똥에 이르러서야 평안에 지려나..
주변에서는 항상 다양한 일이 벌어진다. 누군가는 위기에 처해있고, 누군가는 행운에 다다른다. 문제는 이런 다양한 일이 벌어질 때 그것에 반응하는 내 마음이다. 농담을 하면서, 대화를 하면서 의식은 점점 더 빨라지고 더욱더 깊게 반응한다. 누군가 화두를 던지면 그 파동으로 감정이 솟아오른다. 솟아오른 감정이 나를 휘두르기 시작하고 어느새 나 역시 파동이 되어 내 주변을 흔들고 있다. 이런일이 매순간 벌어진다.
잠시라도 멈추고 내가 어떤 상황인지를 조금만 돌아보면 안정을 찾을 수 있다. 멋진 말로 마음챙김, 불교 용어로 알아차리기라고 하더라. 뭐라고 부르던 흔들림에 떨리는 마음이 조용해지기를 찾는 과정은 쉽지 않다. 천천히 호흡을 가다듬고 현 상황을 명료하게 이해해야한다. 여기서 조금이라도 잘못된 감정이 섞이게 되면 그 반응이 자극에 달라붙어 떨어지지 않게 된다. 자꾸 반복하게 된다.
아. 왜 또 저러는걸까?
확. 죽여버리고 싶네!
헐. 제 정신 아닌거 아니야?
젓. 갈 담그는 소리를...
끈임없이 내가 맞고 당신은 틀리다며 스스로에 대한 자부심을 머리 위로 쏟아붓는다. 그래서 '만'해진다. 자만/거만/오만/불만/태만 끈임없는 만의 소용돌이. 이 '만'이라는 상태가 지속되면 앞에 있는 것도 보이지 않고, 옆에서 이야기해도 들리지 않는다. 마치 미끄럼틀같이 올라가면 내려오는 반사작용처럼 반복을 하게 된다. 아. 열받네. 아. 서운하네. 아. 복잡하네. 아. 왜저럴까. 아. 난 아무 잘못도 없는데. 아. 내가 얼마나 노력했는데. 아. 정말 몰라주네. 아. 삐뚤어지고 싶다. 아. 술이나 먹을까. 아. 조용해지고 싶어. 아. 지겨워. 지겨워.
사실
흔들리는 것도 나고
흔드는 것도 나다.
내 주변은 그저 그대로 벌어지고, 살아지고 있을 뿐.
평안하다는 것은 결국 똥통에서도 내가 똥 속에 있구나라고 이해하는 것에 그쳐야한다는 맹목적인 반복인 것 같다. 그래 난 지금 똥통 속에서 평안하게 내 주변의 똥을 바라보고, 똥 바깥에 다른 세상이 있음을 뚫어보고, 가끔 똥을 먹기도 싸기도 한다. 뭐 어떠냔 말이다. 내가 똥이던, 니가 똥이던, 세상이 똥이던....
드라마 캐릭터의 이름이 떠오른다.
평안함이 이르르다.
지안
개명이나 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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