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린북, Green Book>
누군가를 의도적으로 차별해본 기억은 없다. 어떤 사람이 싫고, 마음에 들지 않고, 불편한 사람이 있었던 적은 누구나 있지 않을까. 그러나 그렇다고 겉으로 티를 내보진 않았다. 타인에게 상처를 주는 것은 도덕적으로 잘못되었다고 믿고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저 티 내지 않고 의식하지 않았다.
영화 <그린북>은 내 생각에 흠을 냈다. 평범하게 일상적으로 사람을 대하면서도 차별을 일삼을 수 있다는 불편한 메시지로 말이다. 주로 인종차별을 다루면서 그 외 다른 종류의 많은 차별들에 대해 지적한다. 영화 <겟 아웃>처럼 백인과 흑인의 극명한 구분은 하지 않는다. <그린북> 속 소외된 인종들은 끊임없이 대다수의 사람들과 어울리며 평범해지길 원하지만 보이지 않는 벽에 부딪힌다. 아주 평범한 사람들에 의해서.
뉴욕 나이트클럽의 이탈리아계 해결사 토니(비고 모르텐슨)와 아프리카계 천재 피아니스트 닥터 셜리(마허샬라 알리)도 마주칠 일이 결코 없어 보이는 상극이지만, 닥터 셜리가 남부 도시 투어의 수행 기사 겸 경호원으로 토니를 고용하면서 8주간 길동무가 된다.
<그린북>은 제91회 미국 아카데미 시상식의 유력한 후보다. 아직 후보가 발표되진 않았지만, 많은 언론들이 그렇게 언급하고 있다. 지난 11월 전미비평가협회(NBR)로부터 올해의 영화로 선정됐고 이 작품에 출연한 비고 모르텐센은 최우수 남우주연으로 뽑혔다. 피터 파렐리 감독이 만든 이 작품은 제22회 할리우드 영화제 각본상, 제27회 보스턴 영화제 최고의 영화상, 캐나다의 토론토 영화제에서 관객상을 받은 데 이어 NBR에서도 뜨거운 박수를 받았다. 감독은 영화 <덤 앤 더머>, <메리에겐 뭔가 특별한 것이 있다> 등에서 보여줬던 코미디를 <그린북>에서도 유감없이 발휘했다. 전문가들의 극찬을 넘어 인종과 관련된 사회적 문제를 유쾌하게 다루며 관객들에게도 호평받고 있다.
난 평생을 그런 대접을 받았는데,
당신은 하룻밤도 못 참아?
<그린북>은 1962년 미국의 상황을 적나라하게 보여준다. 1962년은 흑인들에 대한 인종차별이 아직도 공공연히 행해지고 있던 시절이다. 흑인들은 그들이 접근해도 안전한 지역을 안내해주는 가이드북을 만들어 지참하고 다녔다. 영화 제목은 '그린북'이라 불린 'The Negro Motorist Green Book'이라는 1936년부터 1966년까지 매년 발간된 가이드북을 따랐다. 말 그대로 책의 존재 자체가 차별인 셈이다.
주인공인 토니는 인종차별주의자다. 주방 싱크대를 고치러 온 기술자들이 마신 컵을 쓰레기통에 버리는가 하면 차별적 발언을 서슴지 않는다. 닥터 셜리는 아프리카계 천재 피아니스트지만 백인과는 다른 대우를 받는다. 화장실을 백인과 함께 쓸 수 없으며, 초대받은 레스토랑에서 조차 식사를 할 수 없다. 셜리는 이러한 백인들이 만든 규정에 조금도 반발하지 않고 받아들인다. 오히려 토니의 불만이 더 쌓여간다. 가족의 생계를 위해 셜리의 운전기사가 된 토니는 자신은 전혀 경험하지 못했던 차별에 충격받고 폭행을 가하는 일까지 벌어진다. 그런 토니를 보며 셜리는 “난 평생을 그런 대접을 받았는데, 당신은 하룻밤도 못 참아?”라며 역정을 내는 장면은 씁쓸하기 그지없다.
차별은 의도가 아니라 태도라고나 할까. 셜리가 뛰어난 피아니스트라는 것은 영화 속 그 누구도 부정하지 않는다. 그저 흑인이니까 화장실을 함께 쓰지 못하고, 식사를 같은 공간에서 할 수 없는 것이다.뛰어난 실력과 인종은 별개의 문제로 치부된다. 마치 지능이 높은 원숭이를 대하는 듯 보인다. 이는 단순히 인종에 국한된 이야기가 아니다. 조선시대에 갑오개혁(1894) 이후 신분제가 폐지됐음에도 백정들에 대한 차별이 사라지지 않은 것과 비슷한 모습이다. 인간을 사이에 심리적 계급이 존재하여 의도와 관계없이 차별당하는 일은 역사적으로 빈번했다. 셜리에게도 공연 투어 중에 일어나는 차별은 빈번한 상황이었다. 부조리한 차별 앞에 주먹부터 앞서는 토니를 보며 셜리는 이렇게 말한다.
폭력으론 이길 수 없어,
자존감을 지키는 게
이기는 거야
<그린북>은 이러한 문제를 유쾌하게 다룬다. 토니는 거친 비속어를 자주 쓰고 유행하는 대중음악을 듣고 치킨을 즐긴다. 반면 셜리는 점잖고 우아한 클래식만 듣는다. 8주간의 투어로 두 사람은 서로를 이해하고 서로의 취향을 경험하며 우정을 쌓는다. 코미디를 잘 다루는 파렐리 감독은 이 과정을 유머로 가득 채웠다. 토니의 반강제(?)적인 행동으로 셜리가 생애 첫 치킨을 처음 먹는 모습이 그렇다. 서로 다른 취향의 사람이 공감할 때 생기는 웃음이랄까. 글을 잘 모르는 토니가 셜리의 가르침으로 아내에게 사랑 넘치는 편지를 쓰는 장면 역시 관객들 입가에 미소를 짓게 한다.
그러면서 중요한 메시지를 놓치지 않았다. 인종차별, 성소수자 차별, 경제적 차별, 문화적 차별 등 온갖 차별들이 결국 두 사람 모두를 억압하고 있다는 점을 보여주며 과연 무엇이 차별을 만드는지 고민하게 한다. 결국 <그린북>은 차별을 만나러 떠나는 투어를 그린 이야기다. 남부로 갈수록 인종에 대한 차별이 심하게 묘사되고 있다. 차별당할 것을 알면서 공연을 다니는 셜리를 토니는 “어떻게 저렇게 웃으며 악수를 할 수가 있지?”라며 이해하지 못한다. 이때 함께 공연하는 올레그(디미터 마리노브)는 토니에게 이렇게 말한다.
사람의 마음을 움직이려면
용기가 필요하니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