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장 : 착한 아이 증후군(Good boy syndrome)
착한 아이 증후군(Good boy syndrome)
어른이 되어서도 자신의 감정을 솔직하게 표현하지 못하고, 타인에게 잘 보이기 위해 욕구나 소망을 억압하며 남의 생각대로 움직이는 증후군이다. 베르테르처럼 따르는 사람이 자살하면 자신도 자살할 거 같고, 밴드왜건처럼 다수가 예스라고 하니까 분명히 아닌데 자신도 예스라고 외치는 그들. 그렇다! 내가 무려 직장생활 최악의 동료 TOP1으로 뽑는 '예스맨'의 이야기다.
저도 짜장면이요!
상사가 직원들에게 점심을 사 줄 테니 뭐 먹고 싶냐는 질문에, 상사는 짜장면을 시키면 직원들도 따라 시키는 유명한 꼰대 비난 풍자가 있다. 여기서 만약 누군가가 다른 메뉴를 시키면 동료들이 눈치 타령하며 귓속말로 면박을 준다. 다른 메뉴를 시켰던 직원은 어리둥절이다. 그리고 이 장면을 TV로 보는 3자들은 소파에 누워 치킨을 뜯으며 공감이란 표현 아래 상사를 향해 이렇게 이야기한다. '어우 개꼰대~ 개극혐!'
실제로는 상사의 뇌가 안쓰럽게 된 악질이 아닌 경우라면, 그냥 그는 자신의 허기를 달래 줄 좋아하는 메뉴를 시킨 것뿐이다. 지레 겁을 먹고 착한 아이가 되고 예스맨이 되어버린 건 직원들 아닌가? 가벼운 소재인 음식으로 예를 들었지만, '전 탕짜면이요!'라고 했을 때 상사가 '오늘은 짜장면 먹자'라고 하던지, '그래 먹고 싶은 거 먹어'라고 하던지, 되든 안되든 충분히 피드백을 받을 수도 있는 건데 본인 먹고 싶은 것도 표현 못 하면서 순수한 마음이었던 상사를 뒤에서 까내리는 사람들을 가장 멀리한다.
우리는 힘없는 아랫사람은 늘 정의롭고, 힘 있는 윗사람은 슈퍼 빌런처럼 취급하는 경우가 많다. 그들이 주도권을 쥐고 있기에 마음대로 할 수 없는 아랫사람은 뒤에서 윗사람을 욕하고 자기들 나름의 방식으로 풍자를 통해 문화를 만들어 간다. 오늘날 꼰대 문화를 제대로 꽃 피웠다. 자기가 네네충인걸 인지하지 못한 채.
일을 막으려다 일을 벌이는 예스맨들
"예스는 서약 따위 의무감이 아닌 진정한 마음에서 우러나오는 거야. 결국엔 진심에서 우러나온 예스가 널 변화시키는 거고." - 영화 '예스맨' 명대사
Yes or No는 선택이다. 그리고 선택은 책임이다. 그러나 직장 생활에서 예스는 아이러니하게도 책임을 회피하기 위한 수단으로 쓰인다. 대체제 또는 대체할 고객이 많아졌기에 돈을 쥐고 있는 사람이 갑이라는 생각은 이제 옛 문화가 되어버렸다. 서로가 각자 원하는 걸 얻을 뿐이다. 그러나, 내가 속한 업계인 광고대행사의 경우는 클라이언트가 계약을 끊게 되면 당장의 밥줄이 끊기기 때문에, 클라이언트가 현실적으로 갑자기 계약을 끊을 수는 없지만 광고대행사는 클라이언트와 계약이 종료된 이후에도 다시 계약할 여지를 만들기 위해 어쩔 수 없이 을의 자세를 취하게 된다. 때문에 과거 유행어 '누구든 작은 하마를 건들면 아주 X 되는 거야' 말 따나 클라이언트의 심기를 불편하게 만들 논쟁을 피하는 담당자들이 많다.
"우리 이런 거 해보면 어때요? 준비해보시죠"
"알겠습니다!"
"근데 시간이 없으니까 내일까지 제안 부탁드려요"
"알겠습니다..."
"이게 전부예요? 하... 이건 제가 말씀드린 그대로인데? 이럴 거면 제가 쓰죠? 담당자님... 다시 제안 주세요"
"네..."
"아 정말... 그 광고대행사는 아이디어가 없어요? 일단 이 건은 잠시 보류할게요"
"그렇군요. 알겠습니다."
"이거 성과가 영 아닌데요? 플랜B로 가야겠네요. 어떻게 할지 생각해볼 테니 준비 부탁드려요"
"(아놔...) 알겠습니다."
