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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글쓰는 백구 Dec 14. 2016

우리는 잠시 기댈 바람이 필요할 뿐이야

영화 <나, 다니엘 블레이크> 리뷰(해석, 결말, 실화)

40년 이상 목수로 살아온 다니엘(데이브 존스)은 지병인 심장질환으로 인해 추락사할 뻔했다. 그 이후 의사 소견에 따라 일을 할 수 없는 상황이다. 실업급여를 받기 위해 관공서를 찾지만 복잡하고 관료적인 절차가 그를 가로막았다. 그는 같은 처지의 싱글맘 케이티(헤일리스 콰이어)를 만나 서로 도움을 주게 된다.





이 영화는 완벽하게 작가주의 영화이기 때문에 감독에 대한 이야기를 안 할 수가 없다.

영화 <나, 다니엘 블레이크>로 켄 로치 감독은 2016년 칸영화제에서 황금종려상을 수상했다. 2006년 아일랜드의 독립운동을 그린 영화 <보리밭을 흔드는 바람> 이후 10년 만이다. 이로써 그는 칸영화제에서 황금종려상을 2번 이상 받은 8번째 감독이자 만 80세로 최고령 수상자가 되었다. 그의 수상소감은 감동적이었다.


우리는 희망의 메시지를
사람들에게 보여줘야 한다.
우리는 다른 세상이
가능하다고 말해야만 한다.

켄 로치 감독은 확고한 정치 성향을 영화에서 그대로 표현한다. 사회를 비판하는 진보주의적 정치성향은 이번 영화에서도 쉽게 알 수 있다. 그의 1996년 작품인 영화 <랜드 앤 프리덤>에서 스페인 내전 당시 좌익계 민병대원들의 투쟁을 통해 정치적 지향점뿐만 아니라 ‘그들은 왜 실패했는가’를 여과 없이 보여준다. 이는 그가 정치적 성향은 분명하지만, 그 성향에 대해서 객관적으로 문제를 지적하고, 맹목적으로 지지하지 않는다는 것을 느끼게 해주는 대목이다.
여러 영화를 통해 켄 로치 감독은 인간의 존엄성을 위한 투쟁에 대해서 그렸다. 2000년 작품 영화 <빵과 장미>는 LA에서 실제 있었던 환경미화원 노조 결성에 관한 이야기를 다뤘다. 제목만으로 그의 생각을 알 수 있다. ‘인간에게 필요한 것은 빵과 장미다.’ 빵은 먹을 것, 장미는 존엄성을 상징한다. 켄 로치 감독은 한 기자회견에서 이렇게 말했다.


‘가난함은 너의 잘못이야’라고 말하는
우리의 잔인함이 문제다.

켄 로치 감독은 영화의 사회적인 부분과 연결고리가 있는 배우를 캐스팅하는 경우가 많다. 영화의 주인공 다니엘 블레이크 역할을 맡은 데이브 존스는 실제로는 스탠드업 코미디언이다. 감독은 스탠드업 코미디언이라는 직업 자체가 노동자 계층을 대변한다고 말한다. 자신이나 이웃의 삶을 소재로 웃음을 만드는데 그 삶이 대부분 노동자에 대한 것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의 아버지는 실제로 목수였다. 감독은 그가 목수로 살아온 주인공 다니엘을 잘 이해하는 배우라고 생각한 것이다. 케이티 역할을 맡은 헤일리 스콰이어도 역시 노동자 계층으로 살아온 경험을 이유로 캐스팅에 되었다고 한다.





영화의 배경은 과거 공업화로 활발하게 성장했지만, 점차 쇠락해가는 영국 북동부 도시 ‘뉴캐슬’이다. 이러한 설정은 변화하는 환경에서 다니엘이 무능력해져 가는 모습을 보여주기 위함이다. 가스비를 못내 난방을 못하는 케이티의 집을 위해 창문에 뽁뽁이를 붙이고, 촛불을 켜고 화분을 덮는 아날로그적인 방식으로 방을 따뜻하게 만들어준다. 다니엘은 아날로그 환경에서 가장 유능한 사람이다. 그러나 다니엘은 원칙 중심의 제도화된 환경을 비인간적으로 느끼고 무기력해진다. 그럼에도 다니엘은 공무원에게 이렇게 말한다.


