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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글쓰는 백구 Jun 04. 2017

사람이 맺어지는 데에 이유가 있으랴

<마카담 스토리 Asphalte>

관계는 불시착으로 시작한다


영화 속에서 일반적으로 현실에서는 일어날 수 없는 일이 우연하게 일어났을 때 우리는 ‘개연성이 없다’고 말한다. 이는 그 사건의 발단이 관객에게 설득력이 없다는 말이다. 개연성이 없는 영화는 몰입도를 떨어뜨리고 혹평을 받기 마련인데, 그럼에도 대놓고 개연성이 없게 만든 영화가 <마카담 스토리>다. 영화 <마카담 스토리>는 사람 간의 만남은 이해할 수 있는 범위에서 일어나는 일이 아니라고 말한다. 관계는 불시착처럼 의도치 않게 이유없이 시작한다는 이 영화는 수직적인 구조의 아파트에서 인물들이 수평적으로 눈을 맞출 때 벌어지는 일을 다룬다.


이야기 하나. 스테른 코비츠(구스타브 드 케르베른)는 불의의 사고로 휠체어를 타고 있지만, 아파트 엘리베이터 수리비를 내지 않아 엘리베이터를 탈 수 없다. 결국 밤에만 외출하게 된 스테른은 우연히 간호사로 일하는 한 여성(발레리아 브루니 테데스키)을 만난다. 스테른은 그녀에게 잘 보이기 위해 자신이 잘 나가는 포토그래퍼라고 소개한다.

이야기 둘. 옆 집에 새로 이사 온 여자가 궁금한 10대 소년 샬리(쥴 벤쉬트리)는그녀에게 말을 건다. 그녀는 왕년의 유명 여배우 ‘잔 메이어(이자벨 위페르)’지만 어린 샬리는 알리 없다. 그 둘은 잔이 출연한 영화를 함께 보기로 한다.

이야기 셋. 낡은 아파트 옥상에 불시착하게 된 나사 소속의 우주 비행사 존 매켄지. 도움을 받기 위해 우연히 방문한 집에는 알제리 출신의 ‘하미다’가 살고 있었다. 불어를 모르는 미국인 우주 비행사와 영어를 모르는 하미다는 함께 쿠스쿠스(아랍식 찌개) 저녁을 먹기로 한다.
낯설고 답답한 화면비율


요즘 영화는 대부분 2.35대 1이나 2.39대 1 비율이다. 스마트폰도 TV도 이와 비슷한 옆으로 누운 직사각형의 비율인 16대 9 정도로 생산된다. 이 숫자가 감각적으로 다가오지 않더라도 영화 <마카담 스토리>의 1.33대 1 비율을 만난다면 바로 답답함을 느낄 수 있다. 익숙하지 않기 때문에 상당히 좁게 느껴진다. 낯설기 때문에 실제 가로가 더 넓지만 정사각형을 넘어 세운 직사각형으로 보이기까지 한다. 이는 아파트라는 영화의 배경과 엘리베이터 문제, 우주에서 지구로 떨어지는 우주인 등과 같은 요소들이 수직적 감각을 자극하기 때문에 더 그렇다. 1.33대 1이라는 비율은 이러한 답답함과 함께 좁은 시야로 한 아파트의 세 가지 이야기를 보여주며 인간 누구에게나 내재된 ‘관음증’을 자극하기도 한다.


영화의 원제인 'Asphalte'는 외로운 인간을 대변한다. 고속도로 건축자재인 아스팔트는 누구나 지나갈 수 있고 수많은 사람들이 마주치지만 정을 나눌 시간을 단축시키며 역설적으로 인간들을 외롭게 만들었다. 영화 초반에는 허름한 아파트에 좁은 복도와 외로운 인물들이 연이어 등장한다. 1.33대 1의 비율 안에 끈질기에 한 사람만을 비추던 카메라는 영화가 시작한 지 23분이 지나서야 휠체어를 탄 스테른과 간호사를 한 화면에 담는다. 이 장면은 기존의 비율보다 두 사람이 상대적으로 가까운 위치에서 만나는 것으로 느끼게 한다. 이 순간 답답함이라는 느낌에서 두 사람의 관계 형성에 대한 기대감으로 관객의 감각을 이동시킨다. 낯선 사람과의 불편함과 새로운 사람과의 설렘이라는 이질적 감정은 두 사람이 좁은 프레임 안에 들어오면서 동시에 대면한다.