위 이야기는 클라이언트와 광고대행사 사이에서 왕왕 있는 일이다. 화자 없이 들으면 누가 광고대행사 사람일까? 요청과 조달의 관계 시점으로 보면 '네'만 연발하는 화자가 광고대행사 사람이지만, 역할 시점으로 보면 스케줄링과 방안을 제시하는 화자가 왠지 더 광고대행사 사람 같다. 실제로 이렇게 책임감을 가지고 일을 하는 사람은 클라이언트고, 시다바리 역할만 하는 광고대행사 담당자가 수두룩하다. 클라이언트는 그런 광고대행사 사람들을 욕할 때 '광고공무원'이라고 부른다. 이런 사달이 났다는 건 아이디어, 인사이트 그리고 팩트를 장착해야 하는 맨파워 힘으로 움직이는 광고대행사에게 여러모로 치명적인 상처다. 매니지먼트를 못했음에도 뒤에 가서 광고주가 괴롭힌다, 광고주가 멍청하다 하면서 뒷담까지 한다. 자기 얼굴에 침 뱉기.
모든 일은 유기적으로 얽히고설켜 첫 단추를 어떻게 맸는지에 따라 기하급수적으로 나비효과가 온다. 안 그래도 바빠 죽겠는데 광고주가 갑자기 새로운 일을 시키면 당연히 사람이니까 스트레스를 받을 수밖에 없다. 안 할 수는 없기에 공장처럼 찍어서 쳐내거나 최대한 일을 벌이지 않으려 예스맨이 된다. 그러나 이런 식으로 첫 단추를 맸을 때 적어도 내 경험상 단 한 번도 평화를 맞이한 적이 없다.
그들도 사람이야. 대화를 하세요.
어떤 일에 있어 그 시작은 그것에 대한 필요성을 느끼는 대상에게서부터 시작한다. 여러 제안 중 필요성을 느끼는 클라이언트일 수도 있고, 회사의 대표나 본부장, 팀장, 팀원 그리고 자신일 수도 있다. 자신이 어떤 옷가게에 들렸다고 가정해보자.
ex 1 : 사고자 하는 옷이 있고 이미 사이즈도 다 알아봤다.
그러나 옷가게 직원이 그 옷은 그렇게 입는 핏이 아니라며 사이즈를 추천해준다. 추천 사이즈로 살까, 그냥 알아본 사이즈로 살까, 본인 선택만이 남았다.
직장에서 특정 자료를 모아달란 경우로 볼 수 있다.(안 알아보고 그냥 요청하는 경우는 태반이지만) 그런데 그 특정이 자신이 생각해왔던 것과 다른 인사이트였고, 실제로 알아보니 자신의 생각이 더 가까운 주제였다. 그럼 가서 그 사람한테 이야기하면 된다. 고집을 부릴지 팩트에 납득할지는 그 사람의 몫이다.
ex 2 : 마음에 드는 옷이 있는지 찾아보고자 한다.
옷가게 직원이 어떤 스타일을 선호하냐는 질문에 스트릿을 좋아한다고 하니 관련 옷을 추천해준다. 하의는 마음에 들어 샀지만, 상의는 댄디한 스타일이 좋을 것 같다고 했다. 그러자 옷가게 직원이 요즘 미스매치가 유행이라며 도전해보시라 권유했고, 정 어색하면 댄디하지만 스트릿 핏인 다른 상의를 제안했다. 본인 선택만이 남았다.
직장에서 새로운 무언가에 대해 제시하는 경우로 볼 수 있다. 기존 선호된 카테고리로 제안하는 것이 가장 안전하지만, 크게 벗어나지 않는 선이라면 혹은 조화가 가능하다면 트렌드의 물결을 따른 플랜B, 플랜C도 제안해보자. 물론, 새로움이란 단어로 시작했지만 관성 때문에 기존처럼 가는 경우가 허다하다. 하지만 새로운 컨셉을 충분히 검토할 수 있는 계기는 되었을 것이다.
우리는 매 순간 직장생활에서 누군가를 케어해야 되는 서비스직이라고 볼 수 있다. 눈치나 살피며 굽신거리는 처세술이 아니라, 고객의 만족도를 높이기 위해서, 좋은 결과물을 만들기 위해서, 내 커리어와 연봉을 위해서 실제로 서비스직에 종사하는 분들처럼 대화하고 또 대화하는 커뮤니케이션 능력을 쌓아야 한다. 무엇을 하든 끊임없이 추천을 받고 추천을 하고 심지어 0과 1밖에 모르는 컴퓨터도, 광고도 맞춤 추천을 하는데 왜 일은 항상 요청자의 말만 따라하는 앵무새가 되냐 이 말이다. 위치와 선택의 책임은 항상 강조해도 모자라지 않다.