사람이 자존심을 잃으면 다 잃는 거요.


첫 장면부터 답답하고 이 상황이 얼마나 터무니없는지 보여준다. 영화는 암전된 화면에 다니엘과 한 공무원의 대화로 시작한다. 자신이 심장질환으로 아프다는 것을 증명하기 위해 오로지 원칙만을 내세우는 공무원의 쓸데없는 질문에 답변을 하는 장면이다. 영화 곳곳에서 암전 되는 부분이 있다. 컴퓨터 사용을 못하는 다니엘이 끙끙대는 장면에서도 잠시 암전이 됐다가 다시 그를 보여준다. 주인공이 답답한 상태이고 그 상황이 모순될 때 주로 암전이라는 방식이 활용되었다.

암전 외에도 클로즈업이나 미디엄쇼트 위주로 답답함을 표현했다. 주인공들의 상황이 좁은 카메라 샷처럼 갑갑하지만, 그럼에도 그 좁은 공간에서 마음대로 벗어날 수 없는 처지라는 것을 촬영 방식으로도 보여주고 있다.

켄 로치 감독은 관료주의에 대한 분노로 이 영화를 만들었다고 밝혔다. 영화는 관료주의를 정면으로 비판한다. 그것도 아주 노골적으로. 사회 약자를 위해서 만들어진 복지제도이지만, 정작 필요한 사람들이 절차적인 문제로 적용대상자에 포함되지 못한다.

실업급여가 나오지 않는다는 우편통보를 받은 다니엘은 전화를 통해 문의를 하려 한다. 그러나 기계적인 답변만 올뿐, 해결되지 않는다. 관공서에 직접 찾아가 봤지만, 돌아오는 말은 ‘온라인으로 신청하라’라는 말뿐이다.

노숙자 쉼터를 전전하다 뉴캐슬로 이사 온 케이티는 기본적인 생활도 유지하기도 어려운 상태다. 정부로부터 생계를 위한 지원금을 받고자 했지만, 신청을 할 수 있는 시간 안에 도착하지 못해 좌절하고 만다.


우리한테는 잠시 기댈 바람이 필요할 뿐이야


가난한 사람들을 위한 푸드뱅크는 원칙과 절차를 중요시하는 관공서와 명확하게 대비된다. 관공서에서는 5분만 늦어도, 조금만 불만을 제기해도 제재를 받고 쫓겨나기 일쑤지만, 푸드뱅크에서는 식료품을 무료로 지원받음에도 그것을 ‘쇼핑’이라 표현하고 일일이 물건을 장바구니에 담아준다. 푸드뱅크와 관공서는 인간적인 것과 비인간적인 것을 상징하는 공간이다. 이를 통해 관료주의가 얼마나 인간의 존엄성을 파괴하는지 보여준다.


메시지는 명확히 전달하지만, 영화적으로 중요한 장면에서는 설명을 생략하는 방식으로 표현했다. 다니엘은 우연히 만난 케이티를 왜 도와주는가. 마트의 매니저는 생리대를 훔친 케이티를 왜 그냥 보내주는가. 설명하지 않는다. 인간이 인간을 도와주는 데에 거대한 명분이 필요하지 않다는 것이다. 결국 생략을 통해서 말하고자 하는 것도 인간의 존엄성이라는 것을 알 수 있다.


푸트뱅크 장면에서도 나오는 대사지만, 감독이 케이티를 만난다면 이렇게 말할 것 같다.


그건 네 잘못이 아니야

가장 핵심적인 장면은 다니엘이 관공서 외벽에 스프레이로 자신의 주장을 쓰는 장면이다. ‘나, 다니엘 블레이크는...’으로 시작하는 이 문장의 형식은 주로 공적인 글을 쓸 때 사용하는 방식이다. 결국 영화의 제목은 이 영화가 복지에 대해서 어떤 관점을 갖고 있는지 보여준다. 복지제도는 정부가 특별히 베풀어주는 것이 아니라 국민이라면 마땅히 누려야 할 권리라는 것이다.


나는 다니엘 블레이크,
개가 아니라 인간입니다.
이에 나는 내 권리를 요구합니다.
인간적인 존중을 요구합니다.
나, 다니엘 블레이크는 한 사람의 시민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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