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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Damien We Oct 27. 2021

읽씹을 해석하는 방법

굳이 해석을 해야한다면...ㅋㅋ

#1. 읽씹에 대한 아주 개인적인 생각 

위씨가 생각하는 미래형 인간의 최적화된 얼굴. 잘보고, 말없고, 안티바이러스한 얼굴가리개다


요즘 삼십대와 사십대 그리고 오십대. 무슨 의미가 있겠냐마는... 나이는 어느 정도 그들만의 문화라는 걸 반영한다. 오십대는 어렸을 때, 삐삐 등을 가지고 공중전화 박스 앞에 줄서있었던 기억들이 있을거다. 누군가가 나에게 연락이 온다는 것은 사실 즐거운 일이었다. 호출을 받는다는 것 자체가 왠지 모르게 사람을 더욱 기대하게 만드는 측면이 있었다. 

 지금 사십대들은 삐삐가 활개를 치던 시절 초중생이었으니 그 경험은 많지는 않을거다. 그래도 PCS폰 등 연락할 수 있는 디바이스를 가지고 대학생활을 했다는 것 자체가 아직은 그들에게 연락이라는 것은 의미가 있었다고 생각된다. 

 정말 다른 것은 요즘 삼심대 이하인듯 하다. 아실지 모르겠으나, 1997년에 국내 최초 무료 이메일이 생겼다. 그리고 디바이스가 똑똑해지기 시작하면서 삼십대들은 사실 상 보이스보다는 텍스트가 더 편안한 세대가 되었다. 


왜 요즘 젊은사람들은 읽씹을 많이 할까? 


- 뭐..내가 보낸 메시지가 별로인가?

- 음. 나랑 커뮤니케이션을 하는 것 자체가 무의미한가? 

- 귀찮은가? 

- 못들은 척 하듯이, 본 읽은척 하는건가? 

- 나는 그 사람에게 스팸의 일종인가?

- 읽씹을 하는 사람들은 메시지를 보낸 사람을 까 먹은 것인가? 

이런 상상을 하게 한다. 


개인의 차이가 있겠지만, 내 경험에 의하면 1998학번(학부제) 이후의 사람들이 읽씹을 하는 경향이 늘어났다고 믿고 있다. 학연/혈연/지연에 얽메여 살던 1997학번 이전의 사람들에게 '호출과 메시지'는 서로 간의 인정이었다. 그러나 학부제 이후 3연이 깨지는 계기가 되고, 그 이후의 젊은이들에게 가장 중요한 건 '3연'이 아닌, '얇고 넓은 인맥'이 되었다. 


약간의 발은 걸쳐놓되 결코 깊게 관여되지 않으며

언제라도 본인이 생각한 기회라고 여겨지면

관계를 뒤집어도 죄책감이 느껴지지 않기 위한

심리적 장치를 많이도 씌워 놓은 그런 인맥 관리

카톡 속에 숨겨놓은 숨김친구와 차단친구가 널뛰는 세상에서

얇은 거미줄 마냥 관계를 희박하게 만들고

외로움도 Benefit이라며 자기위안을 하시는 젊은이들이

약간 안쓰럽다. 물론 꼰대들은 더 안쓰럽지만 말이다. 


#2. 나는 누군가에게 스팸일수도 있다고 생각하며 살자

상처를 덜 받기 위해서는 관계 설정의 아주 명확한 레벨링이 필요하다.

예전에는 공적관계와 사적관계 정도로 나뉘어졌던 것 같은데...

이젠 공사에 무관하게 세분화되고 있다. 


이메일 관계

메시지 관계

카톡 관계

페메관계

인스타 디엠 관계

리트윗 관계

통화 관계

커피 관계

점심 식사 관계

저녁 식사 관계

취미 공유 관계

술자리 관계


파트너 관계

동거 관계

결혼 관계

이혼 관계

별거 관계

헉.


관계 레벨의 세분화는 한도 끝도 없이 길어진다. 

너무 많다. 레벨과 옵션이 많아지는 걸 보면 관계가 얼마나 희박한지를 더 느끼게 해주는 것 같다. 

깨닫고 살면 될 듯 하다.


나 스스로는 어쩌면 '네이버 AI 상품 추천'보다도 더 별로인 Spam 중 하나일 가능성은 항상 존재한다는 것을 깨닫는게 현대를 살아가는 者의 숙명이 된 듯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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