맨투맨 커뮤니케이션
예스맨이 될 수밖에 없는 현실은 너무나 잘 알고 있다. 철저히 시키는 대로만 해야 되는 경우나 항상 빠듯한 일정으로 돌아가면 생각과 시간은 사치가 된다. 그래 놓고 왜 시키는 데로만 하냐며 어처구니없는 쓴소리도 듣는다. 누구든 사람은 상대 입장을 100% 이해하지 못하니 이런 사람을 만났다면 절대로 저런 건 되지 말아야지 하는 멘토로 삼고 넘어가자. 그리고 내 대화법을 돌이켜 보는 것에 집중하자. 혹시 길들여져 학습되어 내가 먼저 저자세를 취했던 건 아닌지. 그러지 않으려면 당당한 자세와 내용의 요점을 파악하는 것이 중요하다.
예스맨이 되는 주된 이유 중 하나가 데드라인인데, 데드라인의 압박이야 말로 최고의 스트레스라 할 수 있다. 한 경험담으로 클라이언트가 오후 6시에 전화 와서 갑자기 생각났다며 일을 요청했던 적이 있다. 나는 그 일에 대해 내일 알아보고 늦어도 모레 오전에 전달하겠다고 답했다. 그러자 클라이언트는 단지 갑자기 생각나 연락한 거라며 그렇게 해달라 하며 대화는 종료됐다. 팩트만 가지고 이야기했고 대화에 함축적으로 담아져 있다. 6시가 지났다는 점. 그래서 같이 그 업무를 돌봐줄 개발자와 디자이너가 퇴근했거나 퇴근해야 한다는 점. 따라서 내일 작업해서 모레까지 전달하겠다는 점. 너가 시간을 말 안 해줘서 내가 친히 스케줄링을 해줬다는 점. 그리고 넌 그냥 갑자기 생각이 난 거라 제안의 여유가 있다는 점이다. 사람의 탈을 쓴 악마가 아니라면 팩트와 인격존중은 건들지 못한다. 하지만, 저자세에 학습되면 '갑자기'란 말이 바로 처리해야 되는 일인 마냥 종말처럼 들릴 것이다. 따라서 잘못 받아들여 야근을 하게 되고, 심한 경우 이해관계가 얽힌 타 부서 사람들까지 야근 또는 주말 작업을 강요하게 된다.
정말 그 일이 바쁜지 아닌지는 요청자가 데드라인을 말했는지 안 했는지를 보면 된다. 십중팔구 급하면 먼저 데드라인을 이야기한다. 말 안 하고 나중에 성질부리면 '데드라인 말 안 했잖아요? 저흰 한 이틀 후에 보내드리려고 열심히 알아보고 있는 중인데... 중구형 거 말이 너무 심한 거 아니오?' 식으로 섭섭한 티를 내자. 닭이냐 달걀이냐 문제 가지고 성질부리는 건 본인 얼굴에 침 뱉는 것이기에 본인이 데드라인 이야기 안 한 것에 책임을 느끼며 수그러 질 것이다. 중요한 건 준비는 하고 있어야 한다. 그래야 떳떳하게 이야기할 수 있다.
적어도 나에게 예스맨은 No나 다른 방안을 제시할 수 있는 능력과 위치의 책임을 회피하겠다는 무능력의 상징이다. 그렇다고 No를 외치자라고 이 글을 쓴 건 절대 아니다. No'만' 외치는 건 똑같은 부류다. 일을 정말 완만하게 처리하고 싶다면, 후폭풍을 감지할 줄 알고 첫 단추의 중요성을 안다면, 이래나 저래나 어차피 책임은 돌아오게 돼있다는 것을 안다면 모두가 다 알고 있고 말하고 싶었던 마음속에 있는 이야기를 그 대상에게 하면 된다. 당신의 마음속에 항상 있던 '아 이건 좀 아닌데? 이게 낫지 않나?'를 끄집어내기만 하면 된다! 일 처리는 예스맨의 저자세가 아닌, 동등한 위치에서 함께 처리해가는 전담 마크 맨투맨일 때 훨씬 효율적이다.
이해관계란 건 정말 어마 무시하게 무섭다. 한 번 지면 계속 져줘야 한다. 연봉협상도. 싫지 않은가? 당신 같은 사람이 설마 내부 정치를 할 건 아닐 텐데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