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의 이름은. your name. 君の名は。>
그 사람을 생각하며 잠들었기 때문에
꿈에 나온 걸까,
꿈인 걸 알았다면 깨지 않았을 것을
신카이 마코토 감독은 일본의 고전 와카(일본 전통 시)를 모은 만요슈(일본의 나라 시대에 만들어진 시 모음집)에 실린 위 구절을 보고 작품의 세계관을 만들어냈다고 한다.
이토모리라는 시골 마을에 살고 있는 소녀 '미츠하'는 도쿄에 있는 한 소년 '타키'와 몸이 바뀌는 꿈을 꾼다. 타키 역시 미츠하의 몸속으로 들어가는 꿈을 꾼다. 꿈속 세계를 경험하던 둘은 그것이 지속적으로 반복되면서 결국 꿈이 아니란 사실을 깨닫는다. 서로를 위한 룰을 만들고 궁금증을 기록해가며 소통을 하던 두 사람은 상대를 만나기 위해 적극적으로 움직이기 시작한다.
일본 애니메이션 영화 <너의 이름은.>은 일본에서 현재까지 1600만 명 이상의 관객을 동원하며 일본 역대 영화 흥행 수입 4위(약 213억 엔)를 기록하고 있다. 최근 국내에서 일본 영화는 우선 투자대상이 아니었다. 한국영화의 위상이 높아진 것도 있지만, 대부분 일본 영화 속 정서가 우리나라 대중들에게 매력적으로 느껴지지 못했기 때문이다. 이런 기류에서 드물게 <너의 이름은.>은 큰 관심을 불러일으키고 있는 화제작이다.
신카이 마코토 감독은 빛을 잘 활용한다. 영화 초반부터 끝까지 하늘을 가르는 혜성의 신비로움과 마법의 시간이라 불리는 황혼의 아름다움, 어두운 밤에 비치는 서정적인 달빛의 황홀함 등 감독의 매력이 풀풀 넘친다. 스토리가 가진 힘이 큰 영화지만, 인물들을 둘러싼 배경을 보는 것만으로도 전혀 지루하지 않은 영화다.
영화에서는 여러 장면을 통해 ‘달’이 배경으로 쓰인다. ‘달’은 두 사람의 관계를 상징적으로 표현한다. 타키와 미츠하가 함께 있을 때는 보름달이지만, 미츠하의 시간이 멈춘 때에는 반달이다. 자세히 살펴보면, 오프닝에서 보름달이 나타나고 그 아래에 두 사람은 나란히 서있다. 오쿠데라(타키가 알바하는 식당의 상사)와의 데이트가 끝나고 타키는 미츠하에게 전화를 건다. 그러나 연결되지 않는다. 이 장면에서도 달이 등장하는 데, 전신주의 전선이 달을 이등분하여 둘의 관계가 단절되었음을 보여준다. 타키가 더 이상 미츠하와 영혼이 바뀌지 않게 되었을 때, 밤하늘의 달은 반달이다.
영화 속에 등장하는 ‘쿠치카미자케’는 쌀과 같은 곡물 등을 입에 넣고 씹은 뒤, 도로 뱉어내서 모은 것을 발효시켜 만드는 술이다. 주로 여인이 만들었다 하여 ‘미인주’라고도 불린다. 감독이 이 술을 영화 속에 넣은 이유는 ‘간접키스’ 같은 느낌을 주기 위해서라고 밝혔다. 초등학생 시절 좋아하는 여자아이의 리코더를 연주할 때의 느낌과 비슷하다고 말했다. '10대 남자아이들의 성적 취향 중에 좋아하는 이성의 타액이 포함되는 게 아닐까' 라는 생각으로 이 술을 넣었다고 한다. 실제 영화에서 타키는 미츠하가 만든 술을 마시고, 그 사실을 알게 된 미츠하는 부끄러워하는 장면이 나온다.
감독의 이전 영화와는 다르게 대중적인 요소가 많다. 초반부의 유머는 10대들을 영화 끝까지 앉혀두기 위한 장치다. 중반이 넘어가면 미츠하와 타키의 몸이 바뀌는 설정을 활용하여 감독이 하고자 하는 메시지에 집중한다.
감독은 동일본 대지진을 겪으면서 상처 입은 일본 사람들을 이 작품을 통해 치유하려고 한다. 그리고 10대와 20대 모두 함께 볼 수 있는 영화를 만들고자 하는 마음에서 가벼운 유머들을 이전 작품보다 더 등장시켰다.
2011년 3월 동일본 대지진은 2만 명의 사망자를 낸 끔찍한 재난이었다. <너의 이름은.> 의 흥행은 재난의 아픔을 어루만진다는 점에 기인한다. 불가항력적인 사건을 맞닥뜨리지만, 간절한 마음으로 아픔을 극복한다는 이야기를 통해 일본 국민들을 위로하는 것이다. 동일본 대지진에 대해 감독은 이렇게 말했다.
'그런 일이 벌어지지 않았더라면,
그들이 살아있다면' 하는 생각을 했다.
그때의 경험을 통해서 우리가
행복해지기를 바라는 바람이나 기도,
이런 것들을 영화에 담고 싶었다.
영화 속에서 마을 사람들을 구하려는 미츠하와 친구들의 모습을 보면, 실제 동일본 대지진 당시 작은 섬마을에서 최후까지 방송을 하다가 사망한 ‘엔도 미키'가 떠오른다. 일종의 일본인들의 PSTD(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와 같은 경험을 영화에 녹여내 과거의 아픔을 어루만진다. 최근 몇년 안에 국가적인 참사 혹은 재난을 몇 차례 겪은 우리나라 국민들도 공감 할 수 있는 부분이다. 이러한 관점에서 볼 때, 우리나라에서도 이 영화는 치유의 영화, 위로의 영화일 수 있다.
영화 말미에는 끊임없이 서로의 이름을 기억하려고 애쓴다. 시간이 흐를수록 그들을 맞이하는 것은 망각이다. 망각은 자연의 섭리지만, 기억이란 잊지 않으려는 자의 의지다. 영화 속 두 주인공은 끊임없이 서로의 이름을 묻는다. 결국 영화는 상처를 가진 사람들을 치유하는 방법은 서로의 이름을 다시 묻는 것이라 말한다. 그 힘은 잊지 않으려는 사람들의 의지에서 나온다. 의지에 대한 얘기로 감독은 인터뷰에서 이렇게 말했다.
기어이 삶을
획득하는 이야기여야만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