳐진다. 방과 방 사이를 오가기 위해선 계단을 이용해야 하는 폐허 아파트 주민들은 황궁 아파트 주민들과 달리 외부인들을 따뜻하게 맞이한다. 여기에서 같이 살아도 되냐는 박보영의 질문에 폐허 아파트 주민들은 주민들은 오히려 그 질문을 의아해하며 반긴다. 다양하고 부족한 인간과 인간의 연대를 통해 생존해 온, 그리고 그 관계의 힘으로 마침내 만물의 영장으로 올라선 인간들을 지옥으로 내 몰고 있는 것은 아이러니하게도 부족함이 아니라 구질구질하게 관계에 의지할 필요가 없다고 느끼는 만능감이 아닐까?


재난이라는 자극적인 소재로 사람들의 이목을 집중시켰지만, <콘크리트 유토피아>는 꼿꼿하게 세로의 형태를 유지하고 있는 황궁 아파트와 지진으로 인해 가로로 누워버린 아파트 중 진정한 유토피아는 어떤 모습인지에 대한 질문을 관객들에게 던지며 끝을 맺는다. 100층이 넘는 롯데타워는 승강기를 통하면 얼마든지 더 높은 층으로 올라갈 수 있다는 자본주의의 기대를 상징한다. 하지만 그 건물을 소유할 수 없는 개인은 그 기대와 자신이 처지를 비교하며 지옥 같은 현실을 살아갈 수밖에 없다. 『누가 선발되는가(The Chosen)』라는 책을 통해 미국의 입시 제도를 비판한 제롬 카라벨(Jerome Karabel)은 사회라는 건물을 좁고 높은 초고층이 아니라 넓고 낮게 만들어야 한다고 주장하기도 했다. 진정한 유토피아는 더 높은 곳으로 오를 수 있다는 기대만 난무하는 사회가 아니라, 역설적으로 더 많은 사람들이 따뜻한 곁을 나눌 수 있는 폐허 같은 사회가 아닐까?


좁고 높게 치솟은 롯데타워와 낮고 넓게 분포되어 있는 부산의 감천문화마을

3. 배우, 박보영의 재발견

난 지금까지 배우 박보영을 그저 귀여운 배우라고만 생각했다. 영화를 보고 난 후 <콘크리트 유토피아>를 보지 않은 옆지기에게 "박보영 어때?"라고 물으니, 대뜸 "박보영? 귀엽지~"라고 답했다. 재난 영화 특성상 화장은커녕 먼지가 덕지덕지한 박보영의 얼굴을 보는 매 순간마다, 화면을 가득 메운 아름다움이 과해 영화에 집중하기 어려울 정도였다. 그동안 귀여움에 가려졌던 박보영의 아름다움이 <콘크리트 유토피아>를 통해 터져 나온 것 같았다. 특히 조막만 한 얼굴에 동그란 눈동자를 모두 담아낼 만큼 큼지막한 눈은 보는 내내 감탄하게 만들었다. 나만 그런가 싶어 같이 영화를 보고 나온 딸에게 물으니, 딸도 박보영이 그렇게 예쁜 배우였는지 몰랐다고 말했다. <콘크리트 유토피아>에서의 박보영은 <미스터 션샤인>의 김태리보다 당찼으며, <환혼 2>의 고윤정보다 우아했다. 당분간 넷플리스나 디플, 티빙 등에서 박보영이 출연한 영화나 드라마를 뒤져봐야겠다.


귀여움을 탈피하고 아름다운 배우로 거듭난 박보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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