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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Damien We Dec 21. 2021


감정을 구독하면서

당신의 감정조절 비용은 월 몇 만원? 

전 OTT 중독자입니다. 사실 Netflix, Disney Plus, Watcha, Youtube Premium 등 다양한 종류의 카테고리 서비스를 구독하고 있습니다. 구독이라는 것은 아무리 생각해봐도 어지간히 그 서비스 Provider에게 만족하지 않는 이상 불가능한 서비스라고 생각하고 있었는데 어느 순간부터 구독 신청과 해지가 자유로워지면서 족쇄에 묶이는 듯한 느낌이 파괴되었습니다. 이에 어느 것을 구독하던 사실 상 부담이 없어지게 되었지요. 


"아 자유롭다"라고 생각했었지요. 영화 한편 값으로 한달 간 이것저것을 볼 수 있으니까요. 그런데 어느 순간부터 "아 본전은 뽑아야하는데..."라는 생각이 들기 시작했고, 그러다보니 내가 좋아하는 취향 (물론 일정 기간이 지나면 취향이 계속 바뀐다는 문제가 있지만)에 맞는 컨텐츠를 끈임없이 소비하게 되더라구요. 예전에는 컨텐츠는 뭔가 배울 점이 있는 꺼리였는데 '킬링타임용'이라는 말이 떠돌기 시작한 이후부터 자꾸 '컨텐츠 소비'라는 말을 쓰게 됩니다. 이또한 속에 숨어있는 맥락이 있겠지요. 철학이 부재한 세상의 자극적인 상상과 망상이 우리의 감정에서 결여된 부분을 채워준다는 이상한 공식이 내재화되어가는 듯 합니다. 


현실이 괴로워지던 올해 초 '저는 고어물'에 빠지기 시작했습니다. 유전/미드소마/지퍼스크리퍼스/롱턴 등 수많은 미친듯이 암울하고 뒤틀린 이야기만을 보았죠. 맥락은 이런 듯 합니다. 내 현실이 괴로우나, 저 만큼은 아니다라고 아주 직관적으로 생각하게 해주는 컨텐츠라는 것이죠. 특히나 나와는 무관하다는 듯한 나레이터의 목소리에서 쾌감을 느낍니다. 기무리뷰를 보시길...ㅋㅋ 결국 전 이 컨텐츠를 통해 무엇을 배운게 아닙니다. 그냥 결여된 감정을 보충하자는 명분 아래 스트레스 해소용 이야기를 소비하고 있었던 것 뿐입니다. 


스위트홈, 오징어 게임에 이어 '지옥'이 방영했을 때는 이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아...현실이 지옥인데, 내가 돈까지 내어가면서 지옥을 봐야하나?" 뭐. 그래도 한방에 다 봤죠. 뭘까요? 내 안에서 벌어지는 이 지독할 정도로 멈출 수 없는 컨텐츠 중독. 마치 최신 트렌드 컨텐츠에 민감한 듯한 나 자신의 이미지를 즐기면서, 젊은 층과 취향이 비슷하다는 자부감으로 마스터베이션을 하는 듯 한 오십대 아저씨의 컨텐츠 중독. 


어찌 보면 미성숙의 증거일수도 있고, 달리 보면 날선 감각이라고 자부를 할 수도 있겠습니다. 하지만 딱 하나 진심으로 느끼고 있는 것은 컨텐츠를 소비하는 다양한 동기가 있겠으나, 결과적으로는 자극적인 것을 찾지 않고는 배기지 못하는 깨끗하지 못한 의식을 가지고 있다는 점입니다. 쉽게 결생하고, 집착하고 반복하는 업을 지속합니다. 교훈도 명언도 하루 종일 듣다보면 잡음이 되는게 현실입니다. 결국 아무리 스스로를 위안해보아도 뭔가에 중독된다는 것에 사실 상 좋은 것은 없는 거지요. 


결국 저는 제 감정도 돈내고 구독하고 있었다는 이상한 종류의 깨달음을 얻는 하루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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