이 영화 외에도 좁은 비율을 활용한 영화 한 편이 있다. 프랑스의 젊은 천재 감독 '자비에 돌란'의 2014년작 영화 <마미>는 1대 1 비율을 활용한 이야기를 한 올씩 풀어나가며 호평을 받은 바 있다. 자비에 돌란은 이 영화에서 비율을 활용해 주인공의 심리상태를 표현했다. 이 영화의 1대 1 비율과 인물들의 갈등, 숨통이 턱 막힐 정도로 해결책이 보이지 않는 상황은 영화를 보다가 뛰쳐나가고 싶을 정도로 답답하고 스트레스를 준다. 그러다 후반부에 잠시 주인공이 팔을 활짝 펴는 순간, 화면비율 옆으로 넓어져 스크린을 끝까지 채우고 묘한 쾌감을 준다. 이처럼 화면 비율은 영화 속 인물들의 심리묘사에 활용되기도 한다.

외부를 둘러싼 껍데기보다는
우리가 느끼는 감정


영화 <마카담 스토리> 세 가지 이야기 속 6명의 인물들의 관계는 우연하게 만났지만 순수하지 않으며 오히려 혼탁하다. 스테른은 아파트 주민들 몰래 엘리베이터를 타기 위해 밤에 나섰다가 간호사를 만났다. 그리고 간호사에게 잘 보이기 위해 거짓으로 자신의 직업을 아주 잘 나가는 포토그래퍼로 소개했다. 10대 소년 샬리는 이사 온 과거에 잘 나간 여배우 ‘잔 메이어’를 현관 도어스코프를 통해 훔쳐보다 그녀가 나타나거나 도움이 필요할 때 문을 열고 나온다. 미국 NASA 소속 우주비행사 존 매켄지는 아파트 옥상에 불시착해 우연히 알제리 출신 ‘하미다’ 할머니를 만난다. 정치적으로 대립각을 세우는 미국과 아랍국가를 생각하면 이 두 사람의 만남이 편안하지만은 않다. 영화는 미국 성조기가 달린 우주복을 입은 사람과 아랍 출신 사람이 쿠스쿠스(아랍식 찌개)를 사이좋게 나눠먹으며 통하지 않는 언어로 대화하는 모습을 보여준다.


이들의 만남을 통해 우리는 몇 가지를 고민하게 된다. 남녀가 만나기 시작하는 이유, 이웃과 정을 나누는 계기, 다른 문화권의 사람과 대화를 하게 된 사연 등은 이런 질문을 만든다. 우리가 일반적으로 예상할 수 있는 일인가? 관계의 시작을 언제나 명확하게 설명할 수 있는가? 우리는 사람을 어떻게 만나서 관계를 갖는 것일까? 그러한 관계를 유지시키는 요소는 뭐지? 이 질문들을 모든 인류에 부합하도록 답할 수 있는 사람이 있을지 궁금하다.


스테른이 간호사에게 거짓말을 했다는 것을 알린다면, 소년 샬리가 옆집 사는 ‘잔 메이어’를 처음부터 훔쳐봤다는 것을 알게 된다면, 미국인 존 매켄지가 아랍 출신 하미다 할머니와 정치 이야기를 했다면, 이들의 관계는 어디로 흘러갈까. 영화 <마카담 스토리>는 겉을 둘러싸고 있는 것들이 인간의 감정을 이길 수 없다고 말한다. 관계에서 어떤 이유로 만났는지, 어떤 사람과 만났는지보다 더 중요한 것은 상대방과 공유하는 감정이라는 것이다. 영화 속 인물들의 관계에서 중요한 것은 앞서 가정한 외부를 둘러싼 껍데기가 아니라 그들이 나눈 감정이다.

 

낯선 사람과 만났다는 것은 사실 어두운 길 앞에 선 것과 같다. 앞이 보이지 않아 상대방의 대화가 어떤 방향으로 흘러갈지 예측할 수 없다. 이때 우리는 시험에 든다. 어둠을 피해 조금이라도 밝은 곳으로 향할 수 있고, 어둠 속으로 발을 내딛을 수도 있다. 가보지 않은 길에 갔을 때 그곳이 옳았다면 그곳이 어두울수록 지금까지의 삶에서 절대 느낄 수 없었던 위대한 빛을 만날 수 있다. 존 맥켄지는 “우주는 어떻게 생겼어?”라는 ‘하미다’ 할머니의 질문에 그림을 그려주며 성심성의껏 답변한다. 그러면서 ‘그리스인들 이야기’를 들려준다. 과거에 그리스인들은 밤하늘에 반짝거리는 별이 하늘에 난 구멍이라고 생각했다. 그 구멍을 통해 그리스의 신들이 인간들을 지켜본다는 것이다. 존은 이야기을 마치며 이렇게 말한다.


모든 어둠 뒤에는요,
위대한 빛이 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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