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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글쓰는 백구 Feb 15. 2017

처음엔 머리로, 나중엔 몸으로 기억한다.

영화 <이터널 선샤인 Eternal Sunshine> 리뷰, 해석

조엘(짐 케리)은 연인인 클레멘타인(케이트 윈슬렛)과 심하게 다퉜다. 뒤늦게 찾아가 사과하려 했지만 그녀는 그를 알아보지 못한다. 반복되는 다툼과 좁혀지지 않는 갈등에 지친 클레멘타인은 잊고 싶은 기억만을 지워주는 ‘라쿠나’라는 회사의 서비스를 받은 것이다. 그녀가 자신에 대한 추억을 모두 삭제했다는 사실에 화가 난 조엘 또한 기억을 지우려 한다.
<이터널 선샤인>의 원제는 ‘Eternal Sunshine of the Spotless Mind’다. 알렉산더 포프의 시 ‘Eloisa to Abelard’의 209번째 줄부터 나온 구절에서 따왔다. 영화 중 매리(커스틴 던스트)가 낭송하는 시이기도 하다.

이 영화의 감독인 미셸 공드리는 영화를 찍은 직후 여자 친구와 헤어졌다. 그녀에 대한 기억을 지우고 싶냐는 질문에 ‘처음엔 아니었는데, 시간이 흐를수록 그녀와 함께 할 수 없다는 것이 끔찍하게 느껴져 그러고 싶어 졌다.’라고 답했다.


미셸 공드리 감독은 특수효과를 적게 사용하는 것을 지향한다. 조엘이 기억 속에서 클레멘타인을 잊기 위해 그녀와 이 곳 저곳을 도망 다닌다. 그러던 중 자신의 어린 시절 기억 공간에 들어오는 장면이 있다. 그 어린 시절의 장면은 CG가 아니다. 초창기 영화 촬영기법을 응용한 것이다. 테이블의 크기를 뒤로 갈수록 커다랗게 제작했고, 가구들 역시 다 새롭게 만든 것이다. 조엘이 키가 작게 느껴지는 것은 옆에 냉장고가 약 3m이기 때문이다. 이러한 방식으로 조엘과 클레멘타인은 어린아이처럼 작게 보이는 착시효과를 만들었다.


영화 <이터널 선샤인>은 수많은 영화팬들에게 ‘인생영화’로 불리고 있다. 기억을 지웠지만 조엘과 클레멘타인은 알 수 없는 끌림으로 다시 만난다. 헤어진 연인을 그리워하는 사람들에게 이 영화는 ‘사랑하는 사람은 다시 만날 수밖에 없다’라고 희망고 한다.


찰리 코프먼의 원래 각본에 의하면, 조엘과 클레멘타인은 기억을 한 번만 지운 것이 아니다. 이 영화의 개봉은 2004년이지만, 영화 속 시점은 그보다 더 과거다. 그 흔한 핸드폰을 들고 다니는 사람이 한 명도 나오지 않는다. 그렇다면 2004년에 조엘과 클레멘타인은 어떤 상태일까. 본래의 각본에 따르면 시작과 끝부분에 현재 시점의 두 사람이 나온다. 그 내용은 기억을 지우고 다시 만나고 실패했고, 다시 지우고 또 실패했다는 이야기다. 이런 식이었다면, 이 영화에 대한 감동은 달라졌을 것이다. ‘우리는 다시 만날 수밖에 없어’에서 ‘다시 만나도 똑같아’로 낭만에 흠을 냈을지도.



조엘은 클레멘타인에게 화가 나서 자신의 기억을 지우기로 했다. 그런데 기억이 지워지는 과정에서 그의 무의식이 저항한다. 우리 머릿속에는 좋은 기억과 나쁜 기억이 있다. 기억은 현재에 가까운 것부터 지워진다. 조엘의 기억은 나쁜 기억에서 좋은 기억 순으로 지워진다. 클레멘타인과 좋았던 순간이 더 먼 과거기 때문이다. 나쁜 기억을 지울 때는 저항이 없던 무의식이 좋은 기억을 지우려 하자 저항한다. 기억 삭제에 대해 저항하기 위해 기억 속에 있는 두 사람이 손을 잡고 새로운 기억의 공간으로 도망간다. 이 과정은 현실이 아니라 기억 속의 장면이기 때문에 판타지적 요소가 가미된다. 판타지적 요소와 현실의 구분은 클레멘타인의 머리색으로 하면 이해가 쉽다.

 우리는 몸으로 기억한다.


뇌 속의 기억을 지운다는 것은 감정마저 지우는 것일까. 조엘과 클레멘타인은 기억을 지웠지만 밸런타인데이가 되자 자신의 몸이 이끄는 ‘몬탁’의 바닷가로 향한다. 머리 속 기억이 전혀 없는 둘은 만나자마자 서로를 끌어당기는 무언가를 느낀다. 그리고 다시 연인이 된다. 새로운 사람과 새로운 만남이 시작되면, 처음엔 머리로 기억한다. 만남이 길어지고 감정이 깊어지면 우리는 몸으로 기억한다.


홍상수 감독의 영화 <당신자신과 당신의 것>에서 민정(이유영)이 했던 말이 떠오른다. ‘저 아세요?’ 클레멘타인처럼 과거를 다 지우고 영수(김주혁)를 다시 만난 것 같다. 조엘은 화가 나서 자신도 기억을 지우려 했지만, 영수는 아니었다. 자신을 못 알아보는 민정과 다시 처음으로 돌아간 것처럼 사랑하고 과거와 같은 실수를 하지 않으려 한다.

다시 시작하면.. 다를 거야.


기억 속이지만, 조엘은 클레멘타인에게 말한다. 그녀와 다시 시작한다면 과거와 같지는 않을 거라고. 연애를 하면서 우리는 손쉽게 생각한다. ‘그 일이 없었다면’, ‘그런 말을 하지 않았다면’, ‘그런 행동을 하지 않았다면’ 지금의 관계가 더 좋지 않았을까. 사랑하는 사람과의 관계가 이토록 단순했다면 얼마나 좋을까. 이별은 그렇게 찾아오지 않는다. 연애라는 집이 있다. 두 사람이 연애를 한다는 것은 한 집에 있다는 의미다. 사랑에 빠지면 우리는 쉽게 착각한다. 그 집에 들어오고 나가는 것이 문을 열고 닫는 것이라 생각하는 것이다. 그 집에는 문이 없다. 문이 있다면 이별에 마음 아픈 사람은 없을 것이다. 우리는 서서히 물들어가며 어느새 그 집을 짓고 함께 지낸다. 이별한 것은 문을 열고 나갔기 때문이 아니라, 서로를 향한 마음이 그 집을 무너뜨렸기 때문이다.

나에게 기억을 지울 수 있는 기회가 주어진다면 어떻게 할 것인가. 망설임 없이 비워내고 다시 채울 것이다. 또다시 아픔을 겪어야 한다고 해도 다시 채우면 된다. 어제 과음을 하고 오늘 숙취 때문에 괴롭다고 한들 우리는 다시 술잔을 채우고 있지 않은가. 사랑하는 것은 이성적이고 논리적으로 설명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본인은 어떤 경우에도 이성적이라며 스스로를 대단하게 여기는 것은 곤란하다. 사실 우리는 한심하다. 그래. 우리는 또 사랑할 것이다. 아일랜드의 유명한 극작가이자 시인이었던 오스카 와일드는 말했다.


The mystery of love is
greater than
the mystery of deat